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 문제를 얘기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회사는 현대자동차다. 노조원 숫자나 노사분규의 횟수, 한국 노동운동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경쟁자가 없다. 근데 이 회사 노조를 지칭할 때 현대자동차 노조라고 하면 정확하지 않다. 현대자동차 지부라고 해야 한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쩐지 어색한데, 이 회사 노조가 금속노조 산하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최근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 노조의 산별노조 탈퇴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산별노조 체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산별노조 산하의 지부·지회가 독립된 단체로서 자격을 가졌다면 산별노조에서 탈퇴해 개별 기업 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새 기준을 제시했다. 1997년 노동조합법이 산별노조를 허용한 이래 대법원은 ‘단체교섭권이 없는 산별노조 지부· 지회는 산별노조를 탈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었는데, 이번 판결에서 헌법이 보장한 노조 설립의 자유를 적용해 근로자의 ‘노조 선택권’을 확대한 새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대법원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를 탈퇴해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기로 한 발레오전장 노조 총회의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며 금속노조 등이 낸 소송에서 ‘총회 무효’ 판결을 내린 1심과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발레오전장 사건은 오랫동안 화제에 오른 케이스다. 발레오전장 노조는 2001년 금속노조에 가입해 금속노조 산하의 지회가 됐다. 2010년부터 불법파업 강행으로 극심한 노사분규가 발생했고, 직장 폐쇄까지 겪으면서 노조원 간에 대립이 격해졌다. ‘끝까지 투쟁하자’와 ‘일터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충돌했다.
대다수 근로자들은 2010년 5~6월 두 차례 총회를 열어 금속노조 탈퇴를 결의하고 지회장 등 노조 간부를 교체했다. 이에 금속노조와 당시 지회장 등은 ‘탈퇴 결정을 내리려면 금속노조 위원장과 지회장 등의 결재가 있어야 한다는 게 금속노조의 규약’이라며 소송을 냈는데, 1심과 2심은 “발레오전장 노조는 단체교섭권이 없는 금속노조 산하 조직에 불과해 독립된 노조가 아니므로 금속노조 탈퇴를 의결할 권한도 없다”고 판시했었다.
대법원은 이번에 이를 뒤집은 것이다.
이번 판결은 여러 가지 대목에서 의미가 크다. 우선 ‘개별 기업 노조는 어용화할 가능성이 크므로 산별노조로 가야 한다’는 초창기 인식이 깨진 측면이다. 산별노조 체제가 2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경제를 혼란시키고 노사관계를 악화시키는 부작용도 노정시켜 왔다는 인식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기업별 노조도 긍정적으로 기능한다는 인식도 녹아들었다.
또 하나는 다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측면이다. 발레오전장의 경우 조합원 601명 가운데 550명이 참석해 97.5%의 찬성으로 금속노조 탈퇴를 결의했다. 결국 형식 논리에 앞서 실제를 봐야 한다는 현실론이 강하게 반영됐던 셈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산별노조의 조직 유지 필요성 못지않게 근로자들의 노조 선택권도 중요하다는 선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산별노조 체제는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개별 기업 노조에 속한 근로자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산별노조는 조직 이탈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게 됐다. 돌이켜보면 1997년 노동조합법 개정 이후 1998년 외환위기가 불어닥치면서 구조조정·정리해고의 대격변이 몰아치자 ‘뭉쳐야 산다’는 인식 하에 개별 노조의 산별노조 전환이 급물살을 탔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산별노조를 벗어나 기업 노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산별노조에 한번 들어가면 쉽게 못 나오게 했던 기존 법 해석도 이런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법 해석은 시대를 선도하거나 현실을 관통하거나 둘 가운데 하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