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소설 중에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아주 간략하게 축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13년 나는 프랑스의 어느 산악지대를 여행하게 되었다. 그곳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로 마을의 옛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나는 물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던 끝에 어떤 사람을 만났다. 30마리의 양을 치는 사람이었다.
그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 양치기는 작은 자루에 든 도토리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며 상한 것과 온전한 것을 가렸다. 다음날 그는 양떼는 개에게 맡기고 저편 황무지로 가서 쇠 지팡이로 구멍을 뚫고 거기에 물에 불린 도토리를 하나씩 넣고 흙을 메웠다. 그런 식으로 지난 3년 동안 그는 10만 개의 도토리를 심었다. 그 중에서 2만 개가 싹을 틔웠는데, 그중 절반은 다시 산짐승이나 가뭄 등으로 없어져 버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다 해도 전에는 나무라고는 없던 곳에 1만 그루의 참나무가 자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 쉰다섯 살이라고 했다. 하나뿐인 아들과 아내를 잃은 다음 산 속으로 들어와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도토리를 심는 일을 시작했다. 다음해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나는 5년간 전쟁터에 나가 있었다. 전쟁이 끝난 다음 나는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 예전에 찾아갔던 고지대로 향했다. 황무지는 이미 숲이 되어 있었다. 그가 처음 도토리를 심어 가꾼 참나무는 10년 동안 내 키보다 컸다. 숲은 세 구역으로 제일 넓은 곳은 폭이 무려 11㎞나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매년 그곳을 찾아갔다. 산림관청의 관리들은 숲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신기해하며, 그 숲을 일군 부피에에게 ‘저절로 자라난 자연의 숲’에 산불을 내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1945년에 나는 다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예전에 아무도 못 살고 떠났던 그곳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의 정성만으로 오래도록 버려진 황무지가 다시 평화와 풍요의 땅으로 바뀐 것이다. 나중에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까지 1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엘제아르 부피에 한 사람 덕분에 새로운 낙원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인 저도 10여 년 전 실화소설로 <나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한 어린 신랑이 있습니다. 결혼을 일찍 한 것은 집안이 매우 가난한 데다 아버지마저 병들어 누워 아버지 대신 일찍 살림을 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신부는 열두 살이었습니다. 논밭은 없고, 오래 전에 나무를 모두 베어낸 커다란 민둥산 하나가 남은 재산의 전부였습니다.
그 민둥산에 어린 신랑과 신부는 가을에 주운 밤 다섯 말을 심었습니다. 동네 사람들 모두 겨우내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면서 봄이 되어 민둥산에 밤 다섯 말을 심는 어린 신랑을 비웃었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날 때에도 마을 사람들은 어린 신랑을 비웃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새신랑. 그래, 작년에 심은 밤은 많이 땄는가?” “아니오. 그렇지만 언젠가는 딸 날이 있겠지요.”
5년이 지날 때에도 사람들은 놀리듯 말했습니다. “여보게, 그 산에서 밤을 땄는가? 자네가 거기에서 밤을 따면 내가 자네 앞에서 내 손에 장을 지져 보이겠는데 말이야.”
10년이 지나자 비로소 마을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민둥산을 가득 메운 어린 밤나무에 밤송이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나무를 심은 지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났을 땐 매년 그 산에서 따는 밤농사만으로도 동네에서 가장 큰 부잣집의 1년 전체 농사보다 더 큰 수확을 올렸습니다. 그때의 어린 신랑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어른이 되어 다시 아들을 낳았습니다. 어린 신랑은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밤나무 숲을 보고 놀라지만 그건 놀랄 일이 아니란다. 밤 한 톨을 화로에 묻는 것과 땅에 묻는 것의 차이이지. 화로에 묻으면 당장 어느 한 사람의 입이 즐겁고 말지만, 그걸 땅에 묻으면 나중에 거기에서 1년 열두 달 화로에 묻을 밤이 나오는 거란다.”
그 할아버지의 손자 중의 한 명인 저는 지금 춘천에 있는 김유정문학촌의 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곳 춘천은 전체 지역 6%를 강과 호수로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도시가 누릴 수 없는 천혜의 자연이자 자원이지요. 이 도시가 2050년까지 앞으로 30년간 1억 그루의 나무심기 운동을 합니다.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이미 우리나라 온 산에 나무가 가득 차 있으니까 도시의 공원과 길거리와 조금이라도 빈 공간이 있는 공터와 가정에 나무를 심는 것입니다. 나무할아버지의 손자로 혼자 신나서 이런 계산을 해보았습니다. 이 도시의 인구는 30만 명입니다. 30년 후 이 도시는 소득과 그 밖의 변화는 많아도, 우리나라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아주 많이 늘어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미 심어진 것 말고도 30만 인구가 새롭게 30년 동안 1억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이죠. 춘천시민 한 사람당 1년에 10그루씩 30년간 300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무를 심을 때는 보통 5년에서 10년 정도 자란 묘목을 심으니까, 앞으로 30년 동안 새로 심는 나무만 계산한다 해도 30년 후면 이 도시는 10년생의 나무에서부터 40년생의 나무 1억 그루가 도시 전체를 거대한 숲으로 바꾸어버릴 것입니다. 아니, 당장 5년 후만 해도 도시의 모습이 달라질 것입니다. 거기에 천혜의 조건처럼 전체 지역 6%의 강과 호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분지의 여름도 열섬현상이 사라지며 숲을 따라 바람골이 형성되고 시원해질 것입니다. 나무가 교통표지판을 가리고, 때로는 비바람에 쓰러진 가로수가 통행을 방해할지 몰라도 그건 또 그때그때 해결하면 될 일입니다. ‘다른 도시보다 나무가 두세 배 많은 도시’, 이런 상상만으로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신이 납니다. 이건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곧 다가올 현실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나무는 먼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심은 지 2~3년만 지나도 그 약속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나무를 심는 사람을 어리석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저의 나무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우리 김유정문학촌 곳곳에 아주 많은 나무를 심을 생각입니다. 나무와 대화를 하면 그것도 참 신나는 일이거든요. 모두 숲 가득한 우리 문학촌에 놀러 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