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8일부터 3월4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에서 열린 GDC 2011(Game Developers Conference 2011)은 올해로 25회째를 맞은 권위 있는 전 세계 게임 개발자 지식 축제다. 게임 개발부터 사업 전반에 걸친 400개 이상의 강연이 열렸다. 올해 GDC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소셜게임 개발사의 약진이다. 징가와 플레이돔, 플레이피쉬 등 세계 3대 소셜게임 개발사로 불리는 업체가 모두 참여해 성공사례를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원래 GDC는 소니, EA, 닌텐도, 블리자드 등 대형 게임 개발사의 핵심 개발자 및 유명 게임개발자가 주목받는 행사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징가가 ‘팜빌’, ‘마피아워’ 등으로 지난해 8억5000만 달러의 매출액을 올렸다고 알려지면서 GDC의 관심은 소셜게임에 집중됐다.
전 세계 게임개발자의 눈길과 관심을 사로잡은 소셜게임은 대체 무엇일까.
전 세계 소셜게임 시장 가파른 성장세
소셜게임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서비스에 연결된 지인들과 즐기는 게임이다. 페이스북, 트위터에 연결돼 있지 않아도 게이머들끼리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으면 소셜게임의 범주에 포함된다.
소셜게임은 일반적인 온라인게임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보통 온라인게임에선 불특정 다수와 게임을 즐긴다. 하지만 소셜게임은 평소 아는 사람과 즐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용자들끼리 친밀감이나 동질성을 쉽게 키울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게임에 대한 몰입도 한층 강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소셜게임은 게임 내에 자신의 친구 수가 많을수록 유리하게 만들어진다.
친구를 초대하지 않으면 게임 진행이 어려워지거나 더 높은 레벨로 올라가는 데 제약이 생긴다. 좀 더 재미있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 지인과 소통하는 형태의 미션을 완수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셜게임 사용자들은 적극적으로 기존 친구를 게임에 초대, 게임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게 된다. 게이머의 활동 상황이나 성과를 SNS나 소셜미디어 등에 연결된 친구들에게 손쉽게 자랑할 수 있다는 점.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나 캐주얼게임, PC 기반 온라인게임과 달리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가볍게 만들어져 상대적으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손쉽고 간단히 짧은 시간 내에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도 소셜게임의 특징이다.
소셜게임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무섭게 커지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 e마케터는 지난 1월 올해 미국 소셜게임 시장 규모가 10억9300만 달러로 지난 해 8억5000만 달러에서 27.7% 가량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6200만명에 달하는 인터넷 이용자(미국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27%)들이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SNS에서 게임을 즐길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보다 소셜게임 이용자들이 15% 가량 늘어난다는 전망이다.
시장을 세분화해 보면 소셜게임 아이템 등 다양한 가상 상품 관련 매출이 6억5300만 달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가상 상품 관련 매출이 5억1000만 달러였으니 어림잡아도 25% 가량 성장한다는 얘기가 된다.
e마케터는 “미국 소셜게임 이용자 중 가상 아이템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쓰는 이용자는 6%에도 미치지 않는다”면서도 “이들이 올 한해 미국에서만 6억5300만 달러 가량의 매출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셜게임의 바람은 미국 이외 다른 지역에서도 거세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어낼리시스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 급증에 힘입어 소셜게임 시장도 향후 3년간 매년 7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일 전망이다. 중국 내 SNS 이용자는 2010년 상반기에 이미 1억9000만명을 돌파해 4억2000만명에 달하는 등 중국 네티즌의 절반 정도가 SNS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소셜게임 시장도 급성장, 2009년 2억4000만 위안 수준이던 소셜게임 시장 규모가 지난해엔 4억2000만 위안으로 전년 대비 75% 성장했다. 또 올해엔 85% 성장한 7억8000만 위안, 2012년엔 두 배 이상 성장한 16억3200만 위안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의 소셜게임 이용자 수 역시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할 전망이다. 어낼리시스 인터내셔널은 2010년 말 기준 8500만명에 달한 데 이어 2012년에는 1억3000만명, 상시 유료 이용자 규모는 1700만명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서히 시동 거는 국내 소셜게임 시장
플레이돔의 <소셜시티>
이 정도의 성장세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지 않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럼 소셜게임은 어떻게 이런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우선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 사용자가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 전문 통계 사이트인 소셜베이커스(Socialbakers)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사람은 6억4000만명이 넘는다. 이용자 수 1억5000만명을 넘어선 미국이 국가별 사용자 수 1위를 기록한 가운데 인도네시아(3500만명), 영국(2900만명), 터키(2600만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대륙별로는 북미 지역이 2억명을 넘어선 가운데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 이용자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사실상 인터넷이 연결된 모든 지역의 인구가 페이스북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미국 투자회사 제너럴 애틀랜틱이 평가한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도 650억 달러(약 72조원)를 넘어섰다. SNS를 기반으로 서비스되는 소셜게임의 기반이 그만큼 탄탄하고 앞으로도 사용자가 늘어날 여지가 매우 크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소셜게임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말도 이래서 나온다. 지난 2월 말 한국의 페이스북 이용자가 401만명을 돌파하면서 전 세계 이용자 순위 27위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 사용자가 40만명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세가 아닐 수 없다. SNS와 소셜게임 시장이 동반 성장하며 소셜게임으로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가 커져 게임업체의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도 소셜게임 시장 성장을 촉진하는 요소다. 콘솔용 비디오게임이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같은 경우 완성도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수백억 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소형 게임 기업의 진출이 어렵다. 하지만 소셜게임은 MMORPG 등과 달리 SNS에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 간단한 형태로 개발돼야 한다. 때문에 수백억 원대의 개발비를 들일 필요 없이 획기적인 아이디어 상품만 있다면 바로 수백, 수천만의 유저를 확보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최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개발된 뒤에도 게임 조작이나 내용이 어렵고 복잡하지 않아 간단하게 게임을 즐기려는 신규 게이머나 여성 게이머가 쉽게 게임을 접할 수 있다. 개발사와 이용자를 모두 아우르는 접근의 용이함이 시장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국내의 소셜게임 시장 역시 서서히 시동을 걸고 있다. 아직 ‘황금의 땅’을 연 건 아니지만 소셜게임 시장에 진출하는 개발사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소셜게임 플랫폼은 과거 싸이월드로 국내 SNS시장을 장악했던 SK커뮤니케이션즈의 ‘네이트 앱스토어’다. 현재 70여개의 개발사가 140여개의 소셜게임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누적회원 400만명, 일평균 이용자 50만명을 기록하며 국내 최대 소셜게임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4월까지는 별다른 매출을 발생시키지 못했으나 최근 누적 매출 50억원을 돌파하며 게임사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네이트보다는 늦었지만 네이버와 다음 역시 소셜게임 시장 활성화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네이버에서 오픈한 ‘소셜앱스’는 오픈한지 한 달 만에 매출 1억원을 돌파하며 네이트 앱스토어를 추격하고 있다. 아직 등록된 소셜게임이 100개 미만이지만 신규 게임이 추가되는 속도나 게이머들의 반응은 네이트 앱스토어 못지않다.
국내에 ‘돈을 잘 버는’ 소셜게임도 등장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네이트 앱스토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선데이토즈의 ‘아쿠아스토리’, 피버스튜디오의 ‘에브리타운’, 노리타운의 ‘해피아이돌’ 등은 월 1억원 내외의 매출을 낸다. 엄청난 금액은 아니지만 소셜게임이 기존 온라인게임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의미 있는 수치다.
소셜게임의 성공이 가시화되자 투자자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스톤브릿지캐피탈은 지난해 연말 아보카도 엔터테인먼트, 소셜인어스, 라이포인터랙티브 등 3곳의 소셜게임 업체에 투자를 결정했다. 스톤브릿지캐피탈 박지웅 수석은 “소셜과 모바일은 결국 하나라는 것이 최근 소셜게임 시장의 추세”라며 “단순 컨버팅보다 멀티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깊은 개발사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도 몰리고 있다. 북미와 유럽지역에서 손꼽히는 소셜게임 업체인 가이아 온라인도 한국을 방문해 해외에 퍼블리싱할 국내 파트너사를 찾았다.
국내 기업이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해외 소셜게임사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 1위 온라인게임사 넥슨은 최근 미국 지사인 넥슨아메리카를 통해 미국의 소셜게임 개발사 ‘어빗럭키(A Bit Lucky)’에 500만 달러(약 56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소재한 개발사 어빗럭키는 멀티플랫폼 기반 소셜게임의 개척자로 손꼽힌다. PC기반 캐주얼 게임과 MMORPG에 강점을 보인 넥슨이 소셜게임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의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넥슨아메리카의 다니엘 킴 대표는 “급변하는 게임 시장에 대한 높은 이해력, 우수한 개발력을 두루 갖춘 베테랑 팀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며 “향후 게임 산업을 선도할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개발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긴밀한 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넥슨아메리카는 지난해에도 캐나다의 ‘앤틱 엔터테인먼트’와 폴란드의 ‘원투라이브’ 등의 개발사에 100만 달러 상당의 투자를 단행한 적이 있다. 이 외에도 동양온라인, 다음 등 다양한 기업이 지속적으로 소셜게임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 2011년 국내 소셜게임 시장도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 소셜게임의 왕 ‘징가(Zynga)’
미국의 징가를 빼놓고 소셜게임에 대해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징가는 세계 최대 SNS인 페이스북을 플랫폼 삼아 이 분야 선두를 질주하는 소셜게임의 왕이다. 업계는 징가의 지난해 매출이 8억5000만 달러를 돌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2년에는 매출이 15억 달러에 달하고 2014년까지 매년 35% 이상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내다본다. 2007년 7월에 출범한 기업치고는 매우 빠른 성장세다. 또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최근 2억5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기업 가치를 70억∼90억 달러로 산정해 협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월 징가가 새 주식을 발행할 당시 기업 가치를 40억 달러로 산정한 점을 감안하면 채 1년도 되지 않아 가치가 배나 커진 것이다. 징가는 페이스북에 최적화한 게임으로 성공했다. ‘팜빌’, ‘마피아 워스’, ‘피시빌’ 등이 징가의 대표작이다. 이 중 팜빌은 친구들과 함께 농작물을 키우고 키운 농작물을 교환하거나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는 서비스다. 친구들이 많으면 빠르게 농작물을 키울 수 있고 물물교환도 좀 더 쉽게 할 수 있다. 팜빌 사용자는 당연히 다른 페이스북 친구들에게도 함께 게임을 즐기자고 권하게 된다. 여기에 부가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장치도 교묘하게 도입했다.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는 무료지만 각종 아이템은 게임머니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게임머니는 현금으로 구매할 수 있지만 배너광고 클릭 등 다른 기업과 연계된 마케팅 프로그램에 참가해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는 자연스럽게 징가의 매출 증대에 기여하게 된다. 이처럼 영리하게 개발한 약 30개의 페이스북용 징가 게임 이용자는 무려 하루 800만명. 한 달 이용자는 2억5000만명에 육박한다.
징가는 높아진 기업가치를 무기로 독립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마크 핀쿠스 징가 최고경영자는 한 인터뷰에서 “징가 라이브라는 이름의 자체적인 소셜게임네트워크에서 마피아 워스, 팜빌, 카페 월드 등 인기 게임을 서비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징가가 페이스북에 막대한 광고, 부분 유료화 수익을 배분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그간 징가는 페이스북에 30%의 수익을 배분해 왔다. 한때 징가와 페이스북은 수익 배분 문제를 두고 협상을 진행하다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 같은 징가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 무료 서비스인 페이스북은 징가를 통해 수익을 얻고 징가는 페이스북 회원 네트워크를 플랫폼으로 삼는 등 결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최순욱 /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wooksoon.choi@gmail.com│사진 =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