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국가의 부채가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기업의 부채는 금융시장의 규율 기능을 통해 어느 정도 통제가 된다. 하지만 개인과 국가의 부채는 잘 규율되지 않는데 이는 흔히 정치적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80년대 이후 보수정권의 유지를 위해 저소득층에게 무리하게 주택자금을 대출해 주다가 서브프라임 위기를 맞았다. 유럽 국가들은 저성장에 따른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경쟁적으로 정부지출을 확대하는 무임승차(free riding)의 함정에 빠져있다. 국가 간 환율조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수출을 늘려 빚을 갚는 방법도 막혀있어 해결이 난망하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생산인력의 상대적 감소로 경제성장률의 하락이 우려된다. 선진국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도 향후 국가부채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압력이 쌓여갈 것이다.
부채의 가장 큰 특징은 소위 지렛대효과(leverage effect)이다. 외부환경이 조금만 변하여도 금융시장과 경제가 요동치는 현상이다. 특히 우리 경제는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대외의존도가 높아 전 세계의 변동성 요인에 더욱 민감하게 노출되어 있다.
해법은 만만치 않다. 단기적으로 정부는 환율과 금리라는 거시정책 수단을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미시정책이 보다 중요하다. 조선, 자동차 등 중후장대 산업도 좋지만 동시에 서비스 산업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중후장대 산업은 경기가 좋은 경우 낮은 한계원가로 이익이 급속히 증가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고정비로 인한 손실 급증으로 경제에 충격을 준다.
금융부문 국제화 미흡해 문제 야기
산업부문에 비해 금융부문의 국제화가 미흡해 외화자금의 수급을 적절히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국가를 부도의 위험에까지 노출시키는 금융기관과 기업의 외화유동성과 환리스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원화의 국제적 통용성이 높아져야 한다. 금융국제화의 가장 큰 장애 중 하나가 역사와 문화의 차이인데, 아시아가 다가오는 시대를 지배한다고 가정할 경우 이는 우리에게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가 될 것이다.
직접투자와 달리 단기차익을 노리고 자본시장에 몰려드는 핫머니가 과연 우리 경제에 얼마나 필요불가결한 자본인가에 대한 심각한 논의도 필요하다.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강한 자본통제에도 불구하고 계속 외화자본이 몰려들고 있다. 자본과잉의 시대에 자본통제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판단은 물론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에 달려있다.
기업과 자본가도 세상 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 스스로 돈을 버는 자본의 속성상 빈부 격차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승자독식은 사회불안을 가중시켜 모두의 발목을 잡는다.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의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는 이미 시대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시장의 활력과 사회적 안정 간에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