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웅장했다. 첫인상만 그런 게 아니라 시승하는 내내 이렇게 커도 되나 싶을 만큼 실내공간이 넓고 높았다. EV9은 기아의 새로운 플래그십이다. 첫 공개행사에서 기아 관계자에게 “이보다 큰 차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카니발보다 크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EV9의 전장과 전폭, 전고(5010㎜×1980㎜×1755㎜)는 카니발(5155㎜×1995㎜×1775㎜)보다 살짝 작다. 기아 관계자가 언급한 부분은 실내공간을 결정 짓는 휠베이스. 자동차 앞바퀴와 뒷바퀴의 중심을 일직선으로 측정한 거리는 EV9(3100㎜)이 카니발(3090㎜)보다 길다. 게다가 이 차,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가 뼈대다. 그것도 국내 첫 3열 6인승 전기SUV이자 1회 충전에 501㎞ 주행이 가능한 최초의 국산 전기차다(2WD 19인치 휠 기준). 기아 브랜드 최초로 자율주행 ‘레벨3’ 단계인 고속도로 부분 자율주행(HDP)도 탑재했다. 다시 말해 기아는 이 차에 자사의 기술력을 총동원했다. EV6가 전동화 전략의 출발점이라면 EV9은 최상위 프리미엄 모델의 지향점이 되는 셈이다. ‘최초’란 수식어가 주렁주렁 매달린 이 차, 과연 승차감은 어떨까. ‘EV9 4WD 어스 풀옵션’ 모델에 올라 강원도 일대 왕복 400여㎞를 달렸다. 바닷가 앞에서 차박을 즐기는 이들이 한동안 쳐다보다 고개를 돌린다. 마치 좋은 잠자리를 발견했다는 듯….
웅장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실내공간은 엄지 척!
웅장하다고 해서 모양새가 부담스러운 건 아니다. 차체에 적용된 곡선 때문인지 부드러운 볼륨감이 썩 잘 어울렸다. 기아의 패밀리룩이 적용된 전면부의 디지털 타이거페이스와 LED 헤드램프, 주간주행등도 조화롭다. 날이 어두워지면 여러 개의 조명이 다양한 패턴으로 구현되는 ‘디지털 패턴 라이팅 그릴’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데, 반짝이는 모습이 SF영화 속 어딘가에서 본 듯한, 미래지향적인 감성이랄까. 여하튼 생소하지만 친근한 디자인이다.
운전석에 앉아 실내를 둘러보면 이 차의 매력이 확실해진다. 6인승 구조로 1, 2, 3열이 배치됐는데, 3열을 접으면 골프백 네댓 개는 충분할 만큼의 트렁크 공간이 생긴다. 앞뒤로 이동할 수 있는 2열은 스위블 시트가 적용됐다. 시트 아래 레버를 당긴 후 돌리면 2열과 3열이 마주보는 구조가 된다. 이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레저활동이 말풍선처럼 떠올랐다. 스위블 시트 대신 프리미엄 릴렉션 시트도 선택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2열에서도 마사지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부드러운 승차감, 신통방통한 부분 자율주행
시동 버튼을 누르면 디스플레이에 전원이 들어오고 차량 에어컨이 맹렬히 반응한다. 차 안 공기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듯 공기청정기와 함께 도는 에어컨이 기특하기만 하다. 그런데 잠깐, 그 소리 외엔 조용하다. 내연기관이 없으니 부르릉거리는 소리가 없는 게 당연한 일. 조금의 진동도 없다. 99.8kWh의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한 이 차의 복합주행거리는 454㎞. 60%가 충전된 상태에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니 충전소를 경유할 수 있는 경로가 안내됐다. 복합전비는 3.9㎞/kWh. 실제 구불한 국도에선 4.0㎞/kWh, 쭉 뻗은 고속도로에선 4.6㎞/kWh가 기록됐다. 승차감은 꽤 부드럽다. 액셀러레이터의 반응은 직설적이다. 전기차의 특성이 원래 그렇다지만 큰 덩치임에도 밟으면 밟는 대로 민첩하게 반응했다. 고속도로에서 작동한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은 꼭 있어야 할 필수 기능이다. 스티어링휠에서 손을 떼고 경험한 HDP 기능은 잠깐이었지만 꽤 편리했다. 예를 들어 운전석에 앉아 안경을 닦는다든지 캔음료를 따 마신다든지 샌드위치 포장을 하나하나 벗긴 후 한입 베어무는 게 더 이상 위험(?!)하지 않았다. 2개의 라이다를 포함해 총 15개의 센서와 정밀지도, 통합제어기 등이 연출한 상황이다.
EV9의 가격은 7671만~8781만원.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를 비롯해 차량의 전 생애주기 애프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EV9 전용 프로그램(케어서비스)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