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빅토리아 여왕과 평범한 인도 청년 압둘의 신분을 뛰어넘은 역사상 가장 특별한 우정 이야기’.
영국 빅토리아(1819~1901) 여왕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최전성기 때 64년간 여왕 자리를 지킨 군주다. 최근 별세한 엘리자베스 여왕 이전까지 가장 긴 기간 동안 왕좌를 유지한 그녀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만들었다. 남편 앨버트 공과의 금슬도 좋아 무려 9명의 자녀를 뒀고, 아들딸이 유럽 각국 왕가 귀족과 결혼해 자손을 퍼뜨리면서 훗날 ‘유럽의 할머니’라 불리게 된다.
(영광의 역사 뒤의 흑역사. 빅토리아 여왕은 혈우병 유전인자를 갖고 있었다. 이 유전자가 유럽 각 왕실로 퍼졌고, 특히 러시아 황실은 이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기도 했다. 둘째딸 앨리스 공주의 딸이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부인인 알렉산드라 황후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알렉세이가 혈우병을 타고났는데 알렉산드라 황후가 아들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희대의 괴승 라스푸틴에게 의지하다 결국 러시아 왕조 몰락의 결과를 가져왔다.)
다만 빅토리아 여왕의 인생 후반기는 다소 쓸쓸했다. 엄청 사랑했던 남편 앨버트 공이 42세에 장티푸스에 걸려 황망하게 저세상으로 떠난 후 빅토리아 여왕은 평생 앨버트 공을 기억하며 검은 옷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2017년 작품 <빅토리아&압둘>에서도 빅토리아 여왕은 예의 그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다. 그런 빅토리아 여왕 앞에 어느 날 압둘이라는 이름의 인도인 시종이 나타나고 우정인 듯 애정인 듯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감정이 떠돈다. <빅토리아&압둘>에서 80대의 빅토리아 여왕 역할을 맡은 영국 출신 배우 주디 덴치는 재미있게도 1997년에 만들어진 영화 <미세스 브라운>에서도 빅토리아 여왕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두 영화는 내용도 유사하다. 우정을 나눈 상대만 브라운 경과 인도인 시종 압둘로 다를 뿐.
앨버트 공 사망 후 은둔 생활을 하던 여왕을 왕실로 데려오기 위해 왕실은 앨버트 공 생전 그에 극진하게 헌신했던 존 브라운을 빅토리아 여왕의 마부로 기용한다. 존 브라운은 슬픔에 빠져있던 빅토리아 여왕의 가슴에 생기를 불어넣고 여왕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는다.
존 브라운과 여왕의 우정이 차츰 깊어지자 이들의 관계를 색안경 끼고 보는 이들이 생겨나고, 세인들은 두 사람의 우정 어린 친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수근거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여왕을 가리켜 ‘미세스 브라운’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래서 제목도 <미세스 브라운>이다. 어쩌면 빅토리아 여왕은 영혼의 반쪽인 앨버트 공을 잃고 그 공허한 마음을 달래줄 누군가를 계속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홍차의 나라 영국이 배경인 영화인 만큼 <빅토리아&압둘>에는 화려한 티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는 컷이 자주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빅토리아 여왕이 한 귀족의 영지를 방문하러 가는 도중 애프터눈티를 즐기는 장면. 왕실 하인들이 테이블, 의자, 애프터눈티에 필요한 집기를 낑낑대며 모두 들고 언덕 위에 올라 여왕이 지정한 자리에 테이블을 세팅하고 여왕은 측근들과 애프터눈티 타임을 갖는다. ‘여행가는 중 길거리에서도 애프터눈티는 포기 못 해.’ 이 장면이야말로 홍차와 애프터눈티가 영국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단면이다.
왕실과 귀족을 그린 수많은 영화가 그렇듯, <빅토리아&압둘>에서도 화려한 파티 문화와 파티를 위해 세팅된 고급스런 테이블 세팅을 보며 눈 호강하는 건 덤이다.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콜포트 배트윙 찻잔(일명 박쥐잔, 문양이 박쥐 날개를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과 지금도 영국 왕실에서 사용한다는 로열 크라운더비 앙투아네트 찻잔 등등, 명품 그릇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 세계 차 생산량의 80%가 홍차일 정도로, ‘홍차=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홍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영국 홍차 역사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름이 있다. ‘캐서린 브라간자’라는 이름을 가진 포르투갈 공주다. 캐서린은 1662년 영국 왕 찰스 2세와 결혼하기 위해 영국에 왔다. 당시 배 세 척에 혼수품을 가득 채워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배 수평을 맞추기 위한 균형추로 귀하디귀한 설탕을 가득 싣고 온 데다, 배에서 내릴 때 차 한 바구니를 들고 내렸다고 전해진다.
유럽의 변방이었던 포르투갈은 14세기부터 눈을 바다로 돌려 일명 ‘대항해 시대’를 연다. 1498년, 포르투갈인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 서해안에 도착한다. 바닷길로 아시아에 온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바스코 다 가마가 개척한 항로 덕분에 16세기 내내 포르투갈은 아시아와 유럽의 무역을 독점해 부를 쌓았다. 16세기 말부터 포르투갈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네덜란드와 영국이 치고 들어왔고 1623년 양국 무력충돌에서 승리한 네덜란드가 이후 유럽 패권을 차지한다.
비록 서서히 가라앉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캐서린이 시집 온 1662년 포르투갈은 영국보다 앞선 문물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포르투갈에서 온 공주가 ‘차’라는 귀한 물건을 가지고 왔으니 영국 귀족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차를 바라보고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했을 터. 새 왕비가 된 캐서린 공주는 귀족 여인들을 불러 티파티를 열곤 했고, 그렇게 차는 영국 문화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당시 캐서린 공주를 ‘tea addicted queen(차에 미친 여왕)’으로 불렀다 하니 캐서린 공주의 차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뿐인가. 캐서린 공주는 모로코 탕헤르와 인도 봄베이를 지참금으로 가져왔다. 영국은 캐서린 공주가 가져온 봄베이를 기반으로 인도 내에서의 영향력을 키워간다. 영국에 처음 ‘차’를 알렸고, 봄베이를 가져옴으로써 영국의 인도 진출 기반을 다지게 했으니, 캐서린 브라간자가 영국의 차 역사에서 독보적인 이름이 된 것은 당연지사다. 캐서린이 들고 간 차 한 바구니에 들어있던 차는 ‘소종홍차’였다.
홍차는 세 가지가 있다. 우선 잎을 온전하게 살린 ‘호울리프’ 홍차다. 두 번째는 잎을 짜각짜각 잘게 잘라 만든 홍차다. 대중적인 브랜드의 캔 홍차는 대부분 이렇게 만들어진다. 잘게 잘라 만든 홍차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잎에 들어있는 성분이 한꺼번에 우려 나와 진한 차가 된다. 밀크티 만들기에 최적이다. 세 번째가 ‘소종홍차’다. 제다할 때 소나무 장작을 때서 소나무 연기를 배게 만든, ‘훈연홍차’다. 중국 사람들이 처음 만든 홍차가 바로 이 ‘소종홍차’였다.(유럽 카페에 가면 메뉴판에서 ‘랍상소총’ 이라는 단어를 발견할 때가 있는데, 이 랍상소총이 바로 소종홍차다.)
홍차를 처음 만든 중국에서도 홍차를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저 이런 전설같지 않은 전설만 남아 있다. 명나라 말, 복건성의 한 농부가 찻잎을 따서 녹차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마을에 군대가 들이닥쳤다. 군대는 농부의 가공장에서 하룻밤 자고 가겠다고 했다. 녹차를 만들려면 당장 찻잎을 덖어야 했지만 겁에 질린 농부는 찍 소리 못하고 가공장을 군대의 잠자리로 내어줬다.
찻잎을 다 망쳤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뜬눈으로 밤을 샌 농부는 날이 밝자마자 가공장으로 달려갔다. 전날 저녁 군인들이 가공장에서 밥 해먹고 하면서 찻잎에 훈연향이 배어 있고 찻잎 색도 거무스름했다. 다 망했다며 탄식하다 그래도 혹시? 하며 차를 만들었다. 녹색이어야 할 차는 그러나 검은색으로 만들어졌다. 농부는 멀리 가서 차를 싸게 팔았는데, 다음해 그의 차를 샀던 상인이 농부를 찾아와 작년에 팔았던 차를 또 만들어달라는 게 아닌가. 그렇게 소종홍차가 세상에 나왔다나, 어쨌다나.
이렇게 훈을 먹인 홍차인 ‘소종’이 나오다 18세기 어느 차농이 소나무 훈연향을 뺀 홍차를 만들었는데 꽃향, 과일향이 훨씬 짙어졌다. 이 향기 폭발 홍차는 영국과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심지어 향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가향홍차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캐서린 공주의 등장과 함께 처음에는 귀족 계층에만 퍼졌던 차가 영국에서 대중화된 계기는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으로 공장이 줄줄이 세워지면서 농촌에 살던 사람들이 대거 도시로 와 공장에 취직했다. 석회가 많이 들어있어 물이 안 좋은 유럽은 맹물을 마시기 힘들었던 터라 일찍이 맥주가 발달했다. 주 6일, 매일 12시간 이상 공장에서 중노동을 하는 이들 역시 아침부터 연신 물 대신 맥주를 마셔댔다. 그러다 취하고, 취한 상태로 기계를 돌리다 사고를 내는 등, 공장 노동자들의 맥주 음용으로 인한 온갖 사고와 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후 맥주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차다.
노동자들이 맥주 대신 차를 마시면서 사고도 없어지고 산재했던 수많은 문제가 해결됐지만 영국 내 급증한 차 소비량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영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차 물량이 급증하면서 무역적자가 늘어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팔았고 그렇게 아편전쟁이 벌어졌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세계사의 뒤안길로 물러났음은 다들 익히 아는 역사다. 가히 ‘세계사를 바꾼 홍차’ 되시겠다.
이 지점에서 퀴즈 하나. 세계 3대 홍차는? 음, 우선 영국 홍차? 완전히 틀렸다. 영국에서 홍차 문화의 꽃이 피면서 영국이 홍차의 대명사 격으로 인식되지만, ‘영국 홍차’라는 것은 없다. 영국은 홍차를 수입해 브랜드화했을 뿐이다. 인도 다르질링홍차, 스리랑카 우바홍차, 그리고 중국의 기문홍차가 3대 홍차다.
인도 아쌈홍차는 많이 들어봤어도 다르질링홍차는 낯선 분도 많을 터. ‘다르질링홍차까지 알아야 해?’ 하시는 분들, 다음 영화 <다즐링주식회사>를 기대해주시길!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을 통해 ‘색감 천재’ ‘할리우드 최고 비주얼리스트’ 명성을 얻은 웨스 앤더슨 감독 작품이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
[김소연 매경이코노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