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미국이 책임있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펴기로 약속하고 재정적자를 줄여 투자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원자바오 총리)
“미국에 대한 투자와 달러화 채무의 안전을 보장하겠다”(조 바이든 부통령)
“미국 경제가 여러 도전에 대처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믿는다”(시진핑 부주석)
얼마전 중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중국 최고 지도부와 연쇄회동을 갖고 나눈 대화들이다.
언뜻 보면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을 때 중국 쪽에서 미국에 퍼붓던 강성발언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하지만 뜯어보면 중국이 뼈있는 외교적 수사를 사용하면서 바이든 부통령에게 완곡한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스스로를 진앙으로 하는 글로벌 위기를 연거푸 만들어 내면서 체면을 구기고 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기억에 생생하다. 이번 사태는 미국이 자초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금융위기 때 미국은 돈을 풀어서 달러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부도위기를 맞은 미국의 주요 은행 보험회사,국영 금융회사들에게 천문학적인 규모의 달러를 쏟아 부었다. 기축통화라는 잇점을 활용해 종이와 잉크값만 들여서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들이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미국이 IMF를 통해 초긴축과 고금리 정책을 권고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강요하던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이 구글과 애플 등이 펼치고 있는 ‘글로벌 IT 지배력’에 현혹된 점이 있다.
각 나라의 경제력이 곧 힘의 원천이다. 포천이 선정하는 ‘2011 글로벌500대 기업’에 중국기업은 61개로 늘었다. 2005년에는 불과 16개였다. 미국은 176개에서 133개로 줄었다. 중국 기업의 글로벌 브랜드 역시 가시권이다.
더구나 중국은 3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위기국면에서 안전판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 사용할 수는 없지만 방어력에 엄청난 효과가 있는 ‘경제적 핵무기’에 다름 아니다. 중국은 미국 국채를 1조달러 넘게 갖고 있다. 중국이 최대의 채권자로서 행세할 만 하다. 이번 위기는 또 한번 세계경제의 판도변화를 이끌어낼 게 분명하다. 금융과 실물 양쪽에서 예기치 않은 상황이 펼쳐질 것 같다. 한 마디 한 마디에 주목하고,밑바닥을 흐르는 물결을 먼저 감지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게 된다.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버냉키 의장은 위기 대응책으로 “약 2년간 거의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풀어서 보면 초저금리가 2년간 고정된다고 할 때 달러 캐리 트레이드 현상이 나올 개연성에 대비해야 할 때다.
미국이 달러 약세를 용인하겠다는 것은 중국에 크게 불리하다. 중국이 가만 있을 리 없다. 미국채 하락으로 입게 될 손실을 상쇄하는 대안을 분명히 찾을 것이다. 몇십 년 장기과제로 펼쳐온 위안화 국제화 정책이 앞당겨질 수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대만 등을 아우르는 중화경제권을 ‘시험무대’로 한 다음 중국이 공들여온 아프리카, 중남미로 진출하는 전략을 펼 가능성이 있다.
세계경제의 권력구도는 내상을 크게 입은 미국과 유럽,일본이 중국의 동의 없이,중국의 일방적인 손실 부담을 요구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상황으로 점차 바뀌어 간다.
중국이 주도하는 ‘화력시범’이 이어질 것 같다. 중국은 수년전부터 한국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여 왔다.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위안화 스왑계약을 맺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어느새 ‘소리없이 강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
글로벌 위기는 블랙스완처럼 전혀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찾아온다. 세계경제의 축 이동이 가속화하는 시점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국운을 가름하게 된다.기업과 가계,정부 등 경제주체 모두에게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다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