“광장은 내 거야!”
영화 <시네마 천국>에는 심심치 않게 광장이 자기 것이라고 외치는 미치광이가 나온다. 어린이들부터 모든 사람들이 그가 광장 어느 구석에서 잠을 자다가 벌떡 깨어 광장이 자기 것이라고 외칠 때마다 웃으며 놀려댈 뿐 그를 제재하거나 쫓아내지 않는다.
한편으로 광장에 위치한 마을 영화관의 영사기사인 주인공 알프레도는 돈이 없어 영화관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 건물 벽에 영화를 비추어 공짜로 영화를 즐기게 한다.
영화관 주인은 그 사실을 알고 광장에서 영화를 공짜로 보는 사람들에게 반값이라도 받으라고는 하지만 영화 상영 자체를 막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광장의 주인은 바로 영화를 공짜로 보는 사람들을 포함한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있어서 광장이 비로소 광장이 된다. 그런 광장을 자기 것이라고 외치니 사람들의 놀림감이 된다. 광장에 상업시설이 들어오게 되면서 사람들은 광장에 모일 수 없게 된다. 더 이상 광장이 자기 것이라고 외치지 않는 미치광이는 제 정신을 차린 듯 소수 마을 사람들의 격려를 받으며 다른 지방으로 떠난다. 영화관은 몇몇 사람들의 안타까움 속에 헐린다.
광장에 더 이상 사람들이 모일 수 없게 되기는 사실 어느 나라나 정도의 차이는 좀 있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상업 시설이 광장의 주역으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광장으로 들어오고 모이는 흐름을 방해하기도 했고 정치적인 이유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막은 경우도 있었다.
차량을 위주로 한 교통체계, 속도를 근간으로 한 효율성이 추구되는 시대를 맞아 습관처럼 걸어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내 광장이 존재할 시간과 공간이 사라져 갔다.
광장을 다시 사람들에게
광장문화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의 주요 광장은 6월 한 달 동안 ‘유로(EURO) 2012’ 축구대회를 응원하는 시민들로 들썩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축구 응원의 전형으로 거리응원, 곧 광장에서의 응원이 자리 잡게 된 데는 월드컵 후원기업으로 광장을 응원무대로 변모시킨 현대차와 기아차의 활동이 결정적이었다. 두 기업이 후원하는 유로대회에서도 각국 축구협회와 팬들은 당연히 광장에서의 응원을 펼칠 것이다.
광장을 주무대로 하는 거리응원의 뿌리는 모두가 알다시피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의 시청에 있다. 당시 공식 후원기업도 아니었지만 후원 기업으로 가장 많이 연상되고 지금도 후원 마케팅의 최고 성공 사례로 언급되는 그 기업은 이후에 왜 성공의 흐름을 계속 이어가지 못했는가?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광장을 자신의 것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큰 원인 중의 하나이다. 순수한 응원의 동기가 후원 기업으로서의 권리 확보라는 상업적 흐름에 밀려버린 것이다.
마케팅 활동이 펼쳐지는 무대로서의 공간은 아주 성공적인 경우 해당 기업과 일체화되는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의 주인이 기업이 될 수는 없다. 기업은 스스로 자신의 노출을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며 자제할 때 오히려 더 큰 노출이나 호의적인 이미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기업 로고가 보이는 순간 추억은 사라지고 반감만
1년 반 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미국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독일에서의 일정이 힘들어 음악이나 들으며 잠을 청하려다 기내 TV프로그램을 보니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의 40여 년만의 뉴욕공연’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저게 바로 뉴욕 메츠의 홈구장인 쉐아 스타디움(Shea Stadiu m)이야. 너에게는 아마 비틀즈의 공연이 먼저 생각나겠지만 말이야.”
1990년대 초 뉴욕의 대학원에 진학한 필자를 JFK공항에 마중나온 교포 친구가 뉴욕 시내로 차를 달리며 강렬한 파란색 원통형으로 생긴 건물을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그 친구의 말대로 1965년과 1966년 두 차례 있었던 비틀즈의 전설적인 쉐아 스타디움 공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실황 앨범과 회고의 기록, 다큐멘터리 등 공연과 관련된 것들이면 무엇이든 감격스럽게 보고 들었다. 그래서 팬들의 열광적인 비명에 가까운 환호 속에서 네 명의 멤버들이 야구장을 가로 질러 무대에 오르는 모습부터 무대 가까이에 댄 차를 타고 도망치듯이 빠져나가는 마지막 장면까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쉐아 스타디움은 뉴욕의 내셔날리그 야구팀이었던 브루클린 다저스와 뉴욕 자이언츠가 서부로 떠난 후에 새로운 내셔날리그 팀으로 메츠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변호사 윌리엄 쉐아(William Shea)를 기념해 이름 붙여졌다. 원래 평범하게 ‘플러싱 미도우 공원 시립 스타디움(Flushing Meadows Park Municipal Stadium)’으로 이름을 붙이려 했는데 윌리엄 쉐아의 노력과 역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 바뀌었다고 한다.
뉴욕 메츠는 창단 후 최하위를 전전하다가 1969년 일약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어떻게 그리 야구를 못할 수가 있느냐?’는 뜻에서 반어적으로 만들어진 비아냥거리는 투의 ‘대단한 메츠’ 바로 ‘Amazing Mets’라는 별명이 ‛기적의 메츠’라는 긍정적인 뜻으로 바뀌기도 했다. 이후 가장 귀족적인 전통의 양키즈와 대비돼 뉴욕의 다양한 인종의 서민층을 상징하는 팀으로 그 성격을 확실히 했다. 기내 TV로 2009년 7월에 열린 폴 매카트니의 공연을 보고 있자니 중간 중간에 1965년 비틀즈의 쉐아 스타디움 공연이 무대 좌우에 설치된 두 대형화면에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대형화면 사이의 글자와 표식이 계속 눈에 거슬렸다.
바로 대형 금융사인 시티그룹의 ‘Citi’라는 로고였다. 그 구장은 더 이상 쉐아 스타디움이 아니었다. ‘시티 필드’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시티그룹이 20년간 매년 2000만달러를 내는 조건으로 구장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소위 ‘타이틀 스폰서’의 자격을 산 것이다. 뉴욕 메츠는 기존의 쉐아 스타디움을 완전히 헐어서 시티필드를 위한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구장에 달린 시티그룹의 로고를 보니 위에서 언급한 비틀즈나 ‘기적의 메츠’와 관련된 모든 추억과 가치가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폴 매카트니의 콘서트는 시티필드의 개장 이후 첫 공연이었다. 쉐아 스타디움의 마지막 공연은 뉴요커를 대변한다는 빌리 조엘이 맡았다. 빌리 조엘은 그 공연의 마지막 노래로 폴 매카트니와 함께 비틀즈의 히트곡인 ‘렛잇비(Let it be)’를 불렀다.
그만큼 비틀즈와 쉐아 스타디움은 1960년대의 아련한 연상 속에 함께 묶여져 있다. 쉐아라는 이름 속에는 우스꽝스런 뉴욕메츠의 초기 시절과 그런 가운데 단기간에 우승을 일구었던 기적의 역사와 그를 응원한 다양한 인종들의 눈물과 외침과 사랑이 담겨져 있다. 시티필드라는 이름에선 그런 감정과 역사를 담아낼 수가 없다. 시티는 그런 뉴욕메츠와 쉐아 스타디움이 함께 한 추억과 친밀한 관계를 파괴하는 존재가 돼 버린다. 시티그룹 같은 경우는 20년간 총 4억달러에 이르는 돈을 내고 자신의 이름을 노출시키며 오히려 사랑보다 반감을 더 많이 자아내고 있는 셈이다.
원래 뉴욕에 있다가 샌프란시스코로 옮긴 자이언츠의 홈구장은 ‘캔들스틱 파크’였다. 바람이 세기로 유명한 야구장으로는 최악의 기후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그래도 자이언츠의 팬들은 그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했고 원정팀의 선수들이 당황해 실수하는 모습을 보며 야유를 퍼붓고 놀림거리로 삼는 것을 즐겼다. 팜 파일럿(Palm Pilot)이란 PDA로 유명했던 3콤(3Com)이 1995년에 캔들스틱 파크에 대한 타이틀스폰서 자격을 샀다. 그때부터 2002년까지 캔들스틱의 공식적인 명칭은 ‘3콤 파크’였다.
그러나 오로지 언론에서만 그렇게 불렀지 팬들과 선수들은 항상 캔들스틱 파크라고 불렀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야구팀의 팬들에게 3콤은 증오와 조롱의 대상이 돼버렸다.
다큐멘터리 영화계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감독 친구 하나는 기업들의 스폰서를 유치하며 항상 “관객들이 기업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다큐와 기업 모두 실패한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기업들이 어느 행사나 장소를 스폰서할 때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앞에 나서서는 안 된다. 기업은 마케팅을 위한 공간이나 소재로만 활용하며 자신을 그 맥락 속에 엮어 넣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기업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기업의 이름이 몇 번이나 불려지고 로고의 노출이 몇 사람에게나 되는가라는 점들만이 강조되고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역작용은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기업의 노출을 넘어서 진정으로 함께 어울리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특히나 이러한 스폰서 활동에서는 우선이 돼야 한다.
본분에 충실했던 해변의 결혼식
역시 어느 해 출장 중 LA 남쪽의 게와 바다가재 요리로 유명한 ‘레돈도 비치(Ledondo Beach)’라는 곳에 간 적이 있다. 평일이라서 관광객이나 방문객들은 별로 없고 일본의 어느 중학교에서 온 수학여행단만이 잠깐 북적거리다가 햄버거를 사먹고 떠난 후, 모래 깔린 해변이 한 눈에 들어오는 널찍한 창을 갖춘 식당에 앉아서 게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가롭기만 했던 해변에 갑자기 예사롭지 않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처음에는 결혼식 야외 촬영을 하는가 싶었는데 하객들이 둘러서고 똑같은 남방셔츠를 맞춰 입은 꼬마 들러리들과 식을 집전하는 여자 목사까지 실제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헐렁한 알로하 스타일 차림의 신랑과 대비되게 깨끗하고 단순한 웨딩드레스를 맵시 나게 차려 입은 신부는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주인공답게 바닷바람과 딱 어울리는 건강하고 행복한 내음을 담은 미소가 온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꼬마 들러리가 털썩 주저앉아 있는 모습은 결혼식장에서 비비 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네 애들과 별다를 바가 없다. ‘신랑은 신부를…’, 또 ‘신부는 신랑을 평생…’ 어쩌고저쩌고 하는 결혼서약에 둘이 “네(I do)”라고 답했다. 식의 집전자로서 엄숙히 성혼선언을 하자마자 여자 목사님은 예복을 벗어 던지고 사진사로 돌변해 이 신혼부부를 발끝에 물이 찰랑찰랑하는 데까지 끌고 가서 연신 작품사진을 찍어댔다. 고삐 풀린 듯한 꼬마 들러리들까지 합세해 뛰어 놀고 하객들은 가끔씩 고개를 돌려 촬영에 여념이 없는 신혼부부를 보면서 자신들만의 추억만들기를 하는 듯 두서 명씩 혹은 홀로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가끔 신문이나 방송의 해외화제로 이색결혼식이 소개된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며 공중에서 도킹해 반지를 교환하는 스카이다이버의 공중결혼식, 반대로 물속으로 들어간 스쿠버들의 수중결혼식, 신혼부부는 물론이고 하객들까지 나체로 참여하는 누드 결혼식 등 그렇게 매스컴을 탄 대부분의 결혼식들은 억지로 화젯거리를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한 느낌이 들어 부담스럽다. 초점이 지나치게 퍼포먼스 그 자체에 쏠릴 수밖에 없다. 화제에 오르고 더 많은 하객을 모으는 것이 결혼식의 목적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지인들은 새로운 부부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들의 행복을 빌어 주고, 신혼부부는 지인들에게 자신들의 사랑을 서약하는 결혼식의 본분에 우선 충실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레돈도 비치의 결혼식은 본분에 충실하면서 LA다움을 반영한 신선한 퍼포먼스였다. 바닷가 풍경과 잘 어울렸던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준 그 신혼부부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자연스럽게 지켜보던 우리 일행도 기원했으니까.
광고에서도 재미난 눈길을 끌 만한 요소가 있어야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본말이 전도돼 어떤 제품인지 브랜드인지 기억은 나지 않고, 기억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일지 않고 광고만 기억에 남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업이 공간을 활용할 때도 자칫하면 본말이 전도되는 경우가 생긴다. 광장은 시민들의 것이다. 광장이용권이 후원 권리에 속해있다고 하더라도 시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그러면 마케팅적으로 원했던 효과는 자연스럽게 곁들여 온다. ‘유로 2012’가 끝나면 곧 런던올림픽이 시작된다.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와 함께 어우러져 극적인 승부를 즐길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