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짧은 영상) 플랫폼들의 한국 시장 쟁탈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유튜브(구글), 인스타그램(메타), 틱톡 등 외산 플랫폼들이 선점한 국내 숏폼 시장에 네이버가 출사표를 던졌다. 숏폼 콘텐츠는 MZ세대는 물론 알파세대(2010년 이후 출생)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킬러 서비스’로 사용자를 대규모로 유인하고 있다. 숏폼을 앞세운 해외 플랫폼들이 국내 이용자를 빠르게 잠식하자 네이버 역시 플랫폼 이탈을 막기 위해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면서 경쟁이 불붙는 모양새다.
MAU는 한 달에 최소 한 번이라도 서비스를 사용한 이용자 수를 의미한다. 숏폼 영상이 SNS 트렌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숏폼 영상은 영상 시청 시간은 길어졌지만, 하나의 영상에 체류하는 시간이 짧아지는 콘텐츠 시청 패턴과 맞물려 인기를 얻었다는 분석이다.
유튜브의 상승세는 위협적인 수준이다. 카카오톡과의 MAU 격차는 2023년 3월 처음으로 100만 명 선이 무너진 이후 지난 7월에는 40만 명대까지 줄었고, 11월 기준 22만 명대까지 좁혀졌다.
유튜브의 1위 등극은 시간문제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특히 유튜브는 사용자가 머무르는 시간을 의미하는 월간 총 사용시간에서 경쟁 플랫폼 대비 압도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튜브의 진격에 대해 ‘숏폼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튜브는 2023년 2월 자사 숏폼 서비스인 ‘쇼츠’를 통해 크리에이터들이 수익 창출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국내 인플루언서들이 숏폼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유튜브는 2023년 7월 쇼츠를 통한 수익 창출 조건을 완화하는 파트너프로그램을 6개국에서 공개했다. 한국이 그중 하나로 포함됐다. 글로벌 크리에이터 전문 기업 콜랩아시아 분석에 따르면 유튜브 시청자 뷰(view)의 88.2%가 쇼츠에서 발생했다. 또 유튜브 채널 유입 10명 중 7명은 쇼츠로 처음 채널에 접근했다.
네이버는 수개월의 예열을 마치고 빅테크가 선점한 숏폼 콘텐츠 시장에서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상태다.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네이버는 2023년 11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개편하며 ‘클립’을 전면에 내세웠다. 같은 해 6월에는 클립 서비스 개편에 맞춰 공식 창작자를 모집했는데 총 1만 3000여 명이 지원하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네이버는 2023년 연말을 앞두고 자사 숏폼 서비스 ‘클립’의 연간 사업 목표를 재조정해 높여 잡았다. 클립은 당초 목표였던 일간 활성사용자 수(DAU) 100만 명과, 일평균 1000만 뷰(조회 수)를 조기에 달성했다. 이를 2배로 늘려 잡아 DAU 200만명과, 일평균 2000만 뷰를 연내 달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네이버는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목표치를 달성했거나 상향된 목표치에 근접하는 성과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후발주자로 나선 네이버의 차별화 전략은 쇼핑, 검색, 블로그등 다양한 자사 서비스와의 연계에 방점을 찍는다. 블로그, 카페 등 UGC(이용자 생성 콘텐츠)를 오랫동안 운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수익모델을 적용해 숏폼 창작자를 빠르게 끌어모으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유튜브(쇼츠), 인스타그램(릴스), 틱톡 등 다른 숏폼 서비스와의 차별점은 네이버의 여러 서비스로 바로 가는 기능을 제공해 확장성이 높다는 것에 있다. 예컨대 숏폼 영상을 보다가 바로 쇼핑을 하고, 식당이나 여행 서비스를 예약하거나 더 궁금한 정보를 블로그에서 확인하는 식의 확장이 가능하다. 또한 네이버웹툰, 스포츠, 뉴스 등 다양한 관심사·콘텐츠와 숏폼 연계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의 핵심 자산인 블로그와 숏폼(클립)의 시너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지난 20년간 네이버에서 3300만 개의 블로그가 개설됐고 28억 건의 글이 게시됐다.블로그에 방대하게 쌓인 데이터와 견고한 팬덤을 숏폼과 연계한다면 빅테크와 차별화되는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네이버에 따르면 2023년에만 126만 개의 블로그가 신규 개설됐다. 블로그 글은 2억 4000만 개 발행됐다. 특히 10~30대 젊은 사용층이 대거 유입된 것은 긍정적인 점으로 평가된다. 네이버 블로그는 MZ세대 사이에서 ‘온라인 일기장’으로 자리잡았다. 실제로 네이버가 2023년 방문 장소를 기록으로 남기는 ‘체크인 챌린지’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약 4개월(5월 22일~9월 29일)간 230만 건이 넘는 참여를 끌어냈는데 1030 참여자가 80%, 신규 참여자가 64%에 달했다.
네이버는 2023년 12월 본인 취향대로 꾸밀 수 있도록 ‘내 블로그 홈’을 새롭게 개편했다.
숏폼을 알리고 싶은 크리에이터를 위한 ‘모먼트 탭’, 공동구매가 주력인 마켓 셀러를 위한 ‘마켓 탭’ 등 블로그를 본인 취향대로 꾸밀 수 있도록 개선했다. 기존 내 블로그 홈에서는 블로그 콘텐츠만 기본으로 노출됐다. 또 숏폼 트렌드에 맞춰 블로그 사용자가 일상에서 기록하고 싶은 순간의 사진과 영상을 숏폼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블로그 모먼트 기능도 추가됐다. 네이버는 모먼트 챌린지를 진행하며 블로그 사용자가 숏폼 콘텐츠를 쉽게 만들고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네이버 내 숏폼 서비스로 확대되며 모먼트의 노출을 확대, 숏폼을 통한 블로그 유입도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숏폼의 인기는 단연 영상 콘텐츠의 주요 소비자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이 10분 미만의 영상을 선호하면서 관련 콘텐츠와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최근 숏폼 사용자의 연령대가 넓어지고 있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한 트렌드다. 팔로워 2120만 명을 보유한 틱톡커 유온 씨는 “30대 이상의 연령대에서 숏폼의 선호도가 떨어졌다기보다는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유튜브 쇼츠를 통해 연령대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면서 “네이버의 경우 커머스와의 연계 측면에서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생각보다 클 수 있다”고 말했다.
틱톡에 따르면 최근 자사 플랫폼 내 정보 공유와 관련한 영상이 많이 소비되고 있다. 가령 ‘생활꿀팁’으로 검색해 나온 영상 조회 수는 1년간 1049%가 올랐고, ‘살림꿀팁’으로 검색한 영상 조회 수는 1만 3015%가 올랐다(2023년 7월 기준).
이는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숏폼 영상의 생산과 소비가 보편화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틱톡 관계자는 “젊은 세대일수록 정보 검색의 트렌드가 텍스트 위주에서 영상 위주로, 롱폼 위주에서 숏폼 위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숏폼 영상 플랫폼은 이제 정보 검색 채널로 등극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 조사에 따르면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 등 숏폼 플랫폼의 1인당 월평균 사용 시간은(2023년 8월 기준) 46시간 29분으로 넷플릭스·웨이브 등 OTT 플랫폼의 1인당 월평균 사용 시간 9시간14분 대비 5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숏폼 플랫폼 대표 주자로 꼽히는 틱톡 앱은 1인당 월평균 사용 시간이 21시간 25분으로 OTT 플랫폼 대표 주자 넷플릭스 앱의 1인당 월평균 사용 시간 7시간 7분 대비 3배나 많았다.
숏폼은 사람들의 영상 소비 습관도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세로영상’의 대중화다. 스마트폰을 가로로 돌릴 필요 없이 위아래로 피드를 넘겨가며 영상을 소비하는 것이다.
세로 영상이 숏폼에 적합한 이유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영상을 세로형 스마트폰에서 보고, 가로로 돌리지 않고 위아래로 빠르게 피드를 넘겨가며 영상을 소비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이러한 영상 시청 패턴이 대중화되는 추세다. 칸타(Kantar)가 진행한 한국인 MZ세대의 광고 효과 조사에 따르면 MZ세대는 광고 콘텐츠라도 가로형보다 세로형 영상에 흥미를 느끼는 비율이 17.65%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숏폼은 2016년 설립된 틱톡을 시작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메타가 2020년 인스타그램을 통해 숏폼 서비스인 ‘릴스’를 내놓았고,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도 2021년 숏폼 서비스 쇼츠를 통해 반격에 나섰다.
영상 소비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다는 점에서 숏폼은 플랫폼들에 매력적인 시장이다. 유튜브의 경우 쇼츠 출시 이후 유튜브 영상 1개를 시청하는 시간은 2분에서 1분으로 감소했지만, 채널별 시청 시간은 2.3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한 시청자가 약 10분 길이의 유튜브 영상을 1편 보는 것보다 60초 분량의 쇼츠를 10번 이상 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숏폼 콘텐츠는 돈이 된다. 틱톡 팔로워 1억 명을 보유한 틱톡커의 연간 소득액이 4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는 추정이 나오기도 했다.
숏폼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누구나 쉽게 크리에이터가 되고 나아가 인플루언서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다. 틱톡이 대중화한 숏폼 영상 콘텐츠는 영상당 길이 가 15초 또는 60초 내외로, 긴 길이의 영상 대비 제작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생성형AI 기술은 숏폼 등 크리에이터 생태계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서비스하는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 메타가 텍스트를 비디오로 만드는 에뮤 비디오(Emu Video)를 2022년 11월 공개했다.
에뮤 비디오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그림을 그려주고, 지시에 맞춰서 그림이 움직인다. 구글이 2022년 텍스트를 동영상으로 바꿔주는 ‘이마겐 비디오’를 출시했는데 메타는 좀 더 자연스러운 서비스를 공개한 것이다. 메타는 자연어로 이미지를 편집해주는 에뮤 에디트도 공개했다. 이미지의 수정사항을 텍스트로 입력하면 그에 맞춰서 AI 가 이미지를 수정해준다. 예를 들어 이미지에서 “개의 그림만 판다로 바꿔줘”라고 이야기하면 AI가 개를 인식해서 판다로바꿔 다시 그려준다. 새로운 기능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향후 탑재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탑재돼 있는 이미지 편집기능에 에뮤 에디트를 추가할 경우 사용자들은 훨씬 편리하게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23년 11월 유튜브는 쇼츠의 새로운 AI 도구인 ‘드림 트랙(Dream Track)’을 공개했다. 드림 트랙은 아티스트 목소리로 최대 30초 길이의 사운드트랙을 생성할 수 있는 도구다. 프롬프트(지시어)에 아이디어를 입력하면 유명 아티스트의 목소리로 숏폼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셈이다.
[황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