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입시철이다. 입시만큼 당사자에게는 뜨거운 이슈로 달아올랐다가 터널을 지나면 무관심해지는 주제도 없을 것 같다. 지난해 막내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가장으로서 그동안 한 일은 별로 없지만 심적 여유는 조금이나마 생긴 듯하다.
하지만 한 편으론 아이들에게 미안한 것도 있다. 10년만 뒤에 태어났어도 입시 경쟁에서 한결 비켜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작년 첫 입시를 치른 1995년 출생자수는 모두 71만5000명. 10년 뒤인 2005년생은 43만5000명으로 무려 39.2%나 떨어진다. 대학 정원이 줄더라도 관문 통과는 다소 수월해질 것 아닌가. 저출산이 가져온 매우 드문 순기능이지만 씁쓸해진다.
#전 세계에 ‘부의 불평등’ 화두를 던진 토마 피케티 교수의 거대담론에도 저출산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매일경제가 최근 제15회 세계지식포럼의 사전 행사로 개최한 ‘1%대 99% 대토론회’에서 그는 저출산 탓에 부모 재산이 좀 더 소수에 집중돼 부의 세습이 심해진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 취업알선 업체의 의식 조사에서 드러난 젊은이들의 속내가 흥미롭다. 부자가 되려면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응답이 32.8%로 가장 많고, 자기 사업이나 창업이 18%에 달했다. 열심히 일해 높은 연봉을 받겠다는 젊은이는 6.6%에 그쳤다. 피케티 교수의 코멘트는 이 조사에 대한 응답처럼 들린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불평등 해소를 부르짖는 이유가 “자신의 근로 소득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부를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서”라고 하니 말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파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부동산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 은퇴하는 2016년부터 감소한다. 앞서 베이비부머가 은퇴에 들어간 미국과 일본은 각각 2007년과 1990년대 초부터 주택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서유럽 국가 움직임도 엇비슷하다. 공급과 부동자금 동향이 일시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변수지만 구매력을 가진 경제활동인구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긴 어렵다.
작년 우리나라 출생률이 최저치를 경신했다는 통계청 발표에도 사람들은 무덤덤하다. 인구 1000명당 출생아수를 뜻하는 조(粗)출생률은 8.6명으로 1970년 31.2명, 1990년 15.2명에서 급전직하했다. 15~49세 가임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수를 말하는 합계출산율은 1.187명으로 OECD 34개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한국 인구가 70년 후 절반, 120년 후에는 5분의 1로 줄어들고 급기야 2750년엔 지구상에서 사라진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저출산 원인을 단순히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주변 처녀총각들은 결혼 적령이 남자 35세, 여자 32세란다. 여기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다. 8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중심의 고용불안, 버거운 주거비용, 과도한 교육비 부담 걱정, 턱없이 미흡한 육아시설과 시스템…. IMF 외환위기 이후 고용 유연성을 명분으로 본격 도입된 비정규직제를 손대자니 기업의 존망이 위태롭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집값은 안정적인 상승이 절실한 상태다. 유일한 계층 이동수단인 교육 관련 투자는 밥 한 끼 건너뛰는 것만큼이나 줄이기 어렵다. 보육·육아를 포함한 복지예산은 내년 총예산의 30%를 넘어설 태세고 노후 사회안전망 구축도 갈 길이 멀다. 요즘은 ‘젊은’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들의 육아 기피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직장맘 출신으로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어 손주를 맡기가 겁난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래저래 저출산은 시급한 현안이다. 한 고위 공직자는 “연간 17만 건에 이르는 낙태가 출산으로 이어지면 출산율이 1.6명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실제로는 100만 건을 넘어 낙태율이 세계 최고라니 나올 법한 얘기다. 한국의 혼외 출산율은 2.1%로 OECD 평균 35%에 훨씬 못 미친다. 그만큼 미혼모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사회적 편견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양육수당, 육아휴직을 넘어서는 실질적인 일과 가정 간 양립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과감한 이민 정책 검토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절실하다. OECD 국가 중 일본에 이어 가장 낮은 외국인 비율을 가진 한국의 현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결국은 배려와 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