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즐기는 짜릿한 방법이라면? 모터사이클 라이딩을 빼놓을 수 없다. 온몸을 노출한 채 엔진을 다리 사이에 끼고 바람을 품으니까. 빨리 달리면 바람을 가르고, 천천히 달리면 바람과 대화한다. 모터사이클에 앉는 순간부터 내리는 순간까지 바람은 라이더와 함께한다. 모터사이클로 통칭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각각 다르다. 다양한 방식으로 바람을 즐기게 한달까.
모터사이클은 장르에 따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수많은 모터사이클 중 가장 웅장하고 여유로우면서 때로 짜릿하게 바람을 즐길 수 있는 모델이 있다. 차체가 커다랗고 배기량이 풍성한 각 브랜드의 기함급 모델은 투어링 혹은 크루저라는 형태로 고배기량, 고급 모터사이클 시장의 꼭짓점을 형성한다. 바로 그 기함급 모델을 모았다. 과한 게 미덕이자 매력인 모터사이클이다. 어떤 모델이든 풍요로운 마음과 자세로 바람을 즐길 수 있다.
# BMW 모토라드 / K 1600 그랜드 아메리카
BMW 모토라드의 기함 ‘K 1600 GTL’을 아메리칸 스타일 투어링으로 매만진 모델이다. 이름에서도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둔 의도가 드러난다. ‘그랜드 아메리카’. K 1600 GTL이 BMW다운 스포츠성을 그대로 품은 투어러라면 ‘K 1600 그랜드 아메리카’는 더 길고 낮은 차체 비율을 뽐낸다. 혼다의 ‘골드윙’이나 할리데이비슨의 ‘울트라 글라이드’처럼. 미 대륙의 광활한 길을 보다 느긋하고 안정적으로 달리는 데 신경 썼다. 독일 브랜드가 해석한 미국식 투어링이랄까. K 1600 GTL보다 한층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차체에 미국식 멋을 부렸지만 BMW다운 엔지니어링 기술력은 그대로다. 1640cc 직렬 6기통 엔진은 K 1600 시리즈의 핵심. 슈슈슈슉, 하며 돌아가는 6기통 엔진은 매끄러운 소리가 일품이다. 부드러우면서 강렬하다는 걸 소리만으로 웅변한다. 최고출력 160마력과 최대토크 17.8㎏·m는 투어링을 즐기기에 차고 넘친다.
느긋한 주행 자세를 위해 풋 보드도 장착했다. 아메리칸 스타일을 신경 쓴 부분. 발을 뻗은 채 한결 편하게 달릴 수 있다. 고급 투어링답게 첨단·안전 장비 역시 두둑하다. K 1600 그랜드 아메리카의 장점은 명확하다. 독일 엔지니어링을 만끽하면서 느긋한 미국 투어링 스타일도 즐기기.
# 할리데이비슨 / 로드글라이드 리미티드
할리데이비슨의 최상위 모델은 ‘CVO(Custom Vehicle Operation)’다. 일반 모델에 커스텀을 가미한 특별판 격이다. 일반 모델로 보면 ‘로드 글라이드 리미티드’가 정점에 선다. 배거 스타일로 멋을 강조한 투어링. 상어의 옆모습을 보는 듯한 샤크 노즈 페어링이 인상적이다. 특히 리미티드 모델은 커다란 톱 박스까지 있다. 높고 커다란 앞머리부터 톱 박스가 달린 꽁무니까지 전체적으로 거대하다. 투어링에 걸맞은 요소를 갑옷처럼 두른 덕분이다. 전면 페어링, 다리 쪽 우퍼 겸 카울, 양쪽 사이드박스, 톱 박스까지 방풍성부터 수납공간까지 투어링다운 면면을 과시한다.
엔진 질감과 고동도 다른 모델과 조금 다르다. 장거리를 편하게 달리는 투어링이기에 부드럽고 기름지다. 투어링의 고급스런 질감을 할리데이비슨 영역에서 나름대로 살린 셈이다. 물론 타 브랜드 투어링과 비교하면 여전히 철마 같은 날것의 느낌은 툭툭 살아난다. 그 특징이야말로 할리데이비슨만의 영역을 구축한다. 끌리면 대체 불가니까.
# 혼다 / 골드윙 투어 DCT 에어백
투어링 모터사이클의 대표 모델이다. 1975년부터 46년 동안 투어링 모터사이클의 상징처럼 군림했다. 흔히 투어링 모터사이클 하면 ‘골드윙’이 제일 먼저 뇌리를 스치는 이유다. 2018년에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다. 더 젊어진 골드윙이랄까. 차체 경량화에 신경 쓰고 수많은 편의장치를 도입했다.
특히 7단 DCT 변속기는 투어링의 최종 옵션 같은 역할을 한다. 기어 변속마저 알아서 해준다. 자동 변속기 자동차를 생각하면 된다. 시동이 꺼질 염려도 없다. 모터사이클이 어떻게 더 편해질까 싶은 지점에 도달했다. 저속으로 앞뒤로 움직이는 워킹모드까지 있으니 어련할까. 골드윙의 상징 같은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은 여전하다. 1833㏄의 풍성한 배기량으로 최고출력 126마력, 최대토크 17.3㎏·m를 발휘한다. 투어링답게 마력보다 토크 위주로 힘을 몰아 덩치를 가뿐하게 놀린다.
주행모드는 네 가지. 변속 시기부터 스로틀 반응성이 달라진다. DCT가 알아서 변속해주기에 입맛대로 상황대로 즐기면 된다. 커다란 스쿠터처럼.
# 두카티 / 디아벨 1290
두카티는 이탈리안 레드가 대표색이다. 색으로 브랜드 성격을 표현했다. 새빨간 색만큼이나 두카티 모터사이클은 하나같이 강렬하다. 엔진의 질감에서, 주행 성격에서, 모델별 디자인에서 강렬함은 깊게 배어 있다. ‘디아벨’은 두카티가 선보인 크루저 모터사이클이다. 물론 전통적인 크루저는 아니다. 두카티와 느긋하게 달리는 크루저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냥 크루저가 아닌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머슬 크루저다. 풍만한 연료탱크와 그에 맞춰 한 덩어리로 빚은 차체, 두툼한 뒤 타이어가 머슬 크루저다운 위압감을 살린다.
디자인만큼 출력도 위력적이다. 1262㏄ L-트윈 엔진은 최고출력 162마력, 최대토크 13.1㎏·m를 뿜어낸다. 토크가 두툼하고 마력도 꽤 높다. 반면 차체 무게는 크루저치고는 가벼운 249㎏다. 가벼운데 출력은 높으니 몸놀림이 범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크루저라는 형태를 차용했어도 두카티다운 정체성을 유지하는 셈이다. 퍼포먼스 크루저라도 크루저이기에 라이딩 자세는 네이키드에 비해 한결 편하다. 그런 점에서 디아벨은 상대적으로 편하면서 여전히 짜릿한 두카티다.
# 트라이엄프 / 로켓 3
양산 모델 중 가장 큰 배기량을 품은 모터사이클. 2500㏄ 3기통 엔진은 ‘로켓 3’를 단순한 모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한다. 가장 풍성한 배기량을 소유한다는 어떤 뿌듯함. 제원 숫자가 전부는 아니지만, 때로 상징적 숫자가 라이딩의 감흥을 배가시킨다. 다리 사이에서 2500㏄ 3기통 엔진이 으르렁거리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스로틀을 비틀면 최고출력 167마력, 최대토크 22.5㎏·m가 쏟아진다. 특히 토크가 무지막지하다. 숫자만으로 질리는 감이 있지만 최신 모터사이클답게 주행 안전 관련 전자장비가 부담을 덜어준다.
로켓 3는 R와 GT 두 가지로 구성됐다. 머슬 크루저라는 형태를 기본으로 성격을 나눴다. R는 역동적으로, GT는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둘 다 강력하지만 라이딩 자세에 따라 맛이 다르다. 이 또한 모터사이클의 매력이다. 트라이엄프는 본네빌이 대표하는 모던 클래식 라인업이 강점이다. 보고 음미하는 라인업답게 파츠 만듦새가 훌륭하다. 로켓 3에도 이런 품질은 고스란히 담겼다. 크루저 또한 보는 맛이 상당하니까. 바람을 가르고 로켓 타는 기분, 이름처럼 로켓 3가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