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도 모르고 일상어로 쓰는 것이 한자어이다. 한자에 처세(處世)·처녀(處女)·처지(處地)·처신(處身)과 같이 ‘처(處)’가 들어가는 말이 있다. 이때 ‘처(處)’는 동사 역할을 한다. 처세는 세상(世)에 내가 머물 자리를 정한다(處)는 뜻이다. 처녀는 과거 봉건사회에서 유래한 여성차별적 언어이다. 밖으로 나돌게 하지 말고 특정한 곳에 여자(女)를 머물게 한다(處)에서 유래한다. 처지는 특정한 땅(地)에 머물 곳을 잡다(處)는 의미이다. 이렇게 동사로서 ‘처(處)’는 ‘특정 터(place)를 잡는다(take)’는 뜻이다. 터를 잡게 되면 사건이 발생한다(take place).
어디에 터를 잡느냐는 건물·무덤에 국한되지 않는다. 약속장소를 정할 때도, 행사장을 정할 때도 고민한다. 유명인과 주요 정치인들의 회견 장소를 가끔 눈여겨보는 이유이다. 장소뿐만 아니라 그곳에 등장하는 실내 장식품도 그들의 의도를 표현하는 주요 소품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3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상계동 ‘마포참숯갈비’에서 ‘국민의힘’ 탈당 기자회견을 하였다. TV를 시청하던 필자에게 이 대표 뒤의 산수화가 눈에 띄었다. 노원이란 지명과 산수화 한 점으로 이준석 대표를 다시 보는 계기였다.
왜 그는 노원구 상계동에다 회견 장소를 잡았을까? “그가 사는 곳이고 그의 지역구”라는 답이 쉽게 나올 것이다. 그럼 왜 그 ‘마포참숯갈비’일까? 좁은 식당 안에서도 산수화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그곳은 유명한 곳이 아니다. 가성비가 좋아 소주 한잔하기에 좋은 곳이다. 평소 이준석 대표가 가끔 들르던 곳이다.
다른 정치인들의 기자회견 장소와는 다른 파격이었다. 왜 여의도를 피했을까? 여의도 터는 풍수상 어떤 곳일까? 여의도는 한강이란 물로 둘러싸인 곳이며, 바람이 센 곳이다. 그곳은 모래땅이었다. 물은 재물을 뜻한다. 바람 따라 흘러가는 것이 풍문이다. 모래땅은 흩어지는 속성이 강하다. 금융·방송의 터로서는 조금 적절하나,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 터로서는 마땅하지 않다. 콩가루 집안이 된다. 국회의원들의 저질 발언도 그렇다. 이합집산하며 끊임없이 부침하는 정당들도 여의도라는 터의 성격과 무관치 않다.
필자의 주관이 아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평가이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문재인 두 대통령을 당선시켰고,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번갈아 가며 비대위원장으로 두 당을 회생시켰다. 그 과정에서 그는 여야의 많은 국회의원들을 만났다. “다선이든 초선이든 제대로 공부하는국회의원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무식한 줄 몰랐다.”개개인 국회의원 문제가 아니라 터의 탓은 아닐까?
노원이란 땅은 어떨까? 지금은 서울의 주요 학군이 되었으나, 1970년대 노원은 끔찍하였다. 1978년 처음 서울에 온 필자가 주소 한 장 가지고 고향 지인 집을 찾아갔다. 상계동이었다. 여러 집이 함께 쓰는 공동화장실 문을 열다 말고 그냥 나왔다. 그랬던 주변부가 이제 중심지가 되었다. 1970년대 이후의 상황이지만, 역사적으로 노원구는 한때 도읍지 후보였다.
노원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923년 전인 1101년이다. 풍수설에 빠진 고려 숙종은 “태평성대와 성군을 약속”해줄 새로운 도읍지를 찾는다. 윤관·최사추 등 조정 대신들이 노원역(노원), 해촌(도봉산역), 한양(경복궁·청와대), 용산(용산구) 등을 살폈다. 이때 처음 노원이 등장한다.
뒤로는 주산 수락산이, 좌우에는 도봉산과 불암산이 감싸는 거대 분지이다. 그 사이로 중랑천이 흐른다. 제방 시설이 없던 그 당시 중랑천 폭은 넓었고, 수량도 많았다. 노원구 상계·중계·하계동에 모두 ‘계(溪)’가 들어간다. 중랑천의 상류가 상계이고, 하류가 하계동이다. 물가의 최적 식생(植生)은 무엇이었을까? 갈대(노·蘆)이다. 갈대가 흐드러진 벌판(原)이었다. 이를 산수화로 그려보면 어떤 모양일까? ‘마포참숯갈비’ 집 벽면에 걸린 산수화는 그 축소판이다.
산수화가 어쨌다는 것인가?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그림은 일종의 의식행위이지만 구체적 결과물을 낳는다. 중국 고대 화가 종병(宗炳, 375~443년)의 ‘산수화론’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종병은 말한다. “사람이 응당 눈으로 보고 마음에 통하는 경지를 이(理)라고 하는데, 잘 그려진 산수화의 경우는 눈도 동시에 응하게 되고 마음도 동시에 감응하게 된다.” 이른바 그의 전신론(傳神論)이다. 기운생동한 산수화의 정신(神)은 화가·소장자·관람객에게 전해진다(傳).
‘산은 인물을 키우고, 물은 재물을 늘린다(山主人, 水主財)’는 것이 풍수 격언이다. 산수화에 묘사된 산이 좋으면 인물이 나고, 물이 흐르면 재물이 끊이지 않는다. 이준석 대표가 배경으로 삼았던 산수화는 10여 년 전 인근 새마을금고 사무실이 정리되면서 버려진 그림이었다. 이를 본 ‘마포참숯갈비’ 주인이 주어다가 30만원을 주고 다시 표구하여 걸어두었다. 버려진 산수화가 숯불갈빗집 주인 덕에 목숨을 건졌다면, 그 이름 없는 산수화는 이준석 대표 덕에 세상에 유명해졌다. ‘노원’이란 땅과 ‘상계’라는 물, 그리고 산수화를 염두에 두고 일부러 이준석 대표가 그곳을 정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직관이 반영된 결정임은 분명하다.
2024년 현재, 그는 38세로 대통령 피선거권이 없다. 앞으로 30년 이상 정치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 그에게 대권의 기회가 올 것인가? 김종인 위원장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1960년대부터 조부인 김병로 대법원장과 한방을 쓰면서 현실정치의 한복판을 경험했다. 한국 정치사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독일에서 경제학, 특히 조세·재정을 전공하여 우리 헌법 제119조 2항 ‘경제 민주화’를 관철한 주역이다. 한국의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정치경제학자이자 정치가이다. 지금도 언론들이 그의 정치 평을 경청하고, 여야의 정치인들과 지망생들이 광화문 그의 연구소(대한발전전략연구원)를 찾는 까닭이다. 김 위원장은 말한다. “대권을 거머쥘 수 있는 능력과 성품이 있다.”
김두규 우석대 교수
국내 손꼽히는 풍수학자다. 현재 우석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풍수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2호 (2024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