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드비어스그룹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주얼리 브랜드 ‘라이트박스’가 결혼반지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는 전통적으로 천연 다이아몬드의 영역인 예물 시장만큼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2018년 론칭 당시 공언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보였다. 게다가 라이트박스는 이에 대한 사전 보도자료도 배포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라이트박스 홈페이지에 결혼반지가 등장한 것이 전부였다. 이 같은 소식에 다이아몬드 업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2018년 9월, 드비어스는 라이트박스를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패션 주얼리’로 소개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가격인 캐럿당 800달러에, 등급도 매기지 않으며 온라인으로만 판매한다고 밝혀 예물 시장을 잠식하는 자충수를 두지 않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이 소식에 드비어스의 파트너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동시에 수많은 천연 다이아몬드 회사들이 발 빠르게 합성 다이아몬드 시장에 진입했다. 이를 기점으로 합성 다이아몬드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라는 세련된 이름과 함께 시장은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이번 라이트박스의 발표에 모두가 놀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5년이나 걸렸다는 것이 충격이라는 의견도 있었는데, 드비어스가 단기적인 전략으로 움직이는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드비어스가 미국 오리건주에 9400만달러를 투자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공장을 건설했을 때 과연 그들이 패션 주얼리에 만족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실제로 막대한 생산 투자와 혼란의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드비어스의 결혼반지 시장 진출은 현실이 됐다.
그들은 ‘3개월간의 테스트 단계를 통한 소비자 반응 파악’이라는 명분을 앞세우며 애틀랜타, 댈러스, 뉴욕의 3개 시장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라이트박스는 엄연한 온라인 브랜드가 아니던가. 즉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 세계 어디에서든 결혼반지를 구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패션 주얼리는 드비어스의 장기적인 목표가 아니었고 보다 폭넓은 시장 진출을 추구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여기에는 다이아몬드 채굴의 유한성이라는 배경이 한몫했다. 드비어스는 현재 보츠와나, 나미비아, 남아프리카, 캐나다에 다이아몬드 광산을 소유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2년 생산보고서에 따르면 드비어스 다이아몬드 생산량의 70%는 보츠와나의 즈와넹(Jwaneng), 오라파(Orapa), 레트라카니(Letlhakane) 광산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연장 가능성은 있지만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레트라카니 광산의 수명이 2043년까지인 반면 가까운 미래에 개발 예정인 주요 광산은 없다. 설사 새로운 광산이 개발되더라도 해당 국가들이 더 높은 수익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기후변화로 인해 다양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와 같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위험 회피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를 대안으로 삼았던 것이다. 또한 연간 약 20만 캐럿이라는 대규모 합성 다이아몬드 생산시설을 갖춘 상태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제한할 이유도, 수익성이 높은 결혼반지를 포기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0여 년 동안 다이아몬드 산업의 대부로서 한때 다이아몬드 원석 시장의 대부분을 독점했던 드비어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에 의문을 가진 보석상들에게는 더욱더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지난 1년 동안 천연 다이아몬드는 점차 시장 점유율을 잃어가고 있고,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수요와 공급 사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해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산업 분석가 폴 짐니스키에 따르면, 2023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생산량은 1500만 캐럿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천연과 랩그로운 시장 양쪽에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판매자들은 경쟁이 치열한 결혼반지 시장을 떠나 패션 분야로 전환할 계획을 밝혔다. 이 시점에서 라이트박스의 예물 시장 진출은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라이트박스의 가격모델이 현재 시장가격보다 비싸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드비어스라는 브랜드의 명성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가치를 탐색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기존 다이아몬드 시장을 분리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 드비어스가 시장을 보다 잘게 쪼개려는 모양새라고 할까.
오늘날 MZ세대에게 주얼리는 개성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자 패션을 완성하는 필수품이다. 그들은 비용이 적게 드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트렌디한 선택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구매하는 브랜드가 윤리적인 가치와 지속 가능한 사회적 실천을 추구하며 탄소발자국을 최소화하는지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미닝아웃(특별한 메시지나 사회적 가치를 담은 제품을 구매해 본인의 신념을 표출하는 것)’ 소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MZ세대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선택하는 이유다. 이들에게 있어 럭셔리는 어쩌면 익스클루시비티(Exclusivity)보다 투명성과 진정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현재 드비어스가 직면한 경쟁자는 사실상 드비어스 자신일지도 모른다. 큰 배가 작은 배보다 움직이는 속도가 느린 이유는 실수를 범하면 훨씬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과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 <젬스톤 매혹의 컬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