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에서 카페 ‘레드보틀 본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사장은 서초동에 ‘레드보틀 강남점’을 열고 오랜 기간 함께 일한 박엉뚱에게 강남점 운영을 맡겼다. ‘레드보틀 강남점’은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김사장은 박엉뚱에게 수고했다며 특별보너스를 지급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김사장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손님에 비해 강남점 매출이 너무 낮았다. 알고 보니 박엉뚱이 손님들에게 현금을 내면 할인해준다며 현금 결제를 유도한 후 현금을 착복했던 것이었다. 그 액수는 무려 5000만원이었다. 김사장은 박엉뚱을 횡령으로 고소했다. 구속될 위기에 놓인 박엉뚱은 하나뿐인 딸 병원비가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며 눈물로 사죄했고, 마음이 약해진 김사장은 어차피 손해배상을 받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해주었다. 몇 년 후 김사장은 세무서로부터 한 통의 세금고지서를 받았다. 김사장이 ‘레드보틀 강남점’ 매출 5000만원을 누락한 채 세금신고를 하였다며 누락한 5000만원에 대한 종합소득세 2000만원을 추가로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김사장은 전심절차를 거쳐 과세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판사 사업소득 누락을 이유로 한 종합소득세부과처분에 대해 취소를 구하는 사건이군요. 김사장님. 과세처분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김사장 세무서는 제가 5000만원을 벌었다고 하는데, 저는 5000만원을 벌지 않았어요. 박엉뚱이 저 모르게 커피를 팔아 돈을 바로 가져갔습니다. 피해자가 도둑맞은 돈의 세금을 내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세무서 저는 김사장님 말씀이 이해가 안 갑니다. 예전에 박엉뚱이 김사장님의 돈 5000만원을 횡령했다고 고소하셨죠? 왜 경찰에서는 5000만원이 김사장님 돈이라고 주장했다가 이제 와서 5000만원이 박엉뚱 돈이라고 말씀하세요? 저희는 도둑맞은 돈의 세금을 내라는 것이 아니라 도둑맞기 전에 번 돈에 대해 세금을 내라는 것입니다.
김사장 아니 그 돈이 제 통장에 들어왔던 것도 아니고 박엉뚱이 받자마자 바로 가지고 갔는데, 그게 제가 번 돈이라고요?
세무서 박엉뚱에게 손해배상청구해서 5000만원 받으시면 되잖아요. 그리고 팁을 드리면 나중에 돈을 받지 못하면 그때 대손금으로 필요경비로 처리할 수 있어요.
김사장 그럼 지금 대손금으로 인정해주세요. 박엉뚱이 외동딸 병원비 때문에 나쁜 짓을 했다고 고백하더군요. 저는 사건 직후에 돈을 하나도 받지 않고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해줬어요.
세무서 안타깝지만 김사장님은 박엉뚱에 대한 채권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어서 대손금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본 내용은 개인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필자가 속한 기관과 관련이 없음>
소득세법은 개인의 소득을 과세대상으로 삼고 있다. 소득세법이 정한 소득, 그중에서도 사업소득, 근로소득, 이자소득 등이 있는 사람은 종합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그런데 그 ‘소득’이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알기 어렵다. 예를 들어 사업소득금액은 ‘수입 등’(총수입금액)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통상적인 비용’(필요경비)을 빼서 계산한다. 필요경비는 그 개념만 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비용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다.
총수입금액은 간단하게 말하면 ‘번 돈’을 의미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역시 알기 어렵다. 앞서 본 사례에서 박엉뚱이 받은 현금 5000만원이 김사장의 수입에 해당할까? 박엉뚱이 정상적으로 커피를 판매하고 5000만원을 받았다면 5000만원은 수입에 해당한다고 대부분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박엉뚱이 처음부터 판매대금을 착복할 의도에서 김사장의 허락 없이 고객에게 현금 할인을 유도하고 판매대금을 바로 자기 지갑에 넣은 경우에도 같게 볼 수 있을까?
한번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손님은 과연 누구로부터 커피를 사고 대금을 지급한 것일까? 박엉뚱으로부터 커피를 사고 대금을 지급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김사장은 손님에게 왜 공짜로 커피를 마셨냐며 이제라도 돈을 내라고 따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사장은 손님에게 돈을 내라고 할 수 없다. 법적으로는 김사장이 손님에게 커피를 할인 판매하고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손님은 김사장을 대리해서 강남점에서 커피를 판매할 권한이 있는 박엉뚱과 거래를 한 것이다. 박엉뚱이 손님으로부터 현금을 받은 것은 김사장을 대신해서 돈을 받은 것이고, 돈을 받자마자 법적으로 ‘김사장의 돈’이 된다. 박엉뚱이 곧바로 자신의 지갑에 넣더라도 ‘김사장의 돈’을 횡령한 것이다. 만약에 김사장이 사전에 현금 할인을 금지하거나 현금 대신 카드로만 대금을 받게 했다면 다르게 볼 수 있을까? 다르지 않다. 상법은 물건을 판매하는 점포의 직원은 그 판매에 관한 모든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유사한 사례에서 박엉뚱이 할인 판매한 커피대금 5000만원이 김사장의 수입에 해당하고, 그에 대한 종합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회계적 관점에서 보면 종업원이 횡령을 했다고 해서 바로 김사장의 자산이 감소하지 않는다. 김사장은 박엉뚱을 상대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즉 김사장의 현금 5000만 원이 박엉뚱에 대한 손해배상채권 5000만원으로 변경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김사장 5000만 원을 벌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세금을 내야한다는 결론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현실에서는 김사장과 같은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손해배상을 제대로 받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소득세법은 손해배상채권이 나중에 회수불능되면 대손금으로 인정해 소득금액을 계산할 때 필요경비로 산입해준다. 하지만 대손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가해자에게 재산이 없어 만족을 얻지 못할 것 등 그 인정요건이 까다롭다. 특히 사안과 같이 가해자에게 재산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손해배상채권을 포기한 경우에는 대손금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5000만원을 가져간 박엉뚱은 5000만원에 대해 세금을 낼까? 소득세법은 법인세와 달리 법에서 과세대상으로 ‘열거한 소득’만을 과세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그리고 소득세법은 박엉뚱이 벌어들인(?) 횡령금에 대해 과세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법인의 실질적 대표자가 법인 자금을 횡령한 경우에 종합소득세가 부과될 수 있는 예외가 있을 뿐이다. 결국 박엉뚱이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장님들이 적지 않다. 도둑은 세금을 내지 않는데, 도둑맞은 사람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김사장의 주장에 공감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김사장이 종합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결론에 논리적 문제는 없다. 도둑맞은 돈에 대해 세금을 내라는 것이 아니라 도둑맞기 전에 번 돈에 대해 세금을 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제대로 손해배상을 받기 어려운 현실에서 피해자는 먼저 세금을 납부한 후에 스스로 손해배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해 세금을 공제받아야 하는 상황이 바람직한지, 바람직하지 않다면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을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8호 (2023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