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꼬리를 무기로 수컷들이 경쟁에서 비교 우위를 점하는 행동의 사례는 역사 속에도 숱하게 많다. 고대 로마인은 모자이크와 도자기를 사랑했다. 페르시아인은 정원을 사랑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도자기, 비단, 병풍에 집착했다. 대중은 21세기로 와도 슈프림 티셔츠에 수십만원을 지불하고, 롤렉스 시계에 수천만원을 쓴다. 인간은 실로 화려한 물건을 좋아한다.
부를 과시하는 사치품의 인기가 직관적으로 옳다는 사실은 게임이론이 증명한다. 또한 사치품 유행이 시작되고 끝나는 시기를 예측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값비싼 신호’ 게임은 마이클 스펜스와 암논 자하비가 개발했다. 두 선수가 있다고 가정하자. 한 명은 발신자(수컷 공작)로 값비싼 신호(긴 꼬리)를 보낸다. 다른 한 명은 수신자(암컷 공작)로 발신자를 받아들일지(짝짓기) 거부할지를 선택한다. 수신자는 발신자의 유형을 알지 못하지만 암컷은 수컷이 신호를 보냈는지(꼬리가 얼마나 긴지)만 알 수 있다. 영화로 알려진 존 내시가 개발한 ‘내시 균형’은 이 게임의 해법을 알려준다. 모든 수컷은 포식자와 기생충을 피하기는 어렵지만 건강한 수컷은 잘 피하므로 포식자로부터 위험이 덜하다.
공작새만이 아니라 사람도 게임이론으로 움직인다. 이 책은 게임이론을 활용해 사소한 행동부터 조직의 의사결정, 유행과 트렌드, 환경문제, 전쟁과 국제 분쟁, 나아가서는 생물학적 영역의 번식과 진화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메커니즘을 흥미롭게 분석한다.
경제학자 모시 호프먼과 에레즈 요엘리가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한다. 게임이론은 우리를 비롯한 게임의 주체가 의식적이든 비의식적이든, 전략적으로 가장 최선의 선택지를 고른다고 전제하는 경제학 이론이다. 저자들은 학습과 강화, 지체와 파급, 보상과 보수, 진화생물학적 성 선택 등 다양한 인간의 행동 원인을 게임이론 시각으로 분석한다.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인간이 이타심을 발휘하는 것도, 익명으로 기부하는 것도, 하버드대 학위를 숨기는 겸손도 모두 게임이론이 설명해준다. 공작새가 꼬리를 뽐내는 것과 정반대의 선택이지만 자신을 감추는 것 자체가 값비싼 신호가 된다.
예술가의 경우 신호 감추기는 오히려 열성팬이 있을 만큼 뛰어나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거장이 될수록 성숙해지고 은근하게 작품을 풀어내는 것도 입지가 확고해졌기에 신호를 감추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성공한 예술가는 상업적 성공보다 예술사나 미래세대에 영향을 미쳐 유산을 남기고 싶어 한다. 예술가들이 대중이 알아채기 어려운 작업을 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이득을 기대하지 않고 낯선 사람을 돕고 돈벌이와 상관없는 열정을 보이는 이유, 스톡홀름증후군이나 편향적 행동, 특정한 차별과 혐오에 빠지는 이유, 비싼 과시보다 소박한 겸손에 더 호감이 가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들려준다. 쉬운 예시를 내세워 내시 균형, 값 비싼 신호 효과, 처벌 게임, 최후통첩 게임, 죄수의 딜레마 등 게임이론의 핵심 내용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현대 사회에서 대도시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55개 대도시 인구는 세계 인구의 7%에 불과하지만 세계 경제의 40%를 담당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자본과 사람이 도시로 모일수록 심각해지는 불평등이다. 도시는 효율성을 바탕으로 크게 성장하지만 그 혜택이 동등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세계적인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는 책을 통해 ‘도시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비책을 제시한다. 일례로 그는 사회 기반 시설 투자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마구잡이식 도로 확충과 교량 건설은 오히려 문제를 키운다. 도시는 역사적인 분수령에 서 있다. 지속 가능하고 사회 통합적인 번영의 길로 들어설지, 점점 심해지는 불평등과 계층 분리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할지는 앞으로의 대응에 달려 있다. 도시가 수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새로운 도시화’만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이라 역설한다.
우리 시대 최고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가 기술 발전이 곧 진보라는 통념을 뒤엎는다.
기술이 발전하면 모든 이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게 기존 경제 상식이었다. 오랜 시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기술 진보가 직접적으로 자본이나 노동의 생산성을, 혹은 둘 다를 높인다고 가정해왔다.
기술 발전의 방향을 정하는 집단은 소수 엘리트층과 권력가이고, 진보로 인한 풍요는 그들의 주머니를 불린다. 아세모글루는 사이먼 존슨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와 정치적·사회적 권력이 어떻게 기술 발전의 방향을 선택하는지, 기술이 어떻게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를 논증과 함께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저자들은 책에서 권력자와 엘리트 등 지배계층이 설정한 비전에 도전하고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취한 풍요를 모두 공유하기 위해서는 사회 권력 기반이 재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골드만삭스 공동회장, 빌 클린턴 정부 재무부 장관, 씨티은행 회장을 역임한 재계 대가 로버트 루빈이 내놓은 18년 만의 신작. 이 책에서 루빈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 가속되는 기후변화 등으로 역사상 가장 불확실한 세계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투자, 비즈니스, 정치와 정책 분야에 걸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루빈의 의사결정법을 만난다. 저자는 “훌륭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문제에 대해 너무 감정적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라며 “핵심은 감정적으로 먼저 반응하고 자신이 반응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다음, 초반의 충동을 오래도록 참아 가까스로 신중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천자문’이 달고 다니는 습자서의 굴레를 벗겨내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천자문은 서언과 결언을 갖추고 그 중간 방대한 본문을 두길 서사로 요령 있게 구축한 문학작품이라고 안내한다. 본문 ‘두길 서사’ 중 하나는 삼황오제부터 위·진까지 중국의 역사, 다른 하나는 가상 선비의 일생, 말하자면 시로 쓴 평생도(平生圖)라고 해석하며 마지막 결언은 황제에게 바치는 대책(對策)과 표문(表文)임을 알려준다. 천자문을 2구 8자 단위로 해석해온 틀에서 벗어나 최소 4~6구 단위의 긴 호흡으로 풀어준다. 천자문에 붙은 습자서의 굴레를 벗겨내고 저자 주흥사의 의도대로 ‘줄거리가 있는 한 편의 잘된 문학작품’으로 복원시켰다. 저자가 말하는 ‘두길’이란 ‘두 갈래’, 혹은 ‘두 줄기’라는 뜻이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