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제철 식재료들이 저마다의 형태로 아름답게 어우러진 한상. 프렌치를 바탕으로 시시각각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강민철 레스토랑’의 코스는 강렬한 아뮤즈 부쉬(Amuse bouche·전채)로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다이닝 코스에서 아뮤즈 부쉬는 한입 거리 2~3개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 아뮤즈 부쉬는 조금 다르다. 하나하나만 놓고 봐도 훌륭한 아뮤즈 부쉬인데 이런 한입 거리 8~10가지를 한 번에 내놓는다. 묵직한 통나무와 사람 손 모양의 도자기까지 플레이트도 화려하지만, 특히 그 위에 올려진 요리들의 다채로운 색채와 맛의 향연은 아트 그 자체다. 어느 것 하나 그냥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없다. 연꽃이 피어난 연못, 나무와 형형색색의 꽃밭 등 자연의 모습을 닮은 테이블은 깊은 숲속 정원을 옮겨놓은 듯하다.
강민철 오너셰프(38)는 20대 초반부터 미국과 홍콩, 프랑스에서 세계적인 미식 리스트인 ‘미쉐린 가이드’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을 두루 거쳤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라토가의 양식 다이닝 레스토랑 ‘플럼드 홀스(Plumed Horse·1스타)’와 홍콩의 프렌치 다이닝 레스토랑 ‘라뜰리에 드 조엘 로부숑(L’Atelier de Joel Robuchon·3스타)’과 ‘스푼 바이 알랭 뒤카스(Spoon by Alain Ducasse·2스타)’, 프랑스 파리의 ‘세미야(Semilla·1스타)’,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naire·3스타)’ 등이다. 프렌치 요리의 거장으로 불리는 셰프들 밑에서 혹독한 훈련을 통해 얻은 ‘자연 본연의 맛을 조화롭게 살린 다이닝’이라는 철학을 풀어내고 있다.
2021년 10월 문을 연 강민철 레스토랑은 본래 셰프가 연구를 위한 작은 아틀리에 공간으로 마련한 곳이다. 하지만 다이닝 업계 안팎에 입소문이 나면서 오픈한 지 꼭 1년 만인 2022년 10월 ‘미쉐린가이드 서울 2023’에 1스타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올렸다.
강민철 레스토랑은 어느 것 하나도 정형화된 게 없다. 강 셰프가 프랑스 파리에서만 7년을 보낸 만큼 이곳을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보는 시선이 많지만 이런 장르를 뛰어넘는 게 강민철 레스토랑의 매력이다. 다양한 스타일의 프렌치 퀴진과 클래식 프렌치 소스를 기반으로 제철 자연 식재료의 섬세한 조화를 이끌어내지만, 식재료의 90% 이상을 한국에서 나는 것들로 사용하고 있고 조리 기법도 국가와 문화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강 셰프는 “제가 따로 어디 가서 저희가 프렌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그동안 제가 주로 해왔던 걸 토대로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해 주시는데, 저는 좀 더 크리에이티브한 식당을 지향한다”며 “요즘에는 전통 한정식집을 가도 잡채에 한식 식재료가 아닌 파프리카가 나온다. 그 정도로 지금은 요리들 간의 경계가 많이 사라졌고, 프렌치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통 프렌치보다는 프렌치 컨템퍼러리에 가깝고, 나아가 모던 컨템퍼러리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테이스팅 코스는 런치와 디너 각각 여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비슷한 단일 코스로 진행되지만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메뉴판은 없다. 계절과 상황, 식재료 각각의 상태 등에 따라 같은 메뉴라도 그때그때 조금씩 변형되기도 한다. 날마다 그날에만 맛볼 수 있는 조합이 테이블 위에 올라오게 된다. 강 셰프는 “메뉴판이 있으면 거기에 맞춰야 하고 그러다 보면 그 안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며 “예를 들어 생선요리의 경우 평소엔 금태를 썼는데 오늘 이보다 더 좋은 도미가 있다고 하면 도미 요리를 낸다”고 설명했다.
강민철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 중 첫째로 꼽히는 것은 마치 한정식 한상처럼 나오는 화려한 비주얼의 아뮤즈 부쉬다. 코스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물론, 전채라는 본연의 역할에 맞게 다양한 미각을 자극한다. 8가지 이상의 한입 거리가 모여, 어쩌면 메인 디시보다도 더 눈길이 가는 메뉴다. 특히 녹황색 채소와 뿌리채소, 버섯 등 각종 채소를 다양하게 활용했다. 강 셰프는 “평소 1일 1식을 하는데 그때도 채식 중심의 식사를 즐기는 편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채소가 정말 맛있어서 그렇게 먹는 것”이라며 “다채로운 채소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다양한 맛으로 식사를 시작할 수 있게 꾸몄다”고 말했다.
일례로 샐러리를 간 뒤 사이퍼건을 이용해 사이사이 질소를 채우는 방식으로 만든 샐러리 폼은 샐러리 고유의 풍미는 살리면서도 질긴 식감을 폭신폭신한 식감으로 대체해 색다른 재미를 더했다. 사람 손 모양의 그릇에 올려진 샐러리 폼은 폼 클렌징을 살포시 손바닥에 덜어낸 것 같은 모습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손가락 부분 끝에 살짝 올려진 얇은 종이는 ‘오브리토’라고 불리는 식용 종이로, 전분 추출액과 설탕 소스 등을 활용해 만든 것이다. 혀 위에 올려 입에서 사르르 녹여 먹는 필름 사탕과 유사하다. 래디시(작고 동그란 적색 뿌리를 가진 겨자과의 식용 채소)와 버터로 만든 카나페 형태의 작은 소보로에는 ‘오발리스’라는 새콤달콤한 잎이 더해져 입맛을 돋운다. ‘프로마주 블랑(액체에 가까운 생치즈)’ 안에 레몬으로 만든 겔을 채우고 레몬 무슬린을 곁들인 한입 거리와 오렌지 마멀레이드가 들어간 당근 타르트도 식전에 상큼한 자극을 준다. 치즈로 짭조름한 맛을 살린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전통 디저트인 ‘구제르’도 별미다. 부드러운 슈 안에 크림 같은 치즈가 채워져 있어 산뜻하고 달콤한 샴페인과 잘 어울린다. 프랑스 햄의 일종인 잠봉을 훈연해 베샤멜 소스를 더한 요리와 얇은 배추를 동그랗게 말아 치즈 크림을 바르고 피스타치오를 곁들인 전채도 식전주와 함께 먹기 좋다.
새우와 닭고기를 창의적으로 조합한 요리도 강민철 레스토랑의 또 다른 시그니처 메뉴다.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새우인 스페인 카라비네로새우(진홍새우)를 영계로 감싸 재미있게 표현한 구운 요리다. 닭뼈를 우려 만든 소스와 새우에서 뽑아낸 소스를 조합해 셰프만의 특제 소스를 만들었다. 채소를 사랑하는 강 셰프가 브로콜리를 닮은 백색의 콜리플라워를 화이트 초콜릿으로 감싼 디저트도 이색 메뉴로 인기다.
강민철 레스토랑은 훌륭한 와인 리스트로도 유명하다. 유례 깊은 프랑스 와인인 ‘생 에스테프 샤또 꼬스 데스뚜르넬(Chateau Cos d’ Estournel)’ 2006년산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학교를 나온 노윤수 소믈리에가 프랑스 와인 위주의 페어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노 소믈리에는 지난해 9월 국내 최고의 소믈리에를 가리는 ‘제 22회 한국 소믈리에 대회’에서 최종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강민철 레스토랑은 다이닝 업계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프랑스 파리의 ‘라 리스트(LA LISTE)’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1000대 레스토랑’에도 등재됐다. 강 셰프는 “매년 라 리스트의 발표가 이뤄지는 곳이 파리에서 지낼 때 제가 살던 집 바로 옆이기도 하고, 리스트에 오른 분들이 제가 직접 모셨던 분들을 포함해 훌륭한 셰프들이 많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감회가 남달랐던 것 같다”고 밝혔다.
강민철 레스토랑은 내년 중순경 한남동으로 이전하면서 새로운 브랜드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강 셰프는 “내년 중 건물이 완공되는 대로 이전할 계획이다. 이곳은 사실 레스토랑 오픈 준비 과정에서 메뉴 연구를 위해 원 테이블 레스토랑처럼 조그맣게 연구실로 만든 곳인데,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찾아주셔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새롭게 오픈하는 레스토랑에서는 좀 더 한식적인 요소를 강화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저는 한국 사람인데 우리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남의 나라 음식과 역사를 먼저 공부한 것에 어느 순간 회의감이 왔다. 테크닉을 넘어서서 좀 더 한국적인 맛이나 멋을 살린 음식을 선보이고 싶다”며 “그렇다고 완전한 한식 다이닝을 하겠다는 건 아니다. 독창적인 요리를 하겠다는 철학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강민철 레스토랑
장르 프렌치 컨템퍼러리
위치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68길 18 B1층
오너셰프 강민철 셰프
영업시간 화~토 12:00~22:00(14:30~18:00 브레이크 타임), 매주 일·월 정기휴무
가격대 런치 코스 18만원, 디너 코스 34만원
프라이빗 룸 없음(단, 테이블 3개만 운영)
전화번호 0507-1387-2511
주차 발레파킹
[송경은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2호 (2024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