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와 햇빛 속에 꽃피는 것들이 기특하다”
(서정주, <꽃피는 것 기특해라>).
북상중인 연두와 초록이 기특하고, 마음의 심지를 피워 올리는 것들이 한량없이 기특하다. 눈 틔워 꽃 피우고 잎 돋우는 이것들, 실은 모두 눈보라 치는 한 시절을 난 것들이다. 춥고 꼴꼴 얼어붙은 날들을 견뎌낸 것들이다.
“사랑도 만질 수 있어야 사랑이다// 아지랭이/ 아지랭이/ 아지랭이// 길게 손을 내밀어/ 햇빛 속 가장 깊은 속살을/ 만지니// 그 물컹거림으로/ 나는 할 말을 다 했어라” (이홍섭,<7번국도 -등명(燈明)이라는 곳>).
등명(燈明), 참 예쁜 이름이다! 등불로(처럼) 밝힌다니, 참 깊기도 하다! ‘봄’은 내게 ‘등명’이라는 이름과 동의어다. ‘만질 수 있어야 사랑이다’라는 말은 ‘사랑은 만지는 것이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만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봄도 그러하다. 만질 수 있는 봄이 어디 물컹거리는 아지랑이의 속살뿐이겠는가. 꼬물꼬물 움트는 연두의 소리를, 수런대는 흙의 속삭임을, 한껏 단맛 오른 햇살의 온도를, 비로드처럼 야들야들해진 바람의 향기를 다 만질 수 있어야 봄이다.
허나, 이렇게 만지고 맛볼 수 있는 것들은 쉽사리 상하기도 하는 것들이다. 금세 사라지는 것들이기도 하다. 아지랑이 그 피어오름이 안타깝고, 아지랑이 그 바장임이 서럽고, 아지랑이 그 농이 아픈 까닭이다. 내가 좋아하는 김윤아의 노래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김윤아 노래, <봄날은 간다>)는, 그리워서 아픈 쓸쓸한 봄날과 애틋하게 사라지는 봄것들에 대해 노래한다.
봄이라서 아련히 그립고 또 아련히 저린 것들이 있다. 지난 봄날이, 이제 곧 사라져갈 이 봄날이, 그리고 봄날로 비유되는 젊음과 꿈과 사랑이 감당하기 힘겨운 그런 봄날들 말이다. 다시 봄은 오고 꽃은 또 피겠지만, 그래도 한 번 간 그 봄은 다시 오지 못하고 한 번 핀 그 꽃은 다시 피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게 될 때,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꽃잎은 ‘바람에’ 질 뿐 ‘바람에’ 머물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봄의 깊이에 한 걸음 들여놓은 것이리라. 그런 봄날은 언제나 ‘문득’ 오고, ‘문득’ 가야 한다. ‘문득’이어야 봄답다.
등명에서 만져본 아지랑이의 속살은 사랑의 속살이자 봄의 속살이기도 했을 것이다. 불을 세우는 심지의 힘으로 맑게 빛나는 등명이야말로 바로 꽃의 속살 아니겠는가. 어떤 지극함이, 어떤 간절함이, 어떤 그리움이 내 안에 오래 된 심지에 불을 댕겨줄 것인가. 봄 마중을 나서는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알 듯도 모를 듯도, 일렁여본 듯도 피워본 듯도 하다. 봄은 늘 내게 이런 아련한 물컹거림이 마음자리에 들앉는 계절이다. 봄은 내게 이렇게 온다.
이렇게 춘심(春心)을 북돋고 한껏 이끌어내 봐도, 오는 이 봄이 뜨뜻미지근하다면 봄의 판타지를 펼쳐보는 건 또 어떤가? 겨우내 인구에 회자되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Frozen)>처럼 말이다. <겨울왕국>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주인공 엘사가 ‘Let it go’를 부르며 눈 덮인 산을 오르는 장면일 것이다. 그녀는 죄의식과 두려움에 떨며, 쫓기듯 도망치듯, 왕궁을 뛰쳐나와 겨울산을 오른다. 남은 한쪽 장갑과 망토와 왕관을 벗어던지며 ‘Let it go’를 외칠 때마다 그녀의 손끝과 발끝에서 완성되는 겨울왕국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눈 덮인 허공에 얼음계단과 얼음다리를 만들며 달려가는 엘사는 착하고 잘 참는 소녀에서 벗어나 힘과 자유에 눈뜨는 겨울왕국의 여왕이 되어간다. 그러나 이것은 메타포다. 엘사가 달려간 곳은 겨울왕국이 아니라 봄의 왕국이었다. 진정한 자기 개화였기 때문이다. 진정한 봄은 그렇게 온다.
우리도 그렇게 봄의 여왕이 되어 달려가 보자.
얼음과 강풍을 떨쳐내고 봄산을 올라가자. 드러내지 마, 꽃피우지 마, 꼭꼭 숨겨, 느끼지 마, 알리지 마! 이런 금지와 억압의 겨울 말(言)들부터의 탈출이 먼저다. 잃어버렸던 한쪽 장갑일랑은 마저 벗어던져 버리고, 꽁꽁 싸매고 감추었던 외투와 털모자와 목도리를 벗어던지고, 머리를 풀어 내리고 봄바람에 옷자락을 하늘거리며, 밀려오는 봄을 향해 ‘Let it go’를 불러보자.
‘Let it go’를 외칠 때마다 우리의 손끝과 발밑에서 하나하나 완성되는 봄의 왕국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연두와 초록이 움트는 산골짜기에 하얗고 노랗고 빨간 꽃 계단과 꽃 다리를 만들며 달려 나가는 봄의 왕국은 또 얼마나 벅찰 것인가!
봄의 요정들 손끝과 발끝에서 봄이 완성되듯, 나의 손끝과 발끝에서는 내 마음의 봄이 완성될 것이다. 근심과 공포와 두려움에 흔들리던 우리의 눈빛은 ‘Let it go’를 외칠 때마다 자신감과 환희가 가득 찬 눈빛으로 변할 것이다. 그 노래는 망설임이나 주저함없이 저지르고 내지르는 자의 단호한 목소리일 것이고, 그것이 무엇이든 창조하는 자의 눈빛일 것이다. “날 지배했던 두려움은/ 이젠 무섭지 않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봐/ 한계를 뛰어넘어 부숴버릴 거야/ 옳은 것도 그른 것도 규칙도 내겐 없어/ 이제 난 자유야/ Let it go/ Let it go”라고 노래하는 나, 너, 그리고 우리. 그 마음이 바로 봄의 마음일 것이다.
우리 안에 움츠리고 있던 물컹이는 생명력과 야성과 자유를 불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기특하게’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외친다. 나는 나이고 나는 괜찮아, 봄은 봄이고 봄은 괜찮아, 라고. 그러므로 내게 ‘Let it go’는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는 말과 동의어인 것이다. 무엇보다 산수유를 필두로 매화와 동백,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배꽃, 복사꽃, 목련 등속이 물컹거리는 ‘내 마음의 봄날’을 내가 먼저 펼쳐놓으면 그게 바로 진짜 봄인 것이다.
정끝별 (鄭끝별)
▲1988년 <문학사상> 신인발굴에 시 당선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당선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등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에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