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킨도’ 회사 정원석 대표를 만난 적 있다. 독일 기업과 연계하는 기저귀사업을 한다고 했다. 기저귀에 대한 관념이 그를 통해 바뀌었다. “기저귀는 어린이보다 노인들 수요가 더 많아요. 고령화사회가 심해질수록 이 사업은 더 잘될 것입니다. 특히 요실금에 취약한 여성들도 좋은 고객이 됩니다.”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이 넘어 이른바 초고령사회(고령 인구 비율 20% 이상)가 된다. 저출산·초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사회적 수요에 변화가 생기는데, 기저귀도 그와 같은 것이었다. 기저귀뿐만 아니다. 시니어(실버)타운도 신생산업이다. 4년 전 유기상 당시 고창군수의 배려로 전북 고창읍 소재 ‘웰파크시티(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를 견문했다. 고창읍 석정리·월암리·월산리 일대에 자리한 시니어타운이다. 시니어타운의 선두 그룹 가운데 하나이다. 유기상 군수 설명이다.
“이곳은 주거·의료·재활·치유·관광·문화 환경을 고루 갖춘 모델 케이스입니다. 이것만으로 이곳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게르마늄 온천, 호남의 명산 방장산(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3대 명산 가운데 하나), 편백숲이 있는데, 풍수상 길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한반도 풍수 비조 도선국사가 지었다는 <옥룡자유세비록>은 운중반월(雲中半月·구름 속의 반달) 명당이 있다고 소개한 곳이지요. 그러한 까닭에 고려와 조선을 거쳐 창녕조씨, 조양임씨, 직산조씨, 강릉유씨, 김해김씨, 광산김씨 등이 그 길지를 찾아 이 일대에서 세거하였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알려져 미국과 캐나다 등 은퇴 교민이 30여 세대 입주하고 있습니다.”
최근 지어지는 시니어타운들 대부분이 ‘호텔형’으로 주변에 정원을 조성하는 모양새라면 이곳은 문자 그대로 ‘자연 속의 거대한 마을’이었다. 이상적 시니어타운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한 답변이 제시될 수 있다.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시니어타운의 입지(도심형, 근교형, 자연형)가 달라질 수 있다. 입지 외에 시니어타운의 내부시설, 서비스 내용은 입주자들의 경제력과 비례하기에 논할 필요가 없다.
이 글은 시니어타운과 풍수를 주제로 한다. 입지(자연환경)에 따라 입주자 심신의 건강과 방문하는 가족들이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다. 풍수가 다뤄야 할 부분이다. 오랜 ‘집’을 떠나는 시니어들이 입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입지뿐만 아니라 향(向)도 심신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해가 떠오르며 힘찬 기운을 주는 동향은 청소년들에게 좋고, 가정과 사회의 주역이 되는 중장년층에게는 남향이 좋다. 동향과 서향 좌우를 보면서 자녀와 노부모 세계를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쪽은 서산에 해가 지는 곳이다. 노년에게 좋다. 해가 지는 것은 하루의 끝이 아니다. 해가 지면 다시 달이 뜬다.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을 자연이 알려준다.
현대 고령사회만이 ‘시니어타운’ 개념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18세기 중엽, 실학자 이중환이 쓴 ‘마을(里)을 고르는(擇) 책(志)’, 즉 <택리지>는 벼슬을 그만둔 나이 든 사대부가 가서 살아야 할 입지를 안내하고 있다. 이중환은 말한다.
“무릇 터를 잡을 때 첫째, 지리가 좋아야 하고(해와 달과 별이 항상 환하게 비치는 곳), 다음은 생리(生利·생산성), 다음이 인심,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 지리가 좋아도 생리가 부족하면 오래 살 곳이 못되고, 생리가 좋더라도 지리가 나쁘면 이 또한 오래 살 곳이 못 된다. 지리와 생리가 다 좋으나 인심이 좋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되고, 가까운 곳에 소풍할 만한 산과 물이 없으면 정서를 메마르게 한다.”
두 번째 생리(생산성)는 여력이 있는 사람이 ‘시니어타운’에 들어가기에 따질 필요가 없다. 나머지 3가지 항목은 시니어타운에 들어가고자 할 때 살펴야 한다. 18세기 조선 사대부만의 관념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보편적 시각이었다. 11세기 중국의 곽희는 <임천고치>에서 터를 4가지로 분류했다. “스쳐 지나갈 곳(可行者), 멀리서 한 번 바라볼 만한 곳(可望者), 놀 만한 곳(可游者), 거주할 말한 곳(可居者)”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3번째와 4번째가 시니어타운에 부합하는 조건이다. 왜 그러한가. 곽희는 또 같은 산이라더라도 계절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달라짐을 말한다.
“봄철 산은 안개와 구름이 끊이지 않고 감돌아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여름철 산은 울창한 숲에 그늘이 져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며, 가을철 산은 청량하나 떨어지는 낙엽으로 사람 마음을 엄숙하게 하고, 겨울산은 흐릿한 눈비에 사람 마음을 적적하게 한다.”
시니어타운이 갖춰야 할 ‘지리와 산수’의 중요성이다. 좋은 땅에서 잠시만 노닐어도 그 땅이 갖는 정신(山水之情神·산수지정신)이 사람에게 전해진다. 이를 산수화론은 ‘전신(傳神)’이라 했고, 풍수에서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이라 했다. 좋은 땅에서 노닐면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것이다. 모든 시니어타운이 고창 방장산 자락 ‘웰파크시티’와 같은 자연환경을 갖출 수는 없다. 자식들의 방문이 쉬운 도심형(호텔형) 시니어타운을 더 선호한다. 그렇지만 도심형 시니어타운도 ‘자연(지리+산수)’을 실내로 들여놓아 심신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 예술이 그 역할을 대행한다.
자연 속에 살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현실적 여건으로 나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해 과거에는 산수화가 그 역할을 했다. 산과 물의 정신이 잘 그려진 그림 한 폭이 있다면 집안에 앉아서도 “샘물과 바위와 계곡의 풍광을 즐길 수 있으며, 어른거리는 산빛과 물빛이 마음을 유쾌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전통 산수화의 존재 목적이었다(<임천고치>). 미디어아트(미디어영상아트)로 실내에서도 자연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
옐로스톤이 주관하고 매일경제가 후원하는 ‘김병종 NFT 디지털아트 페스타(2023년 9월 1~20일)’는 도심형 시니어타운에 풍수와 산수를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좋은 산수와 자연 풍경이 그려진 그림과 사진들을 미디어파사드로 실물처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 ‘시니어타운’은 신생사업이지만 미래 성장산업이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가 망하는 곳도 많을 것이다. 성공할 수 있는 ‘시니어타운’이 되려면 접근성과 서비스 내용도 중요하지만, 풍수가 빠질 수 없다.
김두규 우석대 교수
국내 손꼽히는 풍수학자다. 현재 우석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한바 있다.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풍수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