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오전 9시 30분, 군산시청 강당에 군산당북초등학교 학생과 군산 어린이 안전 히어로즈 소속 어린이 총 70여 명이 모였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싶은데,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앞에 놓인 실험 기구들로 키링, 미니 아쿠아리움, 구슬 아이스크림 등을 직접 만드는 모습이 이채롭다. 글로벌 화학기업 바스프가 진행하는 글로벌 과학교육 프로그램 ‘키즈랩’ 현장에서 만난 송준 한국바스프 대표는 “2003년에 울산에서 시작한 후 22년 간 진행 중인 사회공헌활동”이라며 “서울, 수원, 여수, 울산, 군산,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계 독일인으로 2023년 3월 한국바스프 대표에 취임한 송 대표는 “5년 전에 처음 한국에 왔다”며 “한국에서의 경험은 많지 않지만 5년 전과 비교하면 놀랄 만큼 발전 속도가 빠르다”고 소감을 전했다. 1954년 무역회사로 한국에 진출한 한국바스프는 2024년에 한국 진출 70주년을 맞았다. 독일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화학기업 바스프의 100%로 자회사로 1982년 울산에 국내 첫 생산 기지를 준공하며 스티로폼 생산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바스프는 총 8개의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화학 제품, 원재료, 산업 솔루션, 뉴트리션&케어 및 농업 솔루션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2023년 국내 매출은 약 13억 유로(약 1조 9600억원)에 이른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유기·유기금속화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바스프(BASF) 독일 본사와 브라질, 한국에서 17년 이상 근무하며 다양한 직책을 수행했다. 리서치, 인수합병(M&A), 마케팅 및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총괄사장 비서직을 거쳤다. 브라질에선 남미지역 석유화학제품사업 비즈니스를 총괄했다. 2020년부터 한국 스페셜티 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한 후 2023년 3월 한국바스프㈜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Q 21년째 국내에서 키즈랩을 진행 중인데.
A 바스프는 글로벌 선두권의 화학기업이에요. 과학에 의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위한 과학 교육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어린 시절 이런 키즈랩을 통해 화학에 재미를 붙였어요. 군산을 포함해 여수, 울산, 대전, 서울에서 키즈랩이 진행되는데 다음 순서는 저희 사내 직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한 키즈랩입니다.
Q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한국바스프의 인지도를 넓히는 건가요.
A 관점이 좀 다른데요. 키즈랩은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미션이 담겨있어요. 화학에 재미있는 요소를 가미해 접근성을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화학을 단순히 수학 공식처럼 익히는 과목이 아니라 실험을 통해 우리 일상에 어떻게 닿아 있는지 알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죠.
Q 사실 화학산업은 자연을 거스른다는 선입견이 여전한데, 바스프의 목표는 달라 보입니다. 2050년까지 기후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는데요.
A 화학에 대한 인식의 제고도 저희가 노력하는 부분 중 하나죠. 생분해성이나 재활용이란 라벨이 친환경이란 인식도 있는데 그것보단 좀 더 상세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미 있는 기후 보호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 중이에요. 모든 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바스프는 지속 가능한 솔루션을 다양한 산업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탄소 발자국 제품을 제공하고 있어요. 모든 것을 재생가능한 원료나 대체품으로 메우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희가 제공하는 제품이 지속 가능한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Q 산업군별로 필요한 저탄소 제품이 다를 텐데.
A 물론 현대차가 필요한 솔루션과 아모레퍼시픽이 필요한 건 다르겠지요. 다양한 산업의 니즈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한국 뿐 아니라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적인 규제 변화와 혁신이 필요해요. 제가 2006년에 입사했는데, 당시에도 바스프에는 지속가능팀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전 세계적인 단위에서 바스프의 지속가능한 경영이 진행 중입니다.
Q 2050년으로 목표를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A ‘좀 더 빨리 달성할 순 없나’란 질문처럼 들리는데요.(웃음) 화학산업은 태생적으로 에너지 집약 산업이잖아요. ‘과학은 우리가 바꿀 수 없다’라는 진리처럼 너무 터무니없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조정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서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중기적인 목표를 2030년, 모든 걸 달성하는 시기를 2050년으로 설정했습니다. 기후변화라는 도전 과제 아래 바이오나 재생 가능 에너지 등의 분야에는 관심이 높지만 지속 가능한 소재 분야는 아직 그렇지 않거든요.
Q 한국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A 한국은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발표했습니다. 야심찬 계획이죠.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이 굉장히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고 판단하는 것 같더군요. 전반적인 상황이 굉장히 복잡한데, 먼저 화학산업은 바이오 피드 스톡 원료라든지 재생가능한 원료 분야에서 많은 파트너십과 합작법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선 양호하지만 주력산업이 철강, 자동차, 반도체 분야인 한국은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구조를 형성하고 있어요. 최근 데이터를 살펴보면 재생 에너지 비중이 9.9%에 불과했습니다. 원자력이나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비중이 월등히 높은데 재생에너지 보급률을 높이면 NDC 달성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겁니다.
Q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선도적인 국가라면. 독일은?
A 독일이 가장 선도적이라고 말씀드릴 순 없을 것 같아요. 국가별로 상황이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어떤 천연자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요. 브라질이 풍부한 수력을 이용해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독일은 이번 정권뿐 아니라 지난 정권에서도 해상과 육상에서 풍력과 태양열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왔어요. 정부에서 시의적절하게 필요한 조치를 취한 셈이죠.
Q 각국 정부의 정책이 NDC의 큰 축인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파리기후협약 탈퇴 등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A 트럼프 1기 때를 회상해보면 사실 ‘아무도 모른다’가 정답일 것 같네요.(웃음) 지속 가능성과 기후변화는 불변하는 주제예요. 탈퇴를 떠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최근 부산에서 개최된 유엔 플라스틱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도 최종적인 결정이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중요한 진전이 있었어요. 기후변화는 한 국가가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탄소국경조정제도 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어요. 트럼프 2기라 해서 절대 간과할 걸로 생각진 않습니다.
Q 경제적인 부분을 전망한다면.
A 바스프는 기후변화가 경제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습니다. 바스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기업의 입장이 그러할 텐데, 트럼프 2기의 고관세 정책에 당장 경제적인 어려움이 발생한다면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목표가 등한시될 수 있겠지요. 분명 그러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한 국가, 한 기업만의 이슈가 아니에요. 협력이 초석이 돼야 합니다. 트럼프든 누구든 기후변화에 대한 중요성은 경시하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Q 기업 입장에선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바스프는 어떻습니까.
A 어떤 내용이 발표되는지 침착하게 지켜보고 이 변화가 바스프에 의미하는 바를 분석해 살펴본 후 어떻게 대응할지 차근차근 생각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우선 바스프는 고객이 있는 곳에 고객 중심으로 투자합니다. 저희 생산 현장이 전 세계에 분포된 이유이지요. 고관세에 일부 국가가 큰 타격을 받더라도 충분히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둘째, 바스프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한 국가에서 모든 걸다 해낼 수 없다는 인식이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어요. 원자재든 원재료든 특수 부품, 특수 장비, 전문 지식 등이 관세 정책에 의해 움직일 수는 없다는 걸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공급망이 세계화됐는데 이게 무너진다면 비용 면에서 크게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스프는 탄탄한 글로벌 구조를 갖추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상황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이러한 변화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거시적인 환경 변화일 것이고, 저희는 적재적소에 대응해 나갈 겁니다.
Q 최근 세계 경제의 화두 중 하나는 독일 경제의 침체입니다. 바스프에도 분명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A YES, 맞습니다. 독일 경제뿐 아니라 선진국들이 모두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죠. 바스프는 전략적으로 유럽의 구조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환경적인 변화와 탈세계화 흐름 등을 고려했을 때 루트비히스하펜에 있는 본사가 유럽의 중심지로서 좀 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00억달러 이상이 투자될 중국 남부 광둥성의 대규모 석유화학단지에선 2025년부터 스팀 크래커(열을 이용해 나프타 등의 원료를 분해해 에틸렌 등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가 가동됩니다. 유럽 외 곳곳에 이러한 카펙스(Capex)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유럽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된 것 같습니다.
Q 한국바스프의 상황도 궁금한데요. 2024년 실적은 어떻습니까.
A 2024년은 이전 해와 마찬가지로 어려웠던 해였어요. 실적이 목표를 넘긴 분기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분기도 있었습니다. 또 중국 제품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요. 전반적인 아시아 시장이 그렇습니다. 종합적으로 ‘더 잘 할 수 있었지만 양호했다’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Q 2025년 목표는.
A 지금까지 얘기했던 지정학적 변화나 정치, 경제, 정책적인 변화와 규제, 관세까지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에 2025년을 전망하는 건 굉장히 어려울 것 같아요. 한국바스프의 중요한 고객인 자동차 제조사를 예로 들면 산업 자체가 호황이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많기 때문에 성장세가 이어질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산업군이 그렇진 않거든요. 지난 2년간 한국바스프는 한국 내외 기업들의 니즈를 파악하면서 탄탄한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이 수출 중심 국가인 만큼 한국바스프도 국내뿐 아니라 나프타(NAFTA)든 아시아든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협력해 나갈 계획입니다.
Q 해외 수출에 좀 더 비중을 두겠다는 말씀처럼 들리는데요.
A 5년 전에 한국에 왔고 2년 전에 대표로 취임했는데, 글로벌한 관점에서 다음 도약을 고민했습니다. 한국바스프는 한국 내에서 50%의 매출이, 나머지 50%는 해외 시장에서 발생합니다. 한국의 GDP 성장률보다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와 시장에서 성공적인 실적을 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죠.
[안재형 기자 · 사진 바스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