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의 위기다. 세계 다이아몬드 산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악조건에 직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불확실한 거시경제 상황,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점유율 증가 등으로 시장 역학에 큰 변화를 맞은 가운데 이 팔 전쟁이라는 ‘암초’까지 만났다. 이런 복합적인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이아몬드 채광 기업 드비어스(DeBeers)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캠페인을 7년 만에 부활시키기로 결정했다. 2000만달러를 투자해 연말 대목을 앞두고 미국과 중국에서 천연 다이아몬드의 소비 수요를 촉진할 계획이다. 한편,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채굴 회사인 러시아의 알로사(Alrosa)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요 감소와 다이아몬드 가격 하락을 반영해 올해 11월까지 다이아몬드 원석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블루칩 광산 기업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이 ‘역대급’으로 큰 동요와 불안정한 시기를 겪고 있음을 시사한다.
러시아는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원석 수출국이다. 2021년의 수출액이 약 40억달러 규모로 사실상 전 세계 다이아몬드의 3분의 1을 채굴한 셈이다. 국영 기업인 알로사에서 작은 크기의 원석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데, 대부분 인도에서 가공돼 세계 시장으로 공급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산 다이아몬드에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리며 ‘푸틴의 숨은 자금 루트’를 차단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EU 역시 지난해에 러시아 다이아몬드에 대한 제재를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벨기에의 반발로 무산됐다. 벨기에의 앤트워프는 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다이아몬드 무역의 중심지로 2022년에 러시아로부터 1억4000만유로 규모의 다이아몬드를 수입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는 앤트워프를 통과하는 다이아몬드의 25%가 러시아에서 공급됐고, 전 세계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 원석의 84%가 이곳에서 거래됐다. 다시 말해, 벨기에는 러시아 다이아몬드가 세계로 나가는 핵심 창구인 것이다. 이들은 작은 크기의 원석은 원산지 추적이 어렵고 경쟁 상대인 두바이와 인도에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한편, 서방 국가들의 제재로 인해 중국이 러시아 다이아몬드의 주요 수입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보다 중국 소비자들이 러시아 전쟁에 대한 민감도가 낮은 것이 합리적인 이유로 꼽힌다. 또한 신흥 다이아몬드 연마지인 아르메니아와 벨라루스 같은 구소련 국가들에도 러시아산 다이아몬드의 유입이 증가했다. 제재를 적용하지 않는 UAE와 인도 역시 상당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데, 특히 두바이는 지리적 이점과 최근 러시아와의 경제적 협력으로 이익을 취하고 있다. 물론 전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 가공의 90%를 차지하는 인도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에 미국은 최근 러시아와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인도 업체들의 다이아몬드 원석 수입액 2600만달러를 차단하는 등 제재 조치를 강화했다. 인도 정부는 150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합성 다이아몬드 제조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등 대비책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인도 총리가 지난 6월 백악관 방문 중에 미국 대통령 부인질 바이든에게 7.5캐럿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선물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23년 10월 현재,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치는 러시아에서 채굴되거나 연마된 보석에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러시아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 원석의 90%가 인도에서 가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는 이러한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국가에서 세공된 물량을 포함한 러시아 보석의 수입을 금지하는’ G7 국가와 EU의 새로운 제재(2024년 3월 시행)에 대비하고 있다. 그간 엇갈린 입장을 보이던 벨기에도 러시아 다이아몬드 제재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전환했고 관련 국가들은 개별 다이아몬드의 추적을 위한 요구사항 및 관세 서류 관련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물론 아직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러시아는 보조석으로 쓰이는 작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새로운 제재는 1캐럿 이상의 다이아몬드에만 적용될 예정이므로 향후 대응책 마련은 필수다.
제재 협상 참가자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도매 및 소매 시장’에서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추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관련 기업들은 이미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드비어스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Tracr(트레이서)’ 플랫폼을 확대하고, GIA(미국보석감정연구소)는 소비자가 다이아몬드의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는 ‘GIA Source Verify’ 서비스를 도입했다. 사린 테크놀로지(Sarine Technologies)는 광산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의 3D 스캔부터 소매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기록하는 ‘Diamond Journey’ 추적 시스템을 공개했다. 리치몬트와 LVMH 같은 럭셔리 기업들은 이러한 추적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산 보석을 배제하도록 공급 업체들에 지침을 내려 러시아 다이아몬드에 대한 분명한 ‘손절’ 정책을 채택했다.
다이아몬드가 광산에서 출발해서 소비자나 산업용으로 도달하기까지 평균 20~30번의 손을 거친다고 한다. 이러한 복잡한 공급망을 재조직하고 품질, 크기, 색상 중심의 관행을 새로운 원산지 시스템에 적응시키는 데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다방면의 노력은 다이아몬드 산업과 소비자 간의 연결을 강화하고 보다 투명한 시장을 조성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빛내는 다이아몬드의 찬란함 뒤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과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 <젬스톤 매혹의 컬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