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안개 정국이다. 일부에서는 그 터널의 끝이 또 다른 위기, 더 극단적으로는 세계경제의 장기적 불황을 예상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2012년까지 일시적 침체를 겪다가 다시 회복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불행히도 내년까지 세계 금융시장은 물론 실물경제가 2007년 금융위기 수준을 회복할 수 없다는 점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위험관리의 중요성과 경영자들의 인식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2007년 대형 금융기관의 부실로 촉발된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의 망령이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유로지역의 주요 국가인 그리스, 스페인, 이태리, 프랑스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0년 그리스와 이태리의 GDP 대비 재정적자는 각각 145%, 119%로 유로지역에서 가장 정부 빛이 많다. 그리스는 방만한 재정운용과 위기 극복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으로 인해 사실상의 부도 상황이다. 유로존 4위 경제국인 스페인 역시 은행부실과 정국불안으로 제2의 그리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로지역 세 번째 경제대국인 이태리 역시 재정악화와 정국불안으로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프랑스의 GDP 대비 재정적자는 유로지역 평균인 85%보다 낮아 여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 대형은행들은 그리스 국채의 과다 보유로 이미 신용등급이 하락된 상황이다. 특히 이태리 국채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 이태리 경제위기는 프랑스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태리, 스페인, 프랑스로 이어지는 위기 가능성이 현실화될 경우 세계경제의 침체, 장기불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의 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는 한 세계 금융시장은 소위 ‘변동성 장세’가 될 수밖에 없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 경제도 당연히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한국 금융시장이 유럽위기의 해결 가능성 여부에 따라 급등락을 하고 있는데, 당분간 금융시장 변동성이 지금보다 매우 커질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 경험과 한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 측면을 고려할 때 여타 금융시장에 비해 외환시장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주식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투자자금의 유입과 기업들의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어려움은 겪겠지만 기업들은 자금조달의 대안, 즉 회사채 발행과 은행차입 등의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제거래를 위해 필요한 외환은 궁극적으로 외환시장 외에는 조달할 방법이 없다. 결국 외환시장의 불안은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성장에 가장 큰 장애 요인 될 수 있다.
작금의 세계경제 ‘시계 제로’ 상황에서 기업들은 적극적인 환위험 관리를 통해 불확실성과 그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원론적인 얘기고, 기업경영자 모두 환위험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그 인식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연구기관에서 지난 20년 동안 환위험 관리 실태를 서베이한 결과에서 공히 나타난 사실 중 하나는 경영자의 환위험 관리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환을 현 시세에 비해 싸게 팔거나 비싸게 사는 계약을 과거에 한 경우 외환관리 담당 직원은 질책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가능하면 환위험 관리를 하지 않도록 경영진을 설득하는 것이 실무진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다. 외환거래 또는 외환파생상품 거래의 목적은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기업 의사결정의 불확실성을 없애는 수단이다. 작금의 세계경제 상황은 환위험 관리의 인식을 행동으로 바꾼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계시록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