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명품 브랜드는 외주 업체에 맡겨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공장에서 생산한 뒤 본국으로 들여와 포장만 다시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가품이 상당수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제품을 빼돌려 암시장에서 ‘SA급 가품’으로 판매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과연 정품과 같은 공장에서 만드는 제품은 정품인가, 가품인가?
조금 헛갈릴 수 있지만 정답은 ‘아니다’이다. 명품과 99.9% 동일한 제품이라도 브랜드 본사가 인증하지 않는다면 이는 가품이다. 정품과 가품은 제품을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브랜드 본사의 통제 아래서 명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면 이는 가품일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이유로 명품을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어디서 샀는지다. 소비자는 명품 브랜드가 발급한 종이 혹은 NFT(대체불가능토큰) 인증서를 제대로 검증할 시간이 없다. 결국 명품을 판매하는 매장의 신뢰도에 따라 구매를 결정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신뢰의 레거시’를 확보한 유통 채널이 바로 백화점, 브랜드 매장 등이었다.
이런 이유로 과거 소비자들은 명품만큼은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없다고 봤다. 중국에서 만약 인증서까지 똑같이 만들어 판매하면 과연 제대로 구별해낼 수 있을까? 이런 의심은 2020년 3월 코로나19 대유행을 기점으로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았다. 정부의 방역 정책에 따라 3년 동안 집안에 틀어박히자 전자상거래를 이용했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굳이 백화점에 가지 않더라도 명품 가방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했다.
이를 디딤돌 삼아 온라인 명품 시장은 존재감을 급속히 넓혔다. 시장 조사 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6년 전 세계 명품 시장 규모는 2540억유로(약 342조원)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온라인으로 구매한 금액은 200억유로(약 27조원)로 8% 수준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2020년 전체 명품 시장은 3120억유로(약 420조원)로 커졌는데 온라인 비율은 12%(370억유로·약 50조원)로 더욱 빠르게 늘었다. 유로모니터는 2025년 온라인 명품 시장은 740억유로(약 100조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불과 5년 사이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전체 명품 시장 가운데 온라인 시장 비율은 19%까지 높아져 명품 5개 가운데 1개는 온라인으로 구매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온라인 명품 시장이 커지는 만큼 가품에 대한 공포가 함께 커졌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명품과 가품을 뒤섞어서 팔아도 구별하기 어렵다. 온라인 쇼핑몰은 아무래도 백화점이나 브랜드 매장이 오랜 기간 구축했던 ‘신뢰의 레거시’가 없다는 맹점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명품 온라인 쇼핑몰들이 가품과의 전쟁에 나서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자리에서는 소비자 신뢰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온라인 명품 쇼핑몰의 전략을 소개하도록 한다.
가장 손쉽게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한 유통 업체는 바로 백화점이다. 국내 대표 백화점 업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소비자들과 맺은 신뢰를 바탕으로 온라인 영역으로 발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롯데온’, 신세계백화점은 ‘쓱닷컴’, 현대백화점은 ‘더현대닷컴’, 갤러리아백화점은 ‘갤러리아몰’을 통해 온라인 쇼핑이 가능하도록 열어뒀다.
이들은 온라인 쇼핑몰 특성상 명품만 취급하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가격 할인 이익은 크지 않은 편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판매 가격이 차이가 클수록 오프라인 매출에 타격이 크기 때문에 온라인 혜택을 크게 제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백화점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은 레거시에 따른 신뢰도가 다른 쇼핑몰보다 높다. 이들은 별도로 명품 보증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는데, 롯데온은 ‘트러스트온’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상품 등록 전에 판매자 검수와 실시간 모니터링 활동을 롯데온이 담당하고, 판매자는 100% 정품을 팔겠다고 동의한 뒤 상품에 ‘트러스트온’ 인증 마크를 붙여 판매한다. 특히 판매자는 정품을 인증할 서류를 제시해야 하므로 가품 유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쓱닷컴은 NFT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21년 도입한 ‘쓱(SSG) 개런티’는 위조와 변조가 불가능한 NFT를 활용해 디지털 보증서를 발급한다. 출시 1년 만에 명품 판매 가운데 30%는 ‘쓱 개런티’를 활용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롯데온과 쓱닷컴은 모두 가품을 구매할 경우 두 배로 보상하는 시스템 또한 운영하고 있다. 더현대닷컴과 갤러리아몰 또한 각자 내규에 따라 정품을 보증하는 절차를 운영하면서 가품이 거래될 가능성을 차단해뒀다.
백화점처럼 신뢰의 레거시를 쌓지 못한 쇼핑몰들은 다양한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먼저 명품 감정 업체들과 업무 제휴 관계를 맺어 소비자 신뢰를 구축하는 전략이다. 명품 플랫폼 1위 발란은 국내 최대 규모로 중고 명품을 유통하는 고이비토와 손을 잡았다. 발란과 고이비토는 지난해 9월 업무협약을 맺었는데, 발란에서 명품을 구매한 소비자는 고이비토 전국 매장 30여 곳에서 ‘정품 감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고이비토는 국내 최대 규모로 중고 명품을 취급하는 매장이다. 고이비토는 200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중고 명품을 유통한 업체다. 고이비토는 중고 명품을 입고하면 감정사가 2~3차례에 걸쳐 진품 여부를 확인하고 유통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22년 동안 쌓은 감정 역량은 국내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업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지난해 발란은 ‘B2B(기업 간 거래)’를 담당하는 자회사 ‘발란 커넥트’를 설립했는데 이를 통해 해외 브랜드 및 병행수입사와 협력해 명품 유통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겠다는 복안을 내놨다.
날로 확장되고 있는 ‘C2C(개인 간 거래)’ 플랫폼 또한 가품 근절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네이버는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정품 여부를 판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네이버는 북미 중고품 거래 플랫폼 1위 포쉬마크를 최종 인수했는데, 전 세계로 ‘C2C’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인 만큼 자체적인 역량을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네이버 손자회사 크림은 리셀 플랫폼 1위를 차지한 만큼 과감한 사업 확장을 추진하고 있어 업계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해 6월 크림은 명품 거래 지원 플랫폼 ‘시크(CHIC)’를 출시했는데 전화번호, 계좌, 신용카드, 신분증, 사기 내용 인증을 모두 거친 사용자만 판매하도록 규제했다. 사기 거래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가품 유통을 방지하겠다는 복안에 따른 조치였다. 만약 소비자가 더욱 철저한 검수를 요구하면 자체 검수센터 ‘시크랩(CHIC Lab)’을 거치도록 했다. 만약 이 서비스를 받고도 가품으로 판명되면 구매 금액의 300%를 보상한다.
한편으로 크림은 인공지능 기술, 컴퓨터단층촬영(CT) 등으로 가품 여부를 스스로 판별하고 있다. 크림은 고이비토 출신 검수 인력을 대폭 확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솔루션의 자회사 엔엑스이에프(NxEF)는 최근 리셀 플랫폼 ‘에어스택(AIRSTACK)’을 출시했는데 네이버와 마찬가지로 자체 검수 인력을 대폭 확충한 것으로 전해졌다.
명품 플랫폼 ‘3강’을 형성하고 있는 트렌비는 구매부터 배송까지 한꺼번에 책임지는 명품 풀필먼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트렌비는 해외 지사와 물류센터를 구축해 직접 운영하는 동시에 자체 검수팀이 해외 매장은 물론 백화점, 아웃렛 매장에서 직접 상품을 조달한다. 주로 병행수입 업체가 입점해 유통하는 플랫폼과 달리 직접 조달하는 제품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트렌비는 자체 감정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가품으로 판명되면 구매 금액의 200%를 보상하고 있다. 아울러 트렌비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가품 검수 데이터를 활용해 인공지능으로 검증하고 40여 명의 내부 검수 인력은 가품 여부를 직접 확인한다.
국내 패션 플랫폼 1위 무신사 또한 직매입을 통해 가품 유통을 막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해외 브랜드 혹은 편집숍에서 직접 매입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소비자가 가품 의혹을 제기하면 브랜드나 검증 기관에 의뢰해 위조품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무역 관련지식재산권보호협회(TIPA)와 해외 브랜드 지식재산권 침해 검사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병행수입을 아예 근본적으로 배제한 쇼핑몰도 최근 주목을 받고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가품 유통을 차단하는 수준을 넘어 가품 자체가 없다는 신뢰를 소비자들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조치다. 캐치패션은 병행수입 제품을 전혀 취급하지 않고 글로벌 파트너사와 직접 연계해 명품을 한국에 판매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대체로 병행수입 제품은 공식적으로 수입하는 제품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판매를 쉽게 키울 수 있지만 캐치패션은 가품 유통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캐치패션은 직접 파트너사와 중개하기 때문에 별도로 창고를 운영하지 않아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에스아이빌리지(S.I.VILLAGE)’는 공식 수입 판권을 보유한 제품만 판매하고 있다. 에스아이빌리지는 이를 통해 확보한 신뢰를 활용해 미술품 거래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또 다른 명품 플랫폼 ‘빅3’로 꼽히는 머스트잇은 가품을 구매한 소비자에게 200% 보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으로 머스트잇은 가품을 유통하는 병행수입 업체들에 강력한 사후 제재를 가해 근본적으로 유통을 근절하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만약 입점 업체들이 가품을 판매할 경우 법무팀을 통해 소송을 진행해 강력한 페널티를 부여할 방침이다. 머스트잇은 소비자가 가품으로 의심된다고 신고하면 한국명품감정원을 통해 감정하거나 특허청에 위조품을 신고해 판별하고 있다.
김규식 매일경제 컨슈머마켓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