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원의 클래식 포레스트] 시대의 명작에 열광하는 대중과 그 이면 `오징어 게임`과 쇼스타코비치의 아이러니
입력 : 2022.10.12 15:52:21
수정 : 2022.10.12 15:52:48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미국 에미상 수상 소식에 괜스레 들떠서 이런저런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수상자들의 인터뷰 중에 유독 치이는 대목이 있었다. 제작사 대표의 이 말이었다.
“이게 사람들한테 너무나 와 닿는 이야기로 읽힐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사회가 더 좋게 변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는….”
그런 문제의식은 황동혁 감독의 말에도 드러나 있었다. “처음부터 미스터리했다. 왜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좋아해주시는지 … 주제 면에서는 점점 더 커지는 빈부격차와 현재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거나 능력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기에, 모두가 피부로 느끼는 문제들이어서….”
다시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자본주의 모순과 능력주의 폐해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는 드라마가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고 시상식이라는 경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대중의 환호를 받다니….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금의환향 후 개선행사까지 치렀던 관계자들의 가슴 한편에는 모종의 씁쓸함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씁쓸함은 필자가 가끔 공연을 보다가 느끼는 기분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래에는 특히 쇼스타코비치를 들으면서, 혹은 그 음악에 열광하는 청중 사이에 앉아 있으면서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에 내재된 모순
옛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년)의 교향곡들은 최근 관객들이 가장 열렬히 호응하는 레퍼토리에 속한다. 그가 존경했던 구스타프 말러의 작품들 못지않게 장대한 스케일과 현란한 관현악법, 강렬하고 심도 깊은 드라마로 어필하는 쇼스타코비치의 인기 교향곡들은 언제나 객석을 비등점으로 치닫게 만들고 끝내 폭발적 갈채를 이끌어내고야 만다. 그래선지 국내에서도 그의 교향곡 5번, 10번, 11번 등의 공연 빈도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런데 그 곡들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터져 나오는 뜨거운 박수와 요란한 환호에는 어딘지 어색하거나 과도한 면이 있다. 연주의 외적 자극에 치우친 나머지 그 음악의 이면 내지 내면을 묵살하는 반응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일례로 가장 유명한 5번 교향곡의 경우를 보자. 쇼스타코비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곡은 곧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에 비견되곤 한다. 통상 ‘5번’에 따라다니는 상징성에 더하여,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가혹한 운명에 대한 저항, 투쟁을 통한 극복, 그리고 승리의 쟁취라는 베토벤적인 주제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교향곡은 1937년 11월 21일, ‘소비에트 혁명 20주년 기념일’에 초연되었다. 결과는 대성공! 그 후 한동안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의 운명 교향곡’으로 간주되었고, ‘혁명 교향곡’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1979년 <증언>(쇼스타코비치가 만년에 구술한 내용을 소련에서 망명한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가 정리한 회고록)이라는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면서 종래의 인식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 책에 따르면 이 곡에서 표현된 즐거움은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에서처럼 ‘강요된 즐거움’이며 ‘위협 속에서 만들어진 환희’라는 것이다. 또 당시 작가조합 의장이라는 괴로운 직무를 수행해야 했던 파데예프는 자신의 비밀일기에 이 곡의 피날레를 “어찌할 길 없는 비극”이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침묵, 음미와 숙고의 시간
돌이켜보면 이 곡을 작곡하던 시기에 쇼스타코비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불안에 떨고 있었다. 당시 소비에트 정부는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교의지침으로 예술가들을 압박하고 있었는데, 그런 당국이 그의 실험적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대해서 ‘음악이 아니라 황당무계’라고 혹평했고 동시에 ‘부르주아적, 형식주의적 작품’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는 숙청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그처럼 예술가로서의 소신과 현실에 대한 타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심 끝에 내놓은 작품이 바로 이 교향곡이었던 것이다.
비단 이 곡만이 아니다. 10번 교향곡은 엄혹했던 스탈린 통치 시절에 대한 고뇌 어린 소회가 깊숙이 투영된 작품이고, ‘1905년’이라는 부제가 달린 11번 교향곡은 황군의 무자비한 총칼에 무고한 민중이 처참하게 짓밟혔던 ‘피의 일요일 사건’을 배경으로 러시아 혁명의 연원을 생생하고 절절하게 묘파한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소련 침공에 대한 저항정신을 담은 7번, 일명 ‘레닌그라드 교향곡’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와중에 울려 퍼지는 상황은 또 어떠한가? 감흥의 질풍노도를 유발하는 이 곡들의 연주가 막 끝났을 때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장시간의 침묵, 그리고 음미와 숙고의 여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