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8일, 보석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55.22캐럿의 모잠비크 루비 ‘에스트렐라 드 퓨라’가 뉴욕 소더비에서 컬러스톤 경매 사상 최고가에 낙찰된 것이다. 이는 철옹성 버마의 장벽을 넘어서는 모잠비크 루비의 성장 잠재력을 입증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 루비를 채굴한 퓨라 젬스(Fura Gems) 또한 지속 가능한 고품질 원석 생산업체로서의 명성을 한층 견고히 하며, 컬러스톤 산업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역사적인 경매일로부터 8개월이 지난 올 2월 초, 필자는 UAE 샤르자(Sharjah)의 자유구역에 위치한 퓨라 젬스 본사를 직접 방문했다.
“그동안 장인정신과 창의력에 주력해온 주얼리 산업이 이제는 보석의 원산지부터 소비자까지 투명성을 강조하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지속 가능하고, 직원 친화적이며 지역사회 중심의 기업으로 남는 것입니다. 이제, 그 현장으로 가볼까요?”
한 시간가량 열정적인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마케팅 디렉터 잔루카 마이나가 우리를 복도 끝의 룸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상상도 못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벽 한쪽을 가득 메운 거대한 스크린에 모잠비크, 콜롬비아, 호주의 채굴 현장 수십 개가 실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각자의 화면을 주시하고 있는 네댓 명의 직원들 중 한 명이 마우스를 움직이자 콜롬비아의 채굴 현장이 수십 배로 확대되었다. 때마침 터널 안에서 안전모에 헤드램프를 쓴 광부가 방금 ‘캐낸’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초록색 원석을 들어 카메라 앞에 내보였다. 모니터를 뚫고 나오는 에메랄드의 강렬한 컬러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어 모잠비크의 거대한 노천 광산이 나타났다. 얼떨떨한 기분도 잠시, 모잠비크의 루비는 지표에서 비교적 얕은 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채굴이 아니라 ‘농사’라는 디렉터의 농담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빨간 작업복을 입은 여자들이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루비 원석을 선별하는 장면에 이어 호주의 사파이어 광산과 주변의 토지 복구 현장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3개 광산의 ‘가상’ 탐험을 마쳤다. 필자는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30분 만에 수천, 수만 ㎞ 떨어진 3개 대륙을 넘나들 수 있는 현실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지난 100년간 주얼리 산업은 주로 다이아몬드에 치중되었고 컬러스톤 분야는 투자 부족과 대규모 채굴 기업의 부재로 상대적으로 발전이 미흡한 상황에 처했다. 이에 광산업계의 주요 인물인 데브 셰티가 2017년 새로운 도약을 위해 나섰다. 투명하고 안정적인 원석 공급에 초점을 맞춘 채굴 기업 퓨라 젬스를 UAE에 설립한 것이다. UAE는 동남아시아의 연마 센터와 각 대륙의 광산, 그리고 세계 각지의 바이어들에게 편리한 접근성을 제공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2018년 콜롬비아의 에메랄드를 시작으로 2019년 모잠비크의 루비, 2020년에는 호주의 사파이어 채굴권을 차례로 인수하며 퓨라 젬스는 세계적인 컬러스톤 공급망을 구축했다. 2023년에는 마다가스카르의 사파이어 채굴에도 착수하여 설립 6년 만에 3대 컬러스톤의 핵심 공급처를 모두 확보했다.
에메랄드는 베릴(Beryl·녹주석)이라는 광물의 변종으로 생명력과 재생을 상징하는 싱그러운 녹색으로 인해 수천년간 인류를 매혹시켰다. 다른 보석과 달리 내포물로도 유명한데 그 모습이 나무나 풀이 우거진 정원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자르댕(Jardin)’이라는 시적인 이름으로 불릴 정도다. 에메랄드 광산 하면 오랫동안 이집트, 오스트리아, 파키스탄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16세기 초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콜롬비아 광산을 발견하면서 에메랄드의 채굴과 유통에 대혁명이 일어났다. 콜롬비아의 에메랄드 광맥은 중부 보야카주의 코르디예라 오리엔탈 산맥 동쪽과 서쪽 경계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약 6500만 년 전에 생성된 동쪽 광맥에는 치보르, 가찰라, 마카날 광산이 속해 있다. 서쪽 분지의 광맥은 이보다 늦은 약 3800만~3200만 년 전에 생성되었는데 무조, 코스케스, 라 피타, 쿠나스, 페나스 블랑카 같은 유명 산지들이 분포되어 있다. 오늘날 콜롬비아는 전 세계 에메랄드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며 이 중 9분의 1이 보석 품질이다. 특히 무조, 치보르, 코스케스에서 생산되는 에메랄드가 양과 품질면에서 뛰어나다.
이 가운데 코스케스 에메랄드의 유일한 공급원이 바로 퓨라 젬스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약 228㎞ 떨어진 코스케스는 46㏊에 이르는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악명이 높다. 1646년에 발견된 이래 오랫동안 전통적인 방식으로 채굴되었는데, 퓨라 젬스가 진출한 이후 혁신적인 장비와 첨단 시스템을 도입하여 높은 생산성과 신속한 확장을 실현했다. 광맥의 과학적인 분석과 현장 광석 가공,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실시간 최적화 기술을 통해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하고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코스케스의 에메랄드는 살짝 노란빛이 도는 녹색부터 푸른 기가 감도는 강한 채도의 녹색까지 가장 폭넓은 색상을 아우른다. 사실상 콜롬비아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색상의 원석을 만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퓨라 젬스에서는 원석이 채굴되는 순간부터 출처, 무게, 품질 및 윤리적 채굴 인증과 같은 중요 정보를 디지털 원장에 기록한다. 유통업자, 제조업자, 소매업자로 이동할 때마다 절단, 연마, 운송 및 소유권 변경을 포함하여 블록체인에 각종 정보를 업데이트할 수 있다. 이렇듯 과학적인 원석 등급 체계와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에메랄드의 여정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킨 퓨라 젬스는 광산부터 소비자까지 모든 단계에서 투명성을 보장하고 있다.
사실 기술적 혁신은 퓨라 젬스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은 지역공동체와의 상호작용에도 큰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설립 초기부터 대규모의 현지 광부 고용 및 현지 업체와의 협력은 기본이고, 대량의 광산 폐기물 처리를 위해 여성이 운영하는 친환경 세척 공장을 건설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정점에서는 ‘코스케스 코로나 기금’을 마련하여 4000여 명의 지역 주민에게 의료와 식량을 제공했다. 또한 ‘코스케스 트레이닝 아카데미’를 통해 가축 사육, 건강 클리닉, 제빵소, 바느질 센터와 같은 소규모 비즈니스 프로그램과 장학금 지원 등으로 2000명 이상의 주민을 돕고있다. 이러한 다방면의 노력은 지역사회의 번영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원동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 <젬스톤 매혹의 컬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