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널리스트 피터 현의 초대로 2004년부터 1년간 프랑스 루아르(Loire) 지역에 머문 적이 있다. 피터 현은 독립운동가 현원국 목사의 아들로 1927년 함흥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학하였다. 유학 생활 중, 매카시즘이 조장한 적색 공포 속에 공산당으로 몰려 유럽으로 추방되어 파리에서 오랜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망명생활 중에는 영국의 더타임스나 미국의 뉴욕타임스 등의 언론에 기고하며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였으며, 이후 지인의 도움으로 프랑스 주재 한국 대사관의 초대 문정관을 지냈다. 사면복권되어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출판사 편집인과 언론인으로 지내며 평생 대한민국을 알리는 일을 하였는데,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알게 된 유럽의 미식 문화를 국내에 알리는 데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특히 힐튼 호텔의 총주방장을 역임하고, 현재 프랑스 폴 보큐즈 요리 대회 심사위원이자 세종대 교수로 재직 중인 박효남 셰프와의 관계는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다.
피터 현은 생전에 프랑스 루아르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냈다. 루아르 지역이란 프랑스에서 가장 큰 루아르 강 유역을 의미한다. 하지만 프랑스 남동부에서 시작하여 북쪽의 부르고뉴 지역을 거쳐 다시 프랑스 한가운데를 관통해 대서양에 이르는 루아르 강은 ‘루아르 지역’이라고 간단히 정의하기에는 너무 다양한 마을들을 포함하고 있다. 보통 좁은 의미로 말하는 루아르 지역은 고성들이 몰려있는 투르(Tours)나 앙제(Angers) 인근 지역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샹보르(Chambord)성, 앙리 2세의 왕비였던 카테린 메디치가 죽음을 맞이한 블루아(Blois)성, 잔 다르크가 샤를 7세를 설득하여 잉글랜드에 맞서게 된 시농(Chinon)성, 잉글랜드의 영토였던 앙제(Angers)성, 루아르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아제르리도(Azay-le-Rideau)성이 모두 이 인근에 모여 있다.
루아르 지역에는 다양한 포도가 재배되지만 지역의 농가들은 적포도주는 주로 카베르네 프랑, 백포도주는 슈낭 블랑이라는 포도로 만든다. 루아르의 와인들은 좋은 해에는 세계의 어떤 와인과 견주어도 훌륭한 품질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가격도 저렴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많이 소개가 되지 못한 편이다. 와인을 수입하는 입장에서 보면 루아르 와인을 수입하기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이 지역 와인이 소비자들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보르도나 캘리포니아 와인에 비해 손이 가기 쉽지 않다. 두 번째로 카베르네 프랑으로 만든 와인은 운송과정 중에 쉽게 변질되는 편이다. 나는 프랑스에 오기 전 우리나라에 수입된 카베르네 프랑 와인에서 좋지 않은 냄새를 몇 번이나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늘 그 이유가 궁금하여 루아르에 거주할 때 생산자를 직접 방문해 보니 이곳에서 시음한 와인에서는 그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수입회사들이 민감한 와인을 수입할 때는 냉장 컨테이너를 사용하기 때문에 변질된 와인을 만나는 일이 오히려 드물다. 세 번째로 루아르의 와인들은 빈티지에 따라 품질의 차이를 많이 보여주는데, 이는 카베르네 프랑 포도 자체가 기후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기후를 극복하기 위한 값비싼 장비들이 아직 이곳 생산자들 사이에는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터 현의 도움으로 루아르 지역의 요리사들, 와인 생산자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와인을 맛볼 수 있었다. 마침 운 좋게도 뛰어난 빈티지인 2003년산 와인이 유통되고 있었던 시점이라 지역 와인들을 최고의 상태로 경험할 수 있기도 했다. 나는 1년간 가격대비 품질이 좋은 지역 와인들을 많이 찾아냈지만, 내가 접한 와인들은 보르도나 부르고뉴의 명품 와인들과 비교하여 ‘고급’ 와인으로 부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오래된 와인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고 2015년 9월, 보르도 지역으로 떠나기 전 내린 결론은 루아르 지역에는 좋은 와인이 있지만 오래 숙성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사 후 남겨진 짐을 찾기 위해 루아르 지역을 다시 찾은 주말, 피터 현을 통해 알게 된 한 지인은 나를 시골의 작은 레스토랑으로 초대하였다. 여기서 나는 인생 와인 중 하나를 만나게 된다. 바로 베르나 보드리(Bernard Baudry)가 만든 ‘시농’ 1990년산 레드 와인. 와인 리스트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주인에게 이렇게 오래된 와인을 지금 마셔도 되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매우 깊이 있고 균형 잡힌 이 와인은 이미 10년 이상 지났지만 여전히 더 보관할 수 있을 정도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루아르 와인은 오래 보관할 수 없다는 나의 생각은 부족한 경험과 식견에서 온 편견이었다.
루아르에는 베르나 보드리 외에도 레드 와인은 ‘클로 후제아(Clos Rougeard)’, 화이트 와인은 ‘위에(Huet)’나 ‘쿨레 드 세랑(Coulee de Serrant)’ 같은 장기 숙성이 가능한 고급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특히 쿨레 드 세랑을 만드는 니콜라 졸리(Nicolas Joly)는 바이오 다이내믹 와인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바이오 다이내믹이란 포도 혹은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유기 농법 중 하나로, 농장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외부 물질의 유입을 매우 절제하는 농법이다. 정신적인 접근이 가미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유기농법과 큰 차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니콜라 졸리와 함께 부르고뉴의 ‘로마네 콩티’ ‘르루와’, 알자스의 ‘도멘 바인바흐’, 보르도의 ‘샤토 퐁테 카네’ 등이 바이오 다이내믹 포도 재배의 선구자로, 오늘날에는 점점 더 많은 포도원들이 이 농법을 사용하고 있다.
1945년에 태어난 니콜라 졸리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공부한 후, 미국과 영국에서 은행가로 일하다가 1977년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의 와이너리를 돌보게 되었다. 1981년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루돌프 슈타이너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와이너리로부터 검증된 내용은 아니지만, 니콜라 졸리의 이웃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니콜라 졸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의 어머니는 앙제(Angers)의 집을 떠나, 쿨레 드 세랑을 만드는 가족의 농장으로 이사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농장에서 그녀의 와인을 만들게 되었다. 와인 양조의 지식은 하나도 없었지만,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이웃들이 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그녀는 이웃들이 하는 정확히 반대의 방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었다. 예상보다 매우 훌륭한 와인이 나오게 되었고, 심지어 파리까지 소문이 나서 그녀의 와인은 컬렉터들 사이에서 알려지게 됐고, 니콜라 졸리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의 연구 끝에 어머니가 모르고 했던 농경법이 바로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자 니콜라 졸리의 와이너리를 방문하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의 황무지 같은 포도밭은 매우 충격적이었는데, 아마도 니콜라 졸리의 이웃들도 처음에는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약속과 달리 니콜라 졸리를 만나지는 못했고 그의 쿨레 드 세랑을 한 병 사와서 피터 현의 별장에서 같이 시도해보았다. 와이너리에서는 와인을 최소 이틀은 열어 두어야 최고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와인을 오픈하고 이틀에 걸쳐 시음하였는데, 확실히 하루 동안 냉장고에 넣어두니 훨씬 풍미가 좋아졌다.
바이오 다이내믹은 오늘날 프랑스 와인 업계에서는 매우 인기 있는 농법으로 고급 와인 애호가일수록 바이오 다이내믹 와인을 찾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주류 농경학의 입장에서 종교같이 신비로운 농법을 사랑할 리 없다. 니콜라 졸리의 이웃들도 니콜라 졸리의 방식을 처음부터 좋게 생각했을 리는 만무하다. 우리는 종종 관계와 성과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데, 니콜라 졸리도 아마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현재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만들고 있고, 전 세계 양조가들과 컬렉터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물론, 여전히 그를 싫어하는 이웃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