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우리는 자주 직감의 힘에 의존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 급히 해결할 문제와 마주쳤을 때,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강렬한 느낌, 머릿속이 환해지는 듯한 기분만큼 우릴 안심시키는 건 없다. 윌리엄 더건 컬럼비아경영대학원 교수는 위기 때 우리를 찾아오는 이러한 선명한 통찰력을 ‘제7의 감각’이라고 불렀다.
더건에 따르면, 직감 또는 직관에는 세 유형이 있다. 평범한 직관은 우리 모두가 타고나는 육감이다. 이는 큰 노력 없이 우리 안에서 본능적,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왠지 모르게 끌리거나 꺼림칙한 기분을 뜻한다. 전문적 직관은 ‘패턴 인식 능력’으로, 익숙한 상황에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남들보다 빠르게 떠올리는 힘이다. 특정 분야에서 오랜 숙련을 거치면 이 힘을 얻을 수 있다.
전략적 직관은 낯설고 새로운 상황에서 답이 없어 보이는 나날이 지속될 때, 우리 머릿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섬광 같은 통찰력이다. 큰 업적을 이룩한 정치가들, 혁신가들, 예술가들, 과학자들은 모두 인생 한때 이런 ‘유레카’의 순간을 경험했다.
우리의 행동 대부분은 이성적, 명시적 궁리보다 암묵적, 직관적 처리 과정이 이끈다. 사실, 직감을 좇아 행동하는 건 진화의 역사가 낳은 위대한 생존술이다. 위험하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포식자와 마주쳤을 때, 순간의 느낌을 믿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다.
문제는 직감의 질이다. 어떤 이들은 남보다 빨리 판단하면서도 정확한 답을 찾아내고, 어떤 이들은 우물쭈물하면서도 잘못된 길로 들어서곤 한다. 오늘날처럼 변화 빠른 환경에서 직감의 질을 높여두는 건 더 좋은 삶에 이르기 위해 해결할 핵심 과제다.
영어로 직감을 인튜이션(intuition)이라고 한다. 이 말은 안(in-)을 들여다보다(tueri)란 뜻이다. 직감은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보다 자기 안에서 솟아나는 느낌을 더 우선하는 사고방식이다. 직감을 흔히 ‘내장의 감각’ 또는 ‘명치의 울림’ 등으로 표현하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전문가의 직감은 신뢰도가 무척 높다.
<전망하는 인간, 호모 프로스텍투스>(웅진지식하우스)에서 피터 레일턴 미국 미시간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전문가들은 일정 수준의 창의성과 한발 앞서 생각하는 힘이 있을뿐더러 상황 변화에도 민감하다고 말한다. 단련된 직감 덕분이다.
이전엔 한 번도 본 적 없는 문제에 대해 즉각 답을 제시하는 힘, 한 프로그램에서 얻은 정보를 큰 노력이나 정교한 계산 없이 다른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힘이 전문가에겐 있다. 이들처럼 직감을 사용하려면, 꾸준한 학습과 체험이 필요하다. ‘영감은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법’이다. 깊게 공부하고 넓게 경험한 사람만이 작은 단서에서 큰 통찰을 끌어내는 창의성을 발휘한다.
그런데 인도 행동과학자 프라기야 아가왈의 <편견의 이유>(반니)에 따르면, 직감엔 큰 위험이 따른다. 학습과 경험 과정에서 부정확한 정보가 끼어들어 편견에 사로잡히면 오류를 교정하기 힘든 데다, 흥분, 불안, 분노 등 감정에 휘둘릴 땐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쉬운 까닭이다. 사랑하면 눈멀고, 화나면 눈앞이 어두워지는 법이다.
직관은 보고 싶은 점만 보고, 믿고 싶은 점만 믿는 확증 편향 또는 희망 사고로 자주 변질되고, 집단 사고에 오염되어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명백한 진실처럼 착각하곤 한다. 나쁜 직감에 익숙해지면, 판단은 후져지고 일은 자꾸 실패로 돌아간다. 한쪽으로 쏠린 마음은 엉성한 데이터로부터 섣부른 결론을 도출하고, 인지의 지름길을 이용해 무의식적으로 믿고 싶은 환상을 현실로 빚어내기 때문이다.
경험이 반드시 지혜를 보증하지도 않는다. 노인이나 윗사람이 더 현명한 건 아니란 뜻이다. 독일 심리학자 우르술라 슈타우딩거는 지혜를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 환경 차이를 이해하며, 자기 한계를 인식하면서 상황에 적응하는 힘으로 정의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지성, 사회적 능력,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개방성은 지혜에 도움을 주지만, 나이는 지혜 획득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지혜는 정보의 단순한 누적이 아니라 비약과 단절이 순간순간 일어나는 열린 프로세스다. 쌓인 경험이 고집으로 변하면 곤란하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솔직히 받아들인 후, 낯선 지식을 학습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신선한 문화에 마음을 열면서 과거 경험을 잊는 일이 때로는 직감의 질을 높이고 지혜로 나아가는 길이다.
일찍이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인지의 질을 높이는 자아의 기술로 “너 자신을 알라”, 즉 메타인지를 강조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이해하는 일은 긴장된 상황에서 더 좋은 결정을 하고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 핵심 능력이다.
가령,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자기 감정을 파악하고 이해하며 이를 넘어설 용기를 품어야 한다. 고집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소심하고 비겁한 사람은 낡은 사고를 교정하지 못한 채 익숙한 대로 행동하기 쉽다.
야나 니키틴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교수의 <작고 똑똑한 심리책>(웅진지식하우스)에 따르면, 자기 감정을 이해하면, 판단 과정에서 순간의 기분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울컥하는 기분에 즉각 행동에 나서기보다 하룻밤을 보내는 등 감정의 영향력을 줄이려 애쓰면 대부분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거리두기는 인지의 질을 높이고 창의적 사고를 북돋우는 좋은 방법이다. 동네 슈퍼에 가는 방법보다 파리나 런던에 가는 방법이 다양한 법이다. 시간이 넉넉하거나 목적지가 멀리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더 기발한 경로를 떠올린다. 가까우면 시야가 좁아지고 멀어지면 생각이 확장된다. 익숙한 사고에서 스스로 멀어지려 애쓰면, 사람은 더욱더 지혜로워진다. 의도적 거리두기는 인지의 질을 높이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이다.
이런 사고법은 예술 작품에서 쉽게 배울 수 있다. 예를 들면, 살바도르 달리는 그림에 데페이즈망(de0 paysement)기법을 사용하여 낯익은 사물을 낯설게 만들곤 했다. 익숙한 사물을 엉뚱한 공간에 배치하는 수법이다. 그는 버뮤다 바다에서 조각배를 타고 체스를 두는 자화상 등을 그림으로써 인지적 충격을 의도적으로 일으켰다. 예술 작품을 많이 접하면서 자기에게서 스스로 거리를 두고, 익숙한 감정을 부인하는 사고법을 생활화하면, 누구나 인지의 정확성을 끌어올리고 직감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일본 작가 야마구치 슈의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북클라우드)에 따르면, “고도의 의사결정 능력은 직감적이고 감성적이다.” 이 때문에 비자나 포드 같은 세계적 기업들은 핵심 인재를 미술대학원에 보내 공부시키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아침 갤러리 토크엔 수많은 비즈니스맨이 참석한다. 전략적 의사결정을 할 때, 우리는 회화나 음악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 감각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직감의 질을 높이면 일의 성패를 좌우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