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과 상법개정안 등 굵직한 기업지배구조 개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내 재계와 글로벌 투자자들의 반향이 커지고 있다. 법 시행을 앞둔 산업계는 경영 환경 혼란과 대규모 구조 변화에 대한 대비책을 내놓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명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사회적으로 ‘노동자 쟁의권 침해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손해배상소송 관행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법 명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는 원청-하청 구조에서 하청 노동자에게까지 원청과의 직접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대폭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약 4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가 내려진 것에 대한 시민 성금 운동에서 유래한 법안이다. 이 사례처럼 대규모 단체행동 뒤에 노동자가 파산 위기에 몰리는 관행을 근절할 것으로 기대된다. 상법개정안(2025년판, 일명 ‘더 센 상법’)은 주주 권익과 경영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법인에 대해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을 명시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복수 이사를 한 명에게 몰표로 선출할 수 있는 제도로, 미국 GE 등 행동주의 펀드의 성공사례처럼 소액주주 영향력을 확대하는 긍정 효과가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최대주주 의결권 3% 제한 등은 기존 오너일가 중심의 경영승계·지배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SK케미칼의 물적분할 등 주주와 이사회 간 첨예한 갈등이 잦았던 기업들은 앞으로 소액주주의 집단행동과 대표소송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두 법안은 각각 6개월(노란봉투법), 1년(상법개정안)의 유예기간 후 시행된다.
재계는 법 시행에 따른 다양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은 노란봉투법이 과도한 쟁의행위를 유발하고, 경영상 불확실성과 비용 증가를 초래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다수 협력업체마다 직접 교섭과 단체행동이 가능해져 경영 효율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소송·분쟁 빈번화, 경영권 약화, 외국인 투자기업의 철수 등은 장기적으로 국내 투자 환경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 경제계의 대표적 입장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최근 자산 상위 50대 그룹의 상장사 130곳을 조사한 결과, 평균 우호 지분율 중 약 37.8%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1차 개정에서 도입된 ‘합산 3%룰’과 이번 2차 개정의 핵심인 집중투표제·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동시에 적용될 경우다. 대표적으로 세아그룹은 평균 우호 지분율이 67.8%에 달하지만, 합산 3%룰을 적용하면 무려 의결권의 64.8%를 잃는다. 한국앤컴퍼니그룹과 롯데그룹도 각각 57.0%, 55.3%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될 전망이다. 반면 조사 대상 130개 계열사 중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곳은 74개사(56.9%)로 감사위원 분리선출에서 오너 일가와 동일한 수준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주주총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가능성이 크다.
또 대한상공회의소가 300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동시에 반영될 경우 경영권 위협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74%에 달했다.
경제단체들은 상법 개정안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경영권 불안과 소송 리스크 증가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후속 입법을 촉구했다. 한국경제인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한국무역협회·코스닥협회 등 경제8단체는 상법 개정안 통과 후 공동 입장문을 내고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경영권 방어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이 미래를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경영 판단 원칙’을 명문화하고, 배임죄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아울러 기업이 혁신과 성장에 매진할 수 있도록 경제형벌과 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인센티브를 대대적으로 정비해 나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 경제단체 역시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유럽상공회의소(ECCK) 등은 노동법개정과 기업지배구조 규제 강화가 투자·사업 안정성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사업장 재평가에 나서거나 철수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등, 실제 시장 이탈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이 단체들은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입법이 추진된 점, 법 시행 이후 노사 갈등 격화와 글로벌 투자 위축 등의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를 지속적으로 의식하고 있다.
법 개정에 따라 CJ, 롯데 등 주요 대기업의 승계 전략과 복잡한 지배 구조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기존에는 유상증자·분할·이중상장 등 오너일가 중심의 지배구조 강화 수단이 주주총회에서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개정법 이후 소액주주들이 반대 소송을 적극적으로 제기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경영 승계나 물적분할 등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주주들의 감시·견제 기능이 실질적으로 가동될 전망이다.
자사주 활용 전략, 내부 거래, 계열사 합병 등 각종 경영 활동 역시 강한 규제 아래 놓이게 된다. 이번 상법 개정은 합병 시 주식가격·자산가치·수익가치 등 공정가액 적용, 모회사 일반주주에 대한 신주물량 배정, 경영권 프리미엄 공개매수 의무 도입 등 세부 규정도 포함한다. 합병 검사인 제도와 부당 내부거래 제재 강화, 자사주 소각 등까지 다양한 구조 개선 방침이 시행될 예정이다.
해외 투자자 및 글로벌 기업들은 법개정의 영향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한국GM의 경우, 노란봉투법통과 직후 공식적으로 ‘한국 사업장 재평가’를 언급하며 사업 철수까지 내비쳤다. 미국상공회의소와 유럽상공회의소 등 주요 해외 경제단체도 투자 환경 불확실성, 노사 갈등 심화, 법적 리스크 등을 언급하며 한국 시장에 대한 신규 투자 축소를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법 시행이 ▲주주 권익 강화 ▲기업 투명성 제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등 일부 긍정적 신호를 제공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급진적 제도 변화가 산업현장에 미칠 단기·중기 충격, M&A 시장 위축, 투자 감소 등 부정적 효과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는 법안의 유예기간 동안 현장 혼란 최소화, 실무적 가이드라인 마련, 노사 신뢰 구축 등 제도적 안전장치 강화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법 시행이 본격화될 경우, 법률 해석·판례 부족, 기업별 리스크 관리 한계, 국제경쟁력 약화까지 잇따르는 혼란에 대한 선제적 대응책이 절실할 전망이다.
이번 노란봉투법·상법개정안 통과는 단순한 입법을 넘어,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패러다임 변화 ▲노사관계의 전면 재편 ▲글로벌 투자 환경의 중대한 분수령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외 기업, 투자자, 정책입안자 모두가 이 변곡점에서 앞으로의 정책 방향과 전략적 대응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현대제철 역시 하청노조와 원청 간 단체교섭 요구 등으로 갈등이 재점화된 바 있다. 네이버 등 IT기업까지도 ‘진짜 사장이 나오라’는 하청노조 요구에 대응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제조·플랫폼 등 다양한 산업에서 대기업이 수많은 협력사와 복잡한 분쟁 가능성에 노출될 수 있다.
재계와 경제단체, 투자자들은 노란봉투법 등 기업지배구조 개혁이 산업 현장 내 불확실성 증대 및 신규 투자 위축, 글로벌 기업의 한국 철수 가능성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특히 주한미국상공회의소와 유럽상공회의소는 “노동 법률 리스크가 투자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며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규제 강화가 한국을 ‘투자 기피국’으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본과 노동 이슈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법적 리스크가 높아지면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대형 국내 기업도 생산·투자거점 이전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상법개정안 이후 주주권 강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으로 소액주주 행동이 촉진되고, 경영진의 법적 책임 부담이 늘어나면서 적극적인 해외 이전·합작회사 설립·현지화 전략이 속속 검토되고 있다.
[추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