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근무 중 논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일’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간 일이 있었다. 일반 음료와 다를 바 없지 않냐는 주장과 엄연히 성인만 구매할 수 있는 주류라는 의견이 팽배하게 맞섰다. 팩트 먼저 말하자면 국내 주세법상 알코올 도수 1% 미만의 음료에 논알코올(혹은 비알코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엄연히 술이다. 즉 후자의 의견이 옳다. 감성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분위기 문제다. 논알코올 음료를 마시는 이유는 대개 ‘술을 마시는 기분’을 내기 위함이니 직장에서 마시는 건 TPO에 맞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이 작은 소란에서 주목할 만한 건, 그만큼 논알코올 음료가 우리 라이프스타일 중심에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지금 주류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아이템이 아이러니하게도 논알코올이다.
무알코올 맥주는 1919년 미국 금주법 시대에 만들어진 도수 0.5% 미만의 니어비어(Near Beer)를 시초로 추정한다.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에 궁여지책으로 등장한 니어비어는 처음엔 잘 팔렸지만 이내 외면받았다. 이후 2000년대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알코올 맥주들이 등장했지만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존의 맛을 전혀 구현하지 못했다는 평과 함께 ‘술을 취하려고 마시지’ ‘차라리 음료수를 마시라’는 비아냥을 듣기 일쑤였다. 맥주 회사들도 광고에 임산부를 등장시켜 특정층을 타깃으로 삼는 데 머물렀다. 그런데 지난해 송출된 ‘하이네켄 제로’의 글로벌 광고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하이네켄 제로를 든 남자가 ‘당당하게’ ‘먼저’ 건배를 제안한다. ‘무알코올로 건배. 이제 할 수 있다(CHEERS WITH NO ALCOHOL. NOW YOU CAN)’라는 슬로건과 함께.
가늘게 연명해 온 논알코올 시장에 진짜 신호탄을 쏘아 올린 듯하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세계 주류 시장 성장률은 0%에 가깝고, 그나마 맥주가 10% 남짓한 성장률을 보였다. 반면 무알코올 맥주는 2016년 약 13조원에서 2021년 약 19조원으로 껑충 성장했다. 해외에 비해 다소 시큰둥했던 국내 논알코올 시장도 가시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시장은 역시 맥주. ‘카스 0.0’ ‘하이트 제로’ 등의 대기업이 시장을 견인했고, 소규모 크래프트 양조장까지 뛰어들면서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고 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마시는 논알코올 맥주가 아니라 그 안에서도 취향에 따른 선택이 가능해지면서 2014년 전체 시장 규모 81억원에서 2020년 200억원까지 성장세도 보였다. 해외 논알코올 스피릿, 와인, RTD칵테일 등도 수입되고 있으며 아예 해당 제품을 모아 판매하는 사이트도 신설되는 등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발맞춘 시스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논알코올 시장과 관련된 국내외 통계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술을 본래 마시는 사람의 58%가 논알코올 칵테일을 선택한 경험이 있다’는 바카디의 칵테일 트렌드 보고서다. 설문 대상 3000여 명 중 절반이 넘는 숫자가 마실 수 있지만 일부러 논알코올 칵테일을 선택한 것. 이유는 무엇일까. 술을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삶을 즐기는 하나의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금주를 하려면 사람을 만나지 않아야 한다’는 건 옛말. 술을 멈춰도 사회(사교) 활동은 중단되지 않는다. 도구를 조금만 바꾸면 기존의 라이프스타일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술에 취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으며 음료를 즐기는 생활양식을 지칭하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라는 단어가 생겨난 지도 꽤 오래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술의 최전선에 서 있는 바들도 대비를 하고 있다. 기존의 칵테일에서 알코올만 소다로 대체하는 방식이 아닌, 논알코올 칵테일 자체를 하나의 장르로 보고 아예 메뉴를 개발하고 나섰다. 별도로 요청해야 하는 메뉴가 아닌 버젓이 메뉴판에 여타 칵테일과 대등하게 기입되고 있다는 것이 크게 달라진 점이다. 바텐더들이 이전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 배경 역시 논알코올을 마시는 손님의 상당수가 본래 술맛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에 있다. 술에서 느낄 수 있는 보디감이나 질감을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하기 위해 콤부차, 향신료, 커피, 약재, 차 등을 활용한다. 술을 마실 줄 몰라도, 술을 마시지 않고도 술을 마시는 듯한 기분으로 바의 분위기를 즐기는 일. 어쩐지 솔깃한 경험이지 않은가.
장새별 F&B 콘텐츠 디렉터
먹고, 마시는 선천적 애주가. 미식 매거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현재는 스타앤비트를 설립해 F&B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