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일부 오너들이 광범위한 정보망이나 전문지식 등을 이용해 절세나 감세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비리와 범죄의 주체로 등장하는 사례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주가조작과 분식회계, 사기성 어음 발행 등을 통해 수백억 원대의 횡령과 배임을 저지른 사실이 적발되거나 최고경영자 등이 조직적으로 부정에 개입한 게 드러나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불법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미국에선 수년전 엔론에서 시작한 회계부정 파문이 미국기업에 대한 투자자 신뢰를 떨어뜨려 나스닥지수가 수직하락하기도 했다. 포천지에 따르면 에너지 재벌 엔론을 비롯해 아델피아, 글로벌크로싱, K마트 등 일반인들이 익히 아는 유명 기업들이 지난 2001년 잇따라 도산했다. 대형 기업만도 이틀에 하나 꼴인 172개사가 파산신청을 했다.
도산의 직접 도화선은 재정문제에 대한 신뢰 상실에서 비롯됐다. 특히 미국의 신경제를 이끌던 통신업체의 파산 도미노가 계속되었다. 관련 회사 CEO들은 징역 25년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기업 비리를 막기 위하여 각종 법률과 제도가 마련되었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세계적 기업들이고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용인하는 것은 부유한 국가다. 기업들의 불법행위 관련 소식이 없이 넘어가는 날이 없을 정도다. 월가의 모든 기업은 지난 10년 동안 가짜 계좌, 내부 거래, 주식 사기, 폰지 사기, 최고경영자들의 노골적인 횡령 등의 혐의로 막대한 벌금을 냈다. 지금도 뉴욕에서는 대규모 내부자 거래 조직이 적발되어 재판이 열리는 중이며, 여기에는 금융 산업의 간판격인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월가 대형 은행들의 파렴치한 행위는 2년 전 역사상 가장 큰 금융 위기를 몰고 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간 금융 산업 관계자는 아무도 없다. 회사가 불법 행위를 저지르면,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CEO나 경영진이 아니라 주주들이다. 언제나 벌금은 불법 행위로 벌어들인 이익의 새발의 피 수준이다”고 개탄했다.
제프리 삭스의 힐난에 비추어보면 우리가 미국보다 나은 것일까?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 시스템이라 비자금 조성을 통한 횡령 등 노골적인 불법을 저지르는 기업은 존재하기 어렵다.
반면 우리 일부 기업들은 며칠 전 LIG그룹 회장에 대한 선고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아직도 종전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종래 우리 사법부는 대기업이나 대주주 범죄에 대하여 경제발전에 기여한 점 등을 이유로 일반 국민들의 범죄에 비하여 비교적 관대하게 처벌했다. 그러나 최근 판결이 말해주듯이 법원은 이들에 대하여 매우 엄한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이 같은 엄한 처벌은 사법부의 방침이 하루아침에 변해서 일어난 일일까? 일엽지추(一葉知秋·하나의 낙엽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알다)의 일엽과 같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를 예고하는 징후가 있었다.
국민들이 경제성장의 과실이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사이에 재벌 2세 등의 범죄가 빈번해지자 국민들은 기업경영과 기업발전 헌신을 내세우는 그들의 선처호소를 늑대소년의 외침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법원도 이러한 국민들의 법감정을 무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앞으로 이런 추세는 가속화될 것이다. 그 요인 중 하나는 우리도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이 인맥 등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다는 여성 법관과 검사가 수년 전부터 대폭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남성 법조인도 영향을 받기 시작하여 종래 법조 관행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 기업이나 오너들이 범법을 했다면 나아갈 길은 검찰에 적발되지 않는 우연을 기대하거나 치열한 법리논쟁으로 무죄를 선고받는 지난한 길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그 사이 기업 이미지나 이익 등은 치명적 타격을 입을 것이다.
<대공황(The Great Crash)>을 쓴 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경제는 도덕의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듯 이제 우리 기업도 최근 시행된 준법감시인제도를 형식적으로 운용할 것이 아니다. 정말로 준법경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법을 지키는 경영전략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