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노는 머리에 태양을 상징하는 황금 왕관을 쓰고 있었다. 그의 무대 의상 또한 온통 황금색이었다. 심지어 신발까지도. 12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 ‘밤의 발레(Ballet de la Nuit)’의 마지막 4막의 시작.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 여명의 시간. 발레리노는 밧줄로 당기는 승강 장치를 타고, 화려한 불꽃과 함께 무대 중앙으로부터 태양처럼 떠오른다.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C’est le Soleil, c’est le jeune Louis(태양이여, 소년 루이여).”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로 상징되며, 프랑스 절대왕정을 꽃피운 루이 14세. 1653년 2월 23일 초연된 ‘밤의 발레’의 주인공, 태양의 신 아폴론을 연기한 발레리노가 바로 그다. 이 공연으로 루이 14세는 태양왕(Le Roi Soleil)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실제로 루이 14세는 당대 최고의 스타 발레리노였다. 그는 1651년 13살의 나이에 ‘카산드라의 발레’를 통해 데뷔한 이후, 1670년 무대를 떠날 때까지 27편의 발레에 출연했을 정도다. 그는 발레의 다섯 가지 기본자세를 확립한 당시의 대가 피에르 보샹(Pierre Beauchamps)에게 20년간 매일 사사했으며, 자신이 더 이상 공연에 설 수 없을 정도로 살이 찐 이후에는, 파리 왕립무용학교를 설립해 직업적인 전문 무용가를 양성하기 시작한다. 이곳이 바로 3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극단이자, 동양인 최초의 수석 무용수(e‘ toile) 박세은 씨가 현재 활동 중인, 파리국립오페라 발레단의 전신이다.
발레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유럽 상류층의 가면 사교 무용이 그 출발이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에서 프랑스로 시집온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그 유명한 쿠키, 마카롱과 함께 프랑스에 전파한 말하자면, 당시 신문물이었다. 루이 14세의 아버지 루이 13세도 발레리노였을 정도로, 궁정발레(ballet de cour)로 구분되는 당시의 발레는 ‘보는 예술’이 아니라, 상류층의 ‘하는 예술’이었다.
하지만 루이 14세의 전문가 양성을 발판으로, 17세기와 18세기 발레는 남성만의 무용에서 여성 무용수를 받아들이고, 극적인 스토리텔링과 음악과의 조화, 동작의 기술적 발전 등과 함께 확고한 공연 예술로 자리잡게 된다.
프랑스 발레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로 큰 시련을 맞이한다. 태생적으로 왕족과 귀족의 사치스러운 문화였던 발레가 프랑스 혁명과 이어진 공포정치의 시대에 찬밥 신세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일부는 이탈리아로 이주해 이탈리아 발레의 부흥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당시 프랑스 발레를 이끌던 실력자들은 러시아 황제의 초청으로 러시아로 이주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지젤’과 같은 대표적 발레 작품들이 러시아에서 제작되고, 볼쇼이 극장을 발레의 대명사로 인식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한편, 파리에는 콩코르드광장(Place de la Concorde)이 있다. 콩코르드는 우리말로 화해, 화합이라는 뜻이다. 개선문에서 출발한 샹젤리제 대로가 끝나고, 루브르 궁전과 튈르리 정원이 시작되기 전, 7.6헥타르 크기의 넓은 광장이 바로 콩코르드광장이다. 관광객에게는 황금 첨탑이 인상적인 이집트 오벨리스크로도 유명하다. 이 광장은 당초 루이 14세의 증손자이자 그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은 루이 15세의 건강 회복을 축하하기 위해 조성되었으나,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 마리 앙트와네트가 단두대에 의해 처형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프랑스혁명 시기에는 혁명광장(Place de la Revolution)으로 불렸으나, 미래를 향한 화해와 화합을 위해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콩코르드광장과 이어지는 콩코르드다리(Pont de la Concorde)는 1789년 민중들이 무너뜨린 바스티유 감옥의 돌을 잘게 쪼개어 바닥에 깔았는데, 콩코르드다리로 센강을 건너면 그 앞에 프랑스 의회(Assemble‘ e Nationale)로 사용되는 부르봉궁전이 서있다. 한마디로, 프랑스 혁명의 상징적인 스토리텔링 공간인 셈이다.
오는 7월, 파리에서는 하계올림픽이 열린다. 특히, 이번 파리올림픽에는 젊은 올림픽을 표방하며 국제올림픽위원(IOC)가 야심차게 채택한 시범경기가 있다. 바로 X-sport다. 이중 단연코 압권은 브레이킹(Breaking) 댄스다. 흔히들 알고 있는 비보이(B-Boy)와 비걸(B-Girl)이 춤을 추는 댄스배틀로, 음악과 댄스가 완성하는 스포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랭킹 3위의 비보이 김헌우 선수가 우리 국가대표로 이 종목에 참가한다.
1970년대 미래가 없던 미국 뉴욕 브롱스 슬럼가 청년들의 몸부림에서 출발한 힙합 문화에 배경을 둔 이 댄스는 대표적인 거리 무용이고, 자신이 즐기며 직접 참여하는게 특징이었다. 하지만 기본 춤 동작에 대한 정의 확립, 해당 동작의 응용을 통한 고난이도 전문성 확보, 랩과 힙합 음악과의 컬래버레이션 확대 등 다양한 요소를 추가해 나가며, 이제는 보고 즐기는 전문 공연의 한 장르로 발전해 왔다. 마치 초기 프랑스 발레의 진화 과정을 닮았다. 이 브레이킹 댄스 올림픽 시범종목이 바로 파리의 심장이자 역사의 현장, 콩코르드광장에서 열린다.
상징적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 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한 지 230여 년, 빈부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외친 슬럼가 청년들의 몸부림이 보편적인 세계 청년들의 가치가 되어, 올림픽 정신과 함께 다시 프랑스 혁명의 상징 콩코르드광장으로 돌아오는 것만 같다.
특정 계층을 위한 화려한 무용에서 출발했지만, 인간이 표현하는 미적 가치의 예술적 상징으로 승화한 발레. 특정 계층의 현실적인 아픔에서 출발했지만, 세계 청년의 보편적 정서를 대변하는 가치로 성장한 브레이킹. 서로 다른 이 2개의 공연 예술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파리에서 진정한 콩코르드를 이루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