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고 거대한 문 옆으로 사람 키보다 더 큰 붓이 매달려 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듯, 기웃거리는 사람들 사이 한 사람이 앞장서서 아래로 힘껏 당기니 문이 스르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좁은 통로 끝 양편으로 또 다른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개의 문은 이따금씩 열리고 닫히길 반복하면서 사람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입구부터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곳의 이름은 ‘교촌필방’. 치킨 브랜드 ‘교촌치킨’을 운영하는 교촌에프앤비의 플래그십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교촌필방에서는 교촌치킨만의 브랜드 철학과 노하우를 계승하면서도 교촌치킨을 넘어 한국 음식의 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메뉴를 선보인다. 교촌치킨의 주 식재료인 닭고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해 색다른 미식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치킨 메뉴뿐만 아니라 수제 닭고기 소로 속을 가득 채운 ‘필방 고추튀김’과 가슴연골튀김을 곁들인 ‘오돌뼈 튀김 우동’ 등 토종닭과 육계특수부위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특히 파인다이닝을 표방한 ‘K치킨 오마카세’는 오직 교촌필방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음식으로 서울 이태원을 오가는 외국인들 사이 입소문이 났다. 이른바 ‘치마카세’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지 이제 막 1년이 지났지만, 실제 방문객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일 정도다. 현재 운영 중인 메뉴는 지난해 10월 리뉴얼을 통해 새롭게 개발됐다. 오마카세(셰프의 요리)로 제공되는 디너 코스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계절마다 조금씩 변화를 준다. 본래 ‘필방’은 전통적으로 붓을 파는 상점이나 글을 쓰는 서재를 의미한다. ‘교촌필방’이란 이름은 교촌치킨이 붓으로 정성껏 소스를 발라 치킨 메뉴를 완성한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매장 곳곳을 장식하는 먹과 붓, 돌과 물 역시 ‘교촌의 변치 않는 장인 정신’을 상징한다. 교촌필방의 김영균 헤드셰프는 “교촌필방은 단순한 한식을 넘어 한국식 치킨이 생소한 분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맛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치킨 한류’ 선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촌필방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디너 코스(오마카세)는 매일 1·2·3부로 세 차례 진행된다. 각각 오후 5시30분, 8시에 시작되는 1부와 3부는 교촌필방 내 프라이빗 룸 ‘묵암(嘿暗)’에서 매 타임 최대 6인까지 수용 가능하다. 묵암은 비밀의 방 같은 교촌필방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히든 플레이스로, 오픈 주방과 바 테이블로 이뤄져 있어 코스가 진행되는 동안 셰프가 직접 요리를 하며 메뉴에 대해 설명해 준다. 오후 7시에 진행되는 2부는 홀에서 즐길 수 있다.
현재 디너 코스는 ‘맞이 3종’(에피타이저)으로 시작해 치킨 볼 카츠, 새싹 삼 냉채&닭 가슴살, 토종닭 콩피&목살 숯불구이, 속을 채운 닭 날개 튀김, 치킨버거, 다담 영양 솥밥&반상, 디저트 등 8코스로 진행된다. 김영균 셰프는 “디저트를 제외한 오마카세의 모든 메뉴들은 토종닭 한 마리를 오롯이 사용한 메뉴들로, 닭의 거의 모든 부위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닭 한 마리로 이렇게 다양하고 깊은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오마카세에서 가장 처음 맛보게 되는 맞이 3종은 얇게 저민 토종닭의 가슴살을 살짝 볶아낸 삼색 채소와 함께 말아 저온 조리한 뒤 고소한 잣 소스 위에 올린 ‘계선’과 닭 안심 구이를 얇은 떡피에 싼 ‘떡쌈 말이’, 닭의 근위를 저온 조리해 부드럽게 만든 뒤 장아찌와 함께 새콤달콤하게 무친 ‘근위 초무침’이다. 계선은 고기로 만든 반찬을 뜻하는 ‘육선’에서 따온 말로 ‘고기 육(肉)’ 대신 ‘닭 계(鷄)’를 썼다. 계선의 잣 소스는 볶은 잣과 물로만 만든 특제소스로 표고버섯, 당근 등과 어우러져 고소한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지게 한다. 쫄깃하고 아삭한 식감의 떡쌈 말이는 달달한 맛으로, 근위 초무침은 상큼한 맛으로 입맛을 돋운다.
치킨 볼 카츠는 교촌 오리지널 간장 소스에 살짝 졸인 반숙란을 빵가루로 감싸고, 그 바깥쪽에 부드럽게 갈아낸 토종닭 특수부위와 살코기를 입히고 다시 빵가루를 묻혀 튀긴 다음 감태로 감싼 메뉴다. 나이프로 자르면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부드러운 노른자가 흘러 나와 눈을 즐겁게 한다. 부드럽게 씹히는 치킨 카츠에 반숙란이 고소함을 더해주고, 교촌 오리지널 간장소스의 달콤짭짤한 맛과 은은한 마늘향이 풍미를 배가시킨다. 감태는 식감을 더욱 바삭하게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다른 재료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감칠맛을 낸다. 김 셰프는 “빵가루에 사용되는 빵은 주방에서 직접 구워낸 빵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 다음 메뉴로 제공되는 새싹 삼 냉채&닭 가슴살은 저온에서 수비드 조리한 닭 가슴살을 청귤 소스로 버무려 상큼한 맛을 살린 냉채 요리다. 치킨 볼 카츠로 살짝 느끼할 뻔한 입맛을 쌉싸름한 삼과 새콤달콤한 채소로 잡아준다. 부드러운 닭 가슴살 피스 아래에는 채 썬 파프리카와 오이, 배가 깔려 있는데 삼을 먼저 먹은 뒤 닭 가슴살과 3가지 채소는 함께 먹는 것을 추천한다.
첫 번째 메인 메뉴로 제공되는 토종닭 콩피&목살 숯불구이는 ‘콩피’ 조리기법으로 기름에 장시간 서서히 조리한 토종닭의 닭다리, 목살을 솔잎과 함께 숯불에 구워낸 요리다. 구운 아스파라거스와 통마늘, 파스닙(하얀 당근) 소스가 함께 제공된다. 맛과 재미를 살려 줄 요소로 겉보리소금, 고추냉이, 김치트러플 핫소스 외에 교촌의 시그니처 3가지 소스(교촌 오리지널·레드·허니)와 붓이 제공돼 손님이 취향껏 소스를 닭고기에 발라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닭다리 콩피는 ‘겉바속촉’의 진수를 보여 주고, 목살구이는 닭 목살 특유의 쫄깃함과 숯향이 만나 소금만 찍어 먹어도 풍미가 좋다.
속을 채운 닭 날개 튀김은 토종닭 아랫날개에 새우살과 볶은 표고버섯, 새송이버섯을 속으로 채워 튀겨낸 요리다. 닭껍질을 피로 사용하는 일식의 닭껍질 교자를 응용한 메뉴다. 모양은 평범한 치킨 윙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한 입 베어 물면 전에 없던 색다른 미식 경험을 할 수 있다. 오마카세의 치킨버거는 토종닭의 다양한 부위와 닭가슴연골을 넣어 구운 패티와 볶은 톳, 된장 소스를 곁들인 수제 치킨버거다. 홀 메뉴로 제공되는 ‘필방 치킨버거’는 바삭하게 튀긴 치킨이 들어가지만 디너 코스의 치킨버거는 비프버거처럼 구운 패티를 사용해 서로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 준다.
푸짐한 다담 영양 솥밥&반상은 ‘몸에 좋은 영양을 다 담았다’는 뜻의 이름(다담)처럼 균형 잡힌 반상 메뉴다. 특제 갈비양념소스를 발라 불향을 입힌 닭고기를 영양 솥밥 위에 올렸고, 제철나물 반찬과 백김치, 풀치 육수와 양구 시래기로 맛을 낸 시래기국이 함께 제공된다. 코스 마지막의 크림브륄레와 차(따뜻한 캐모마일차 또는 차가운 국화차)는 교촌필방의 숨은 인기 메뉴다. 크림브륄레는 커스터드 크림 위에 바삭한 설탕 캐러멜을 입힌 프랑스 디저트로, 달콤하고 부드럽게 코스를 마무리해 준다.
교촌필방에서는 주류 페어링 서비스도 제공한다. ‘모엣 샹동’ 샴페인으로 시작해 ‘소비뇽 블랑’, IPA 맥주, 페일 에일 맥주, ‘은하수 8도’ 막걸리로 이어지는 디너 코스의 페어링 주류 코스는 2만원이다. 특히 은하수 8도는 350년 역사의 전통 양조 비법으로 물과 쌀 누룩으로만 빚은 프리미엄 막걸리로, 요거트 같은 걸쭉한 식감이 특징이다. 그 밖에 하우스 와인과 맥주, 하이볼, 증류식 소주, 탄산 음료 등을 함께 곁들일 수 있다.
교촌필방의 홀 메뉴는 교촌의 4대 메뉴로 꼽히는 교촌 오리지널·허니·레드·블랙시크릿 치킨 4종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필방 시그니처 플래터’(윙&봉)와 치킨 4종 중 2종을 윙과 다리 부위로만 즐길 수 있는 ‘필방 콤보 플래터‘다. 교촌의 수제 맥주로 마리네이드해 은은한 홉 향을 입힌 ‘필방 스페셜 치킨‘, 수제 닭고기 소로 속을 가득 채운 ‘겉바속촉’ 고추튀김과 쪽파향이 가득한 닭근위 튀김으로 구성된 ‘필방 반반 튀김‘, 부드러운 먹물 번과 매콤한 소스를 곁들인 ‘필방 치킨버거’도 교촌필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다.
교촌필방의 다이닝 공간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교촌필방은 외부 파사드, 필방(전이공간), 내부 중앙부의 커다란 붓과 벼루, 먹을 형상화한 붓 오브제 공간과 아카이브 공간, DJ 존, PDR, 오마카세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붓 오브제 공간은 무형문화재 박경수 장인이 직접 제작한 대형 자개 붓이 자욱한 물안개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의 공간 예술을 구현한다. 교촌의 수제 맥주 브랜드 ‘문베어브루잉’의 맥주병을 재활용 해 미디어 디스플레이를 만든 DJ 존, 교촌의 다양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 존, 교촌 시그니처 소스의 원재료인 청양 홍고추·마늘·오향 등 재료를 유리병에 담아 전시한 아카이브 공간도 눈길을 끈다.
한편 김 셰프는 파라과이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10대 때 한국에 들어와 정착했다. 요리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스무살 때부터 한식, 중식, 일식 등 다양한 종류의 레스토랑 현장에서 음식을 탐구하며 실력을 쌓았다.
교촌필방
장르 한식
위치 서울 용산구 보광로 127 유영빌딩 1층
헤드셰프 김영균 셰프
영업시간 화~일 12:00~24:00(15:00~16:00 브레이크 타임, 22:30 라스트 오더)
가격대 단품 1만~5만원, 디너 코스(치킨 오마카세) 7만원
프라이빗 룸 1개(치킨 오마카세 바 테이블 최대 6인)
전화번호 02-6263-1992
주차 발레파킹
송경은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