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여간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하이브와 카카오의 SM 지분 늘리기 대결은 SM 창업자 이수만에 대한 폭로전으로 번지며 진흙탕싸움이 됐다. 다행히 양 사는 ‘쩐의 전쟁’으로 치킨게임을 하는 대신, 플랫폼 사업을 협력해 윈윈하는 방안으로 전격 합의했다.
K팝의 산 역사인 이수만의 추락은 안타깝지만, SM의 지배구조가 일부 개선됐다는 점은 긍정적인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 제왕적 1인자의 전횡이나 불투명한 회계·정산문제가 여전히 만연한 한국 엔터 업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이르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새삼 느낀 시간들이었다.
방시혁 하이브의장은 더 나아가 “K팝 위기의 시작”이라 했다. 그는 지난달 관훈포럼에서 “K팝 성장지표의 둔화가 명확하다”며 지금의 인기가 과거 홍콩 영화, 재패니메이션처럼 ‘반짝’ 지나가면 안 된다는 위기감에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삼성이 있고,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현대가 있듯, K팝에서도 위기상황을 돌파해 나갈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등장과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산업시스템과 생태계를 구축하고 세계적인 엔터 기업들과 경쟁할 만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오는 것, 지속가능한 한류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여기에 더해 한류의 지속 성장에 빼놓을 수 없는 원동력이 바로 콘텐츠다. 탄탄한 콘텐츠는 창작자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나올 수 없다. 무엇보다 창작자의 창작 의욕을 꺾지 않는 제도 보안이 시급한데, 그 출발은 저작권 보호다.
협상력이 약한 창작자들을 상대로 제작사가 불공정한 계약을 맺는 ‘매절계약’은 우리 문화예술계의 고질적인 문제다. 저작권 관련 법적분쟁 중 생을 마감한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 작가 고(故) 이우영 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또 제작자에게 넘어간 영상물 저작권으로 인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영상물 창작자들의 저작권 보호를 위한 법 개정도 서둘러야 한다.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연봉 200만원 인생’으로는 창작의 삶이 계속될 수 없다.
하나 더, 우리 콘텐츠의 불법유통을 근절하기 위한 정부의 외교적 노력도 창작자의 창작 의욕을 꺾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하다. 영국 유학 시절, 중국 친구가 재밌는 영화를 같이 보자고 집에 초대했다. 한국 영화 <엽기적인 그녀>였다. 한국에서 한참 흥행 중인 영화를 사실상 거의 실시간으로 중국어 자막까지 달아 돌려보고 있어 놀랐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지금도 중국의 한국 콘텐츠 불법유통은 여전하다. 아니,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수십 개의 중국 사이트에서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최근작 <더 글로리>까지 한국 콘텐츠들을 불법유통하고 이를 활용한 굿즈 판매, 스핀오프 방송까지 하고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격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뒷짐 진 중국 정부가 적반하장 격으로 한한령을 발동해 한국 콘텐츠의 중국 수출을 막아서도 우리 정부는 중국 눈치 보기에만 바쁘다. 그사이 중국 기업들은 한국의 인기 게임들을 그대로 베껴서 중국 게임 산업을 키우더니 이제는 한국 시장까지 장악한 지 오래다. K팝이 사라진 자리를 C팝이 메우지 말란 법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