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세계 경제의 조기 회복 시나리오가 갈수록 설득력을 잃고 있다. 유로존 실물경기 악화에 이어 그동안 세계 경기의 버팀목 역할을 해오던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들이 차례로 침체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가 ‘동시 침체’라는 최악의 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된 양상이다.
지난 6월 29일 열린 유로존 정상회담 직후 자본잠식에 빠진 스페인 은행에 대한 유럽금융안정화기금(EFSF)의 지원이 결정되면서 전 세계 주식 및 채권시장이 일제히 상승 반전됐다. 꿈쩍 않던 유럽의 정상들이 예상을 넘는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낸 데 대한 시장의 환호였다. 이후 많은 낙관론자들이 세계 경제가 내년 상반기까지의 하락세를 끝으로 서서히 회복세로 전환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1분기가 지나기도 전에 곳곳에서 경기침체를 알리는 지표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유로존의 성장률 하락이다. 유로존의 GDP성장률은 1분기 제로 성장에 이어 24분기 -0.4%를 기록하는 등 경기침체가 뚜렷하다.
2011년 말부터 심화된 유로존 국가의 신용 및 채무위기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이다. 불투명한 미래가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설비투자를 억제하고 이는 다시 경기예측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부의 연쇄(Negative Spiral)에 빠진 모습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영국과 스페인의 소비 둔화다. 두 나라 모두 금융위기, 부동산 버블 붕괴, 유럽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1분기를 100으로 민간소비지출을 환산한 결과 4년 반이 지난 지금에도 양국은 95 이하에서 정체돼 있다.
두 번째는 그동안 선진국을 대신해 세계 경제를 이끌어 오던 신흥국들의 침체 신호다. 리더 격인 중국의 경우 1분기 경제성장률이 8.1%로 금융위기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으며 2분기에도 7% 후반 대까지의 하락이 확실해 보인다. 2011년 20.3%의 증가율을 기록하며 경기 회복을 주도했던 수출도 2012년 상반기에는 반토막이 났고 기대를 모았던 개인소비도 전년 상반기에 비해 4%p 가까이 둔화됐다.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위기 직후의 경기 급락을 막아 냈던 설비투자가 이후 소비 진작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과잉투자의 부작용만 키운 셈이다. 브라질과 인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브라질은 2011년 말까지 진행된 금리인상과 헤알화 절상으로 성장력이 떨어진 데다 그동안 고성장을 노리고 몰려든 투자자금이 빠져 나가는 등 경제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인도는 통화가치 하락과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2012년 14분기 경제성장률이 5.3%로, 2008년 금융위기 직후를 포함해 최근 9년간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위기 진원지인 유럽과 버팀목인 신흥국의 동반 침체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그나마 선방하고 있는 곳이 미국이다. 하지만 과도한 가계부채와 고용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부 지표가 긍정적으로 발표되면 일제히 심리가 개선되다가 부정적 지표가 발표된 순간에 리세션 우려가 커지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도 유로존 위기라는 외부 불확실성에 더해 ‘재정절벽’에 대한 대응력 부족,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한 구심력 약화라는 내부 문제가 중첩되며 2013년까지는 불확실성이 지속될 전망이다.
모든 경제권역이 경기 침체 양상을 보이면서 세계 경제도 2015년까지는 회복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유로존 문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프랑스와 독일마저 소용돌이 속에 휘말릴 경우 스토리는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1990년대 초 버블 붕괴를 기점으로 ‘잃어버린 10년’의 고통을 겪은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세계 경제의 일본화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려운 경우의 수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은 아마도 ‘유럽이 회생을 향한 구조 개혁에 성공할 것인가’ ‘G2와 신흥국들이 보호주의 경쟁에 빠지지 않고 내수와 무역 확대를 통해 일정 수준의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는데 현재는 어느 쪽도 장담하기 어렵다. 세계 경제가 언제 회복이 가능한가 보다 실제로 회복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더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