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랑과 종교적 열정이 스민 폴란드 크라쿠프
입력 : 2022.09.06 11:18:08
수정 : 2022.09.06 11:18:25
지난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과 관련해 몇 가지 일화가 세상에 소개됐는데, 그중 하나가 첫사랑 이야기이다. 본명이 ‘카롤 보이티와’인 교황은 폴란드 옛 수도인 크라쿠프에서 40㎞ 떨어진 ‘바도비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릴 적부터 시와 문학을 좋아했던 카롤은 열네 살이 되던 해 자신보다 한 살 어린 할리나 크비아토프스카를 셰익스피어의 <오이디푸스> 연극을 통해 처음 만났다. 이 작품에서 카롤은 하이몬 역을, 할리나는 상대역인 공주 안티고네 역을 맡으면서 이들의 순수한 사랑도 시작되었다. 그 후 카롤과 할리나는 폴란드의 명문대학인 야기엘론스키 대학(구(舊) 크라쿠프 대학)에 나란히 진학해 애틋한 사랑을 키워나갔고, 극단 ‘랩소디’를 만들어 폴란드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순수문학 등 다양한 주제로 연극 활동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카롤은 전쟁터로 나갔고, 군 제대 후 신학대학교에 들어가면서 할리나와의 사랑도 막을 내렸다.
1946년 11월, 스물여섯 살의 카롤은 로마 가톨릭의 사제가 되었고, 1963년 12월에는 크라쿠프 대주교로, 3년 뒤에는 추기경으로, 1978년에는 264대 로마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때 TV에서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 등장하는 순간 할리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옛사랑을 찾아 단숨에 바티칸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바티칸에는 새로운 교황을 알현하기 위해 수만 명의 신도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할리나는 어떻게 하면 교황을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 교황의 고향 ‘바도비체’를 목청껏 연신 외쳤다. 하지만 교황은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미사가 끝나자 자리를 떠났다.
청년 카롤과 이별한 후 폴란드 최고의 여배우로 성공한 할리나는 옛사랑의 애틋함을 잊으려 하는 순간 어디선가 낯선 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할리나 씨, 교황께서 내일 아침 식사를 함께하자고 하십니다.” 다음 날, 교황은 접견실로 걸어오는 할리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할리나, 나의 안티고네”라고 말했다. 이것이 30년 만에 만난 카롤과 할리나의 첫사랑 이야기이다.
구시가지 광장
이처럼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젊은이들의 사랑이 고스란히 스민 크라쿠프는 1038년부터 폴란드의 수도로서 558년 동안 문화, 경제, 정치, 예술, 종교의 중심지였다. 14~15세기에 전성기를 누린 크라쿠프는 체코의 보헤미아 왕국과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와 함께 중세 유럽의 문화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 후 1596년 지그문트 3세가 수도를 바르샤바로 옮겼지만, 크라쿠프는 여전히 왕의 대관식과 장례식이 치러질 정도로 폴란드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18세기에 폴란드가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에 의해 식민국가로 전락했을 때도 크라쿠프만은 자유도시로 인정받아 폴란드의 역사와 문화를 찬란히 꽃피웠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때 바르샤바를 비롯한 폴란드 전역이 파괴되었지만, 다행히 크라쿠프만은 독일의 나치 사령부가 구시가지에 주둔하고 있어 폭격을 맞지 않았다. 전쟁 이후 크라쿠프 구시가지는 100년 동안 그 어떤 건축물도 세우지 않았을 만큼 고색창연한 중세풍의 건축물들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그 결과 1978년 유네스코로부터 유서 깊은 ‘세계 12대 도시’로 선정되었다.
프라하와 함께 ‘동유럽의 보석’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유한 크라쿠프는 과거 폴란드의 영화로움이 골목길과 성곽, 건축물과 구시가지 광장 등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우선 구시가지 광장에서 서쪽으로 5분만 걸어가면 카롤과 할리나가 사랑을 나눈 야기엘론스키 대학이 있다. 규모나 분위기가 우리의 대학교와는 사뭇 다르지만, 이곳은 독일 점령 시 레지스탕스의 아지트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코페르니쿠스도 이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199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도 이곳에서 젊은 시절을 책과 함께 보냈다. 역사가 700년이 넘는 대학 교정을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책에 파묻혀 열심히 공부하는 코페르니쿠스를 만나기도 하고, 시원한 그늘에서 대본을 들고 연극 연습에 빠져 있는 카롤과 할리나의 모습도 그려진다. 세월에 의해 그들은 모두 떠났지만, 야기엘론스키 대학에 스민 그들의 열정은 오늘도 어제처럼 변함없이 교정 곳곳에 알알이 박혀있다.
젊음, 예술, 철학, 지성, 꿈, 낭만, 사랑 등 이 모든 단어를 함축한 학문의 전당을 등지고 도시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석회암 언덕에 지어진 바벨 성과 대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비스와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벨 성은 폴란드 왕국의 상징이자 크라쿠프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그중에서도 대성당은 요한 바오로 2세가 대주교로 10년간 몸담았던 곳이라, 그를 존경하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아주 의미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대성당은 폴란드 왕들의 대관식과 결혼식 그리고 장례식이 거행된 곳이다. 대성당 지하에는 왕족, 민족 영웅, 예술가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성당의 내부는 감탄사가 절로 날만큼 화려하고 세련된 조각과 벽화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성당 안은 언제나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다. 의자에 앉아 성당 내부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동안 우리의 마음은 차분해지고, 어디선가 교황이 가까이 다가와 고뇌에 찬 우리에게 희망의 빛을 한 줌 뿌려주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한평생 가난하고 굶주린 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는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 또한, 행복하게 지내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너무나 쉽고 담백한 말씀이지만, 우리는 행복을 너무나 거창하게 생각하는 바람에 작은 것에서도 행복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사는 것 같다. 중세의 멋이 가득한 크라쿠프 광장의 노천카페에 앉아 쇼팽의 음악을 듣고, 쉼보르스카의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