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시대다. 20세기 분석 패러다임에서 21세기 창조 패러다임으로 전환함에 따라 혁신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국내의 수많은 기업들 또한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지난 십수 년간 끊임없이 혁신을 외쳐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포브스지가 뽑은 올해의 세계 100대 혁신기업 명단에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만이 초라하게 순위에 올라와 있다. 물론 국제적 경제지에서 선정한 순위가 기업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이는 오늘날 한국 기업 혁신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되새겨 볼 만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반기업 정서, 지나친 평등의식이나 기업에 대한 규제 등 외부 요인만 탓하는 것은 사실상 문제를 외면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요인이 실존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차치하고 문제를 지나치게 막연하고 정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내에서 혁신의 돌풍을 일으켰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의 ‘혁신가의 딜레마’나 올슨과 베버가 ‘스톨 포인트’에서 지적했듯이 기업의 내부적인 요소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타당한 접근이 아닐까. 한국 기업들이 혁신에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기업내부의 세가지 혁신역량 관점에서 살펴보자.
1. ‘누구를 위한 혁신인가’를 명확히 해야
우선 혁신의 목표 측면에서 기업은 누구를 위한 혁신인지, 혁신의 대상과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단기와 장기적 관점, 기업의 내부 또는 외부적인 요소들로 인해 혁신이 추구하는 당장의 목표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혁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의 관점을 기반으로 세워야 한다. 그동안 여러 기업에서 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여러 가지 경영활동을 펼쳐왔으나 이에 대한 고객과 시장의 반응을 통해 볼 때, 이는 고객 가치에 대한 고민에 기반한 혁신이라기보다는 기업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다른 혁신 기업을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이 제공하고자 하는 가치는 오로지 고객과의 접점, 즉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전달될 수 있다. 목표하는 가치가 명확하지 않다면 이는 오히려 고객이 해당 제품으로부터 느끼는 혁신의 경험과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 뿐이다. 일례로 얼마 전 법정관리에 들어간 국내 3위 스마트폰 제조사의 경우 경쟁회사들과는 차별화된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 경험의 혁신을 제창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볼 때 그것이 고객들에게는 혁신이 아니었다. 혁신 목표와 달성 전략, 전술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는 상태에서 기업이 말하는 혁신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다.
2.경영진의 능력
두 번째로, 혁신을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 설정 및 달성을 위해 그에 맞는 경영진의 능력이 요구된다. 흥미로운 것은 시장의 변화에 따라 경영진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제품의 수명 주기(Product Lifecycle) 이론에 따르면, 하나의 제품은 시장에서 도입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의 수명곡선을 거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도입기에는 급진적인 혁신을 통해 시장에서 기회를 발굴할 수 있는 ‘발견 스킬’과 직관적 사고 능력이 요구된다. 성장기와 성숙기에는 체계적이고 점진적인 혁신을 위한 분석적 사고 능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시장에서 발전단계에 따라 기업 혁신을 이끌 경영진들의 차별화된 능력이 요구된다. 이는 간단한 경영 방침이나 전략의 변화를 통해 확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때로는 경영진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재편이 요구되기도 한다.
단계별로 상이하게 요구되는 경영진의 혁신 능력이 기업의 성과에 미친 영향은 국내에서 가장 혁신적 비즈니스가 이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포털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잘 확인할 수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경우, 초기 인터넷 포털 분야의 성공을 통해 당시 경영진의 혁신능력을 검증하였고, 시장이 성장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기존의 경영 방침을 고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시장 도입기 당시 보여준 초기 경영진의 강점과 급진적 경영 방침은 분석적 경영 능력이 요구되는 시장의 성장기와는 맞지 않았고, 결국 네이버에게 국내 포털 시장의 선도적인 위치를 내주게 되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음은 분석적 능력을 지닌 새로운 경영진을 구축하고, 이에 기반한 전략을 수립했지만, 이미 시장이 안정화된 상황에서 분석적 경영 능력에만 기반해 판도를 뒤집을 만한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웠고, 결국 카카오와의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기회와 혁신을 도모하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네이버 역시 초기 경영진은 급진적 혁신에 강점을 가진 스타일이었으나, 지식인 서비스의 성공을 기해 포털 시장을 재편한 뒤로는 성장기로 접어든 시장 상황에 발맞추어 경영진의 분석적 경영 능력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경영진을 개편한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기존의 급진적 경영진과 분석적 경영진이 공동으로 경영에 참여함으로써 상호보완적 효과를 얻고, 성장기에 성공적으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나아가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안정적 성장이 필요한 시점에서 분석적 경영진이 경영 전면에 나서고 기존의 급진적 경영진들은 퇴진 또는 2선으로 후퇴하였다. 결과적으로 네이버는 시장의 성숙 단계에 맞춘 경영 스타일을 도입함으로써 시장의 변화에 맞는 적합한 혁신 전략을 구사하였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성공은 이를 방증한다.
현재 시장이 포화기를 거쳐 쇠퇴기로 향함에 따라 재도약을 위한 네이버와 다음의 향후 성장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탁월한 분석적 경영 능력의 네이버 현 경영진이 과연 급진적 혁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지와 급진적 혁신능력이 보강된 다음카카오의 새 경영진이 신시장 개척과 재도약으로 시장을 재편할 것인지 말이다.
3.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조직문화
마지막으로, 혁신이 이루어지려면 실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조직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혁신은 아마존의 기업문화 자체’라고 강조하였고 국내에서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고 근본적인 혁신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2014년 현재 국내 기업들의 문화는 여전히 제조와 품질의 시대에 추구되던 관리를 통한 효율과 안정이라는 분석 패러다임에 젖어 있다. 혁신을 위한 조직원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기에는 그동안의 국내 기업들이 양적인 성장 과정에서 이미 국내외 수많은 인재들을 수혈한 바 있다. 개개인의 능력 면에서 볼 때 그들은 세계적 수준의 다양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며, 그중 개인적으로 만나본 사람들 중에는 높은 창의성과 혁신 역량을 지닌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일단 국내의 기업 내부 프로세스에 들어가면 이상하리만큼 그 능력에 맞지 않는 의사결정과 성과물을 내는 사례를 보였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들의 혁신 활성화를 위해 혁신을 위한 목표의 설정, 시장에 맞는 경영진의 능력, 혁신을 뒷받침하는 기업문화라는 세 가지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끝으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의 지론으로 위의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상기했으면 한다. ‘아마존이 혁신하는 방법은 소비자 중심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존이 혁신하는 기준이다.’ 혁신의 목표, 경영진의 능력, 기업문화는 고객의 가치가 향하는 곳으로 모두 정렬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프 베조스는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