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가 2025년경 확연해질 것이라고 예측한 하이퍼 제국과 하이퍼 분쟁이 현실화한다. 미국 주도 체제가 붕괴하는 가운데 다중심적 세계가 전개되면서 글로벌 분쟁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한국은행은 ‘2020년 이후 글로벌 경제 향방을 좌우할 주요 이슈’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경제 위험요인으로 ▲지정학적 리스크 상시화 ▲주요국 정치적 이슈 및 불확실성 확대 가능성 ▲미·중, 미·EU 간 무역 갈등 재부각 가능성 ▲글로벌 매크로 레버리지 확대를 꼽았다.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이 전면전은 면했지만 국지적 무력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홍콩시위도 오는 9월 입법회 의원 선거 전후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 미·중 간 무역전쟁은 1단계 합의를 이끌어냈으나 갈 길이 멀다. 미·EU 간 무역관계는 디지털세, 자동차 관세를 중심으로 갈등이 재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프랑스 연금개혁, 중남미 및 중동, 북아프리카 선거 등 2020년에는 정치이벤트가 즐비하다. 오는 11월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경제적으로는 과잉부채가 최대 이슈다. 세계경제는 슈퍼 부채로 몸살을 앓는다. 지난 50년간 4번 부채 위기가 있었다. 최근 부채 증가세는 가장 속도가 빠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 GDP 대비 200% 내외 수준이었던 글로벌 부채 비율은 2019년 상반기 240%대 초반까지 올랐다. 세계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2019년 1분기 93.7%에 달한다. 5년 전(2014년 1분기) 88%보다 5.7%포인트 상승했다.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 90%를 넘어서면 과다한 빚 자체가 성장세를 제약할 수 있다.
나라마다 과도한 부채는 수요를 억누르고 외부 충격이 발생할 경우 경제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매크로 레버리지 상승으로 경제 취약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다수 국가들이 향후 경기침체 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경제 둔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부채가 계속 쌓이고 있어 ‘부채 산사태(Debt Landslide)’가 일어나면 금융위기 및 외환위기까지 연결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의 과잉부채는 세계 경제성장률 하락과 이를 완화하기 위한 주요 선진국들의 저금리 정책기조가 원인이 됐다. 세계은행은 2020년 세계 성장률을 지난해 6월 예측보다 0.2%포인트 낮춘 2.5%로 내다봤다. 경기침체로 수익성이 떨어진 기업들이 운영자금 확보 등을 목적으로 저금리에 자금을 조달해 부채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경기부진으로 국세 수입이 2년째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고용·복지 부문에 대한 재정 지출이 급증하면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채발행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 부채는 역대 최대인 700조원을 넘어섰다. 공공기관까지 합칠 경우 1000조원이 넘는다. 이미 재정건전성 악화의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다. 국가채무는 2019년 37% 수준에서 2023년 46% 이상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개인 부채는 위기상황으로 치닫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9년 9월 말 가계신용과 자영업자 대출을 합한 금액이 2000조원을 넘었다. 가계신용은 1572조7000억원, 자영업자 대출은 438조7000억원에 달한다. 부동산 가격 거품이 일시에 붕괴될 경우 개인이 부동산 담보대출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최저임금 급등과 경기침체가 맞물려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되면 금융권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부채 관리 강화와 생산성 향상에 힘쓰라”는 세계은행의 정책 제언을 받아들여 위기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