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좋다 햇빛 알갱이가 다 보이네 / 하늘에서 해가 내려 알을 슬어 놓은 듯”.
정회성 시인의 ‘봄날’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알알이 빛나는 봄날의 햇살은 희미한 온기만 풍기던 겨울 햇살과 느낌이 다르다. 개나리의 노랑과 진달래의 분홍과 목련의 자주가 햇빛의 알 속에 담겨서 꽃들을 재촉한다. 온 산의 나뭇가지에 신호를 보내 푸른 잎들을 고개 들게 하고, 들판의 버들을 간질여 튀밥 같은 꽃들을 날리게 한다. 바람은 향기를 실어 코끝을 싱그럽게 하고, 시내는 아지랑이를 피워서 마음을 신비롭게 한다. 바야흐로 자연을 즐기기 좋은 계절이다.
‘자연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프런트페이지)에서 세계적 신경과학자인 미셸 르 방 키앵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 소장은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인간 행복에 필수라고 말한다. 점심시간 풀밭에 누워서 즐기는 짧은 휴식은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해준다. 회색 콘크리트로 감싸인 사무실 빌딩을 벗어나 잠깐만 공원을 거닐어도 우리 영혼은 크게 위로받는다.
자연은 힘이 세다. 아주 짧은 접촉만으로도 자연은 우리를 고통과 불안에서 해방하고 기쁨을 늘려주며 우울을 줄여준다. 우리 몸과 마음이 자연에서 깊은 만족을 느끼고, 건강해지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0년 전까지 자연에 의존해 살아왔다. 따라서 우리 몸과 마음은 도시가 아니라 자연환경에 최적화해 진화했다. 미국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 유전자에 새겨진 그 편향을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애)라고 불렀다. 인간에겐 자연에 대한 근원적 사랑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 사랑이 충족되지 못할 때 우리는 불안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에도 현대인이 행복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갈수록 불안과 피폐에 시달리는 이유다. 바깥 풍경이 거의 보이지 않는 벽들로 감싸인 생활 공간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1984년 미국 심리학자 로저 울리히는 창밖에 보이는 나무의 존재가 환자 회복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복부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10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 그는 창 밖으로 자연이 보이는 병실에 입원한 환자는 벽만 보이는 병실에 입원한 환자보다 진통제도 적게 필요했고, 퇴원 속도도 더 빠름을 알아냈다. 녹색 풍경이 우리 안에 호르몬 변화를 일으켜 고통을 감소시키고, 회복력을 높여준 것이다.
우리는 녹색의 존재다. 주거지역에 녹지가 많을수록 신체 질병도 덜 걸리고, 정신 건강 상태도 좋아진다. 회색의 건물과 거리를 벗어나 나무와 풀이 가득한 숲속을 걷거나, 강이나 바다에 둥둥 떠 있거나, 새벽 첫 빛을 누릴 때 행복감은 부풀어 오른다.
키앵에 따르면, 숲속 산책은 우리 영혼과 자연을 하나로 연결한다. “부식토의 향기, 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우리를 어루만지는 산들바람”에 젖어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곤두선 신경의 긴장이 풀리고 마음의 가시가 잦아들면서 아늑한 포근함이 우리를 감싼다. 인간이 자신을 넘어선 숭고한 존재와 결합할 때 느끼는 감정, 이것이 행복이다. 숲에서 우리가 평온을 얻고, 어머니-자연 속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숲의 고요함이 자율신경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자율신경계는 뇌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려움, 분노,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교감신경이 작동해 정신을 예민하게 만들고, 몸을 긴장시켜 싸우거나 도망치도록 준비시킨다. 반대로 휴식 상황이 되면, 부교감신경이 작동하면서 몸을 이완하고 신경을 가라앉히며 정신을 쉬게 만든다. 교감신경의 활성화, 즉 스트레스가 면역계를 망가뜨려 암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이완 없이 곤두선 신경은 우리를 파괴한다.
숲속 산책은 마음의 면역력도 길러준다. 자연에 둘러싸인 일상 환경에서 살아가면 기억력과 집중력이 향상되고, 불안, 우울, 고통, 강박 등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마음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속에 들어가서 둥둥 떠 있는 경험은 몸과 마음을 자궁 속 상태로 되돌린다. 타자와 유대감과 일체감을 느끼던 시절, 그 시간을 초월한 완벽한 소속감을 되돌려준다. “쉴 새 없이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파도에” 이완된 몸으로 떠 있을 때, 우리는 대양감을 느끼면서 몸이 녹아버리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로맹 롤랑은 이를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느낌, 한계도 경계도 없는 망망대해 같은 감각”이라고 말했다. 대양감은 자아에 대한 집착, 세상에 대한 도돌이 생각에서 벗어나 고요함, 평온함, 안정감으로 이끈다. 자아를 해체해 불안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자신과 세상의 완벽한 조화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첫 빛을 마주하는 순간은 우리 안에서 기적을 일으킨다. 만물이 잠들어 있는 거대한 고요 속에서 파랗게 물드는 하늘 아래 맞이하는 여명의 빛은 밤새 괴롭혔던 문제들을 한순간에 무화하고, 침울하고 어두운 마음을 희망으로 부풀린다. 프랑스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는 이 시간을 ‘푸른 시간’이라고 불렀다. 날이 밝아오는 무렵 푸른 하늘 아래 떠오르는 햇빛은 생체시계의 호르몬 작용을 변화시켜 의식 각성과 인지를 촉진함으로써 긍정적 생각이 떠오르게 한다. 이처럼 빛은 우리 뇌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과 같다. 햇살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삶은 몸과 마음을 파괴한다. 밖으로 나가 나뭇가지의 느린 움직임, 흐르는 물, 바람의 속삭임을 느낄 때 우리 몸과 마음은 휴식을 누리고 집중력과 사고력이 회복된다. 키앵은 말한다. “인간은 고립된 상태로 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다. 인간은 뇌와 몸과 환경을 연결하는 복잡한 교환으로 구성된다.” 자기 경험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일체성을 적극적으로 구현할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
봄날이다. 자연에 저항하기보다 자연과 하나 되는 시간을 더 자주 누릴 때다. 햇살은 우리 안에 활력과 기쁨을 불어넣어 겨울의 우울을 무찔러준다. 숲속 산책은 우리 안에서 걱정을 몰아내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며 내적 갈등을 해소한다. 아름다운 꽃들은 마음에 경탄을 자아내고 영감을 불어넣으며 창의성을 북돋운다. 새로운 인생, 행복한 삶을 시작하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 자연 속으로 뛰어들자.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