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핀테크(Fintech)라는 용어가 화두다. 핀테크가 가져오는 변화의 핵심은 금융과 산업의 분리가 아닌 금융과 산업의 일치라는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더 이상 기업에게 금융기관이라는 존재가 기업 활동에 별도로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기업이 곧 전통적인 금융기관의 역할을 갖는다는 의미다. 결국 핀테크는 금융기관의 변화가 아니라 전통적인 기업에게 가장 필요한 변화의 물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아쉽게도 결제 방식의 변화를 주는 것으로 핀테크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일반 기업이 핀테크에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핀테크는 화폐 가치의 저장과 교환 방식의 변화를 다룬다. 핀테크는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흔히들 이 기술을 정보통신 기술로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기술은 단지 정보통신 기술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금융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형태의 혁신적 금융환경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의미한다. 물론 그 핵심에 정보통신 기술이 존재한다.
돈의 흐름 관점에서 핀테크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유사 이래 지속되어 온 현상이다. 재화나 돈의 역사에서 늘 있어 왔던 일이다. 한때는 조개껍질이 그 기능을 대신한 적이 있었다. 동전과 종이 화폐의 시대가 생겨났으며 20세기에는 신용카드의 등장이 새로운 혁명을 가져왔다. 신용카드라는 것을 처음 접한 현대인에게 그 사용의 생소함은 아마도 조개껍질로 돈을 대체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이 같은 현대판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오늘날의 핀테크다.
핀테크가 만들어내는 몇몇 새로운 금융의 변화와 형태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먼저 은행을 매개로 한 자금의 흐름이 당사자 간에 직접 흐름으로 바뀐다. 돈의 전달에 은행과 종이화폐라는 중간 매개체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은행은 자금의 저장과 중개의 핵심 기능을 담당해 왔다. 은행을 통해 원하는 상대자와 금융거래를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절차이자 자금거래의 중심이 되어 왔다.
현대인에게 은행을 거치지 않고 자금거래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생소한 일이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이미 일상의 일이 된 지 오래다. 교통카드의 사용이 좋은 예다. 교통카드는 종이화폐를 건네주듯이 버스나 지하철 등을 이용하는 고객이 직접 운수회사에 돈을 건네주는 형태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은행이나 금융기관의 역할과 화폐의 전달 기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에서 돈의 가치가 저장되는 곳은 무수하게 많은 기계 장치다. 교통카드, 버스의 교통카드 단말기, 교통카드 충전소의 충전기계 등이다. 돈이 은행에 보관되지 않고 수만 개의 기계 장치에 저장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람의 개입 없이 기계와 기계 간에 돈이 자동적으로 흘러 다닌다. 이른바 자동 지급결제 방식이다. 고속도로 통행료나 주차 요금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핀테크에 의한 또 다른 큰 변화는 은행의 역할을 하는 곳이 무한대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돈은 은행이라는 곳에 보관했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거래가 은행을 중심으로 이뤄져왔다. 개인 간의 거래도 은행을 통해 자금을 주고받아 왔으며 기업의 거래도 은행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핀테크는 이러한 은행 중심의 구조를 크게 바꿀 전망이다.
더 이상 은행을 통하지 않고 개인 간의 자금 거래를 하게 된다. 더 나아가 개인 간에 돈을 빌리고 갚는 일도 일상의 일처럼 가능하게 될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거래는 대체로 두 가지 형태로 이뤄질 전망이다. 하나는 특정 기업이 중심이 되는 형태고 또 다른 하나는 거대한 집단구조 형태다. 특정 중심이 존재하는 형태는 결국 수많은 은행이 새로 만들어지는 구조이다. 특정 목적을 영위하는 기업이 중심이 되어 가치를 저장하고 이를 거래하는 데 활용하게 해주는 구조다. 최근 등장한 중국의 기업인 알리바바가 제공하는 알리페이가 이에 해당하는 구조다. 집단구조의 형태는 집단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그 신뢰는 기존의 화폐가 중심이 될 수도 있고 그들 집단 간의 공유된 가치가 될 수도 있다. 거대한 인터넷 게임에서 주고받는 게임머니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형태가 재화나 용역의 거래에 활용되는 형태가 집단구조의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불러오게 된다.
핀테크는 결제 방식의 속도나 편리함에서 다양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신용카드 이용이나 자금이체 등을 통한 일반 거래나 인터넷 결제에서의 복잡성이 제거된다. 언제 어디서나 거래에서 화폐를 건네주듯이 신용카드나 인터넷 결제를 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신용카드 사용 시 별도의 비밀번호나 사용자 서명이 필요 없게 해준다. 지문이나 얼굴 등 생체 정보가 활용될 수도 있다. 별도의 장치를 활용할 수도 있다. 이 같은 핀테크가 가져올 다양한 변화의 중심에는 전자화폐라는 매개체가 숨겨져 있다. 전자화폐는 크게 두 가지 성격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는 기존 화폐의 가치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가치에 기반을 두는 화폐의 등장이다.
기존 화폐에 기반을 두는 전자화폐는 전자적 장치에 기존 화폐의 가치를 저장하고 이를 활용하는 형태다. 교통카드는 스마트카드에 화폐의 가치를 저장하고 사용하는 형태다. 알리페이와 같은 수단은 화폐의 가치를 기업이 갖고 있는 별도의 컴퓨터에 그 가치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형태의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전자화폐를 관리하는 기업은 엄밀하게 말하면 은행의 역할을 한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교통카드 회사나 알리페이와 같은 서비스를 하는 회사는 곧 은행이다. 현재로서는 특정 목적에만 한정되는 역할을 하는 작은 크기의 은행이다. 이 같은 은행이 수도 없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러한 회사가 망할 경우 그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그 회사에 전자화폐로 보관된 가치를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치에 기반을 두는 전자화폐는 기업이 갖고 있는 금융 이외의 자산이나 서비스를 화폐적 가치로 전환하는 형태이다. 이른바 기업 화폐의 등장이다.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약속을 하는 마일리지나 포인트 제공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더 나아가 기업이 제공한 재화를 바탕으로 미래의 가치를 평가하여 제공하는 형태이다. 자동차 할부 금융이나 판매된 상품의 되사주기 구매조건부 판매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형태의 전자화폐는 그 기업이 파산되거나 서비스의 가치, 재화의 가치가 하락할 경우 소비자가 갖는 피해는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가치에 기반을 두는 전자화폐의 등장은 결국 새로운 화폐의 등장이다. 새로운 화폐는 기존의 화폐와 동등하게 거래될 수도 있다. 비트코인이라는 수단이 여기에 해당된다. 포인트나 마일리지를 화폐의 가치로 전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기업 화폐가 늘어날 경우 한 국가에서 서로 다른 화폐 수단이 생겨나며 이를 관리하는 은행기업이 생겨나게 된다. 결국 전통적인 은행과 기업화폐를 다루는 은행기업의 경쟁이 생겨난다.
머지않아 데이터나 콘텐츠 등의 가치에 기반을 두는 전자화폐도 등장할 전망이다.
전자화폐는 해킹이나 전자화폐 저장장치의 손괴로 인한 피해도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은 기존 화폐 제도에서도 마찬가지이므로 굳이 더 상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위조지폐나 지폐 훼손의 경우와 같을 것이다.
일반 기업이 이러한 금융환경 변화 속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결국은 서비스에 새로운 전자화폐 즉, 기업 화폐를 도입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에 대한 시작은 바로 고객과 기업 간에 가치에 기반을 둔 신뢰의 확보이다. 단순하게 제공되는 화폐적 가치보다 미래 서비스나 재화의 가치가 더 큰 화폐의 가치가 될 수 있다. 한 국가에서 발행하는 화폐의 절대적 가치를 기업 화폐가 뛰어넘을 날이 올 수 있다.
국가에서 발행하는 화폐와 기업 화폐의 경쟁은 이미 시작된 상태다. 은행이 파산하면 그 은행이 돈을 맡겨둔 고객이나 기업은 엄청나게 큰 피해를 보게 된다. 대체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가 금융기관을 직간접적으로 통제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에 전자화폐를 다루는 기관을 전자금융기관으로 지정하여 이미 통제의 법적 기반을 마련해 둔 상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는 기존 화폐에 기반을 둔 전자화폐의 통제에 대한 반쪽짜리 통제다. 국가는 기업 화폐와의 경쟁과 통제의 구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