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김기용 씨는 강원도 가평에서 드론으로 편의점 물건 배달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배달이 가능한 펜션을 예약했다.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배송 앱으로 가장 많이 판매된다는 ‘해장라면세트’를 주문했다. 상품을 실은 드론은 펜션에 5분 만에 도착했다. 김 씨는 “이렇게 빨리 도착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아이스크림은 일부러 주문에서 뺐다. 아이스크림을 같이 주문했어도 전혀 녹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전반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리테일 테크’가 서서히 자리를 틀고 있다. 그간 새벽배송이나 익일배송 등을 위해 인공지능(AI)을 도입하며 물류망을 고도화하는 것으로 테크를 도입해왔다. 이제는 드론이나 로봇, 무인매장 등 테크를 전면에 배치하면서 소비자와의 접점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생활 밀착형 소비채널의 대표주자인 편의점들이 앞장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편의점 업계는 올해 드론 배송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세븐일레븐은 지난 7월 드론 물류 배송 솔루션·서비스 전문 스타트업 파블로항공과 함께 드론 배송 서비스를 내놨다. 서비스를 위해 경기 가평에 있는 ‘가평수목원2호점’을 드론 배송 특화 매장으로 지정했다. 점포에는 관제 타워를 설치하고, 점포 옥상에는 드론 수직 이착륙에 최적화된 비행장(헬리패드)을 설치했다.
서비스 대상은 인근 펜션에 방문한 여행객이다. 점포 인근에 있는 아도니스펜션이 대상이다. 드론 배송은 매주 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에 이뤄진다. 가평수목원2호점에서 해당 펜션까지는 약 1㎞로 드론 이륙부터 배송까지 3분 정도 걸린다.
드론에는 최대 5㎏까지 물건을 실을 수 있다. 세븐일레븐은 즉석치킨, 삼겹살, 음료 등 일반 상품 70여 개와 여행지에서 많이 찾는 숙취해소제나 냉동삼겹살 등으로 구성된 특별세트 3종을 준비했다. 주문은 협업 중인 파블로항공의 앱 ‘올리버리’로 할 수 있다.
세븐일레븐의 드론 배송 서비스는 비가시권 비행으로,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권역에서 모든 것을 자동 관제해 배송한다. 박진용 파블로항공 드론배송센터장은 “경로 설정부터 착륙지까지 통신이 끊이지 않고 운영돼야 성공적인 비행이 되는 고차원적 배송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최병용 세븐일레븐 DT혁신팀 선임책임은 “점포와 드론 스테이션이 하나로 구성된 드론 배송 전문 편의점 모델이라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라면서 “인근 펜션 단지 사업자와 여행객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실제 소비자 반응은 좋다. 현재 드론 배송 서비스는 주말의 경우 평균 10건 내외의 배송 주문이 발생하고, 평일 기준으로는 일평균 5건이 이뤄진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해장라면세트 주문이 가장 많이 들어오고, 치킨류도 많이 판매된다”며 “현재는 펜션 한 곳에서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11월 이후에는 주변 3~4군데를 더 확보해서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드론 배송 서비스는 무료다. 상품 가격만 결제하면 된다. 현재 드론을 이용한 배달 사업의 사례가 없어 안정성 검증이 완료될 때까지 관련 사업자 등록이 나오지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파블로항공과 함께 실증사업으로 데이터를 축적해 가이드라인을 제작한다는 방침이다.
세븐일레븐보다 한발 앞서 드론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곳은 CU다. BGF리테일의 CU는 지난 7월 초 강원도 영월군에 위치한 ‘CU영월주공점’을 첫 번째 드론 배달 서비스 운영점으로 선정했다. 점포에서 3.6㎞ 거리에 위치한 오아시스글램핑장을 대상으로 배달을 시작했다. 이용 가능 시간은 글램핑장 수요가 급증하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배달료는 무료이며 물건의 최대 탑재 중량은 5㎏다. 드론 전용 배달 애플리케이션인 ‘영월드로’를 통해 상품을 주문하면 평균 10분 이내에 제품을 가져다준다는 설명이다.
CU는 캠핑장에서 매출이 높은 라면과 햇반, 생수, 간식거리 등으로 ▲라면한끼 세트 ▲커피·디저트 세트 ▲글램핑분식 세트 ▲글램핑과자 세트를 기획해 선보였다. 한 달여간 진행됐던 드론 배송은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CU 관계자는 “7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 1차 운행을 마쳤고, 드론 배송 업체 등 재정비 이후 내년에 2차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편의점 업계가 드론 배송의 첫발을 뗐지만, 완벽한 상용화까지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높다. 편의점 업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배송 드론은 1대당 가격이 8000만원 수준이라, 운용 대수를 늘리기 쉽지 않다. 고층 건물이나 전선 등 장애물이 산적해 있는 지역에서 안전하게 배송할 만한 기술적인 수준도 완비되지 못했다. 또 각종 규제와 조건들로 드론 배송의 어려움은 가중된 상황이다. 드론 무게가 25㎏을 초과하거나 고도 150m 이상 비행할 때 비행 승인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관련 규정이 깐깐하다.
세븐일레븐은 자율주행 로봇 배달 플랫폼 뉴빌리티와 지난 9월 말부터 로봇 배달 서비스 2차 실증을 진행 중이다. 서울 방배1동 일대가 서비스 대상 지역으로, 운영 반경은 800m다. 세븐일레븐 점포 3곳(방배점, 방배역점, 방배서리풀점)을 선정하고, 배달 로봇 ‘뉴비’를 통해 근거리 배달 시범 서비스를 펼쳐보는 것이다. 오는 12월까지 총 3달간 진행하는 실증기간 동안 배달료 없이 서비스가 제공된다. 최대 25㎏ 물건을 실을 수 있는 뉴비의 최고 속력은 초당 2m다. 빨리 걷는 사람의 주행 속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경사로를 포함해 평지에서의 이동은 쉽지만, 계단을 넘거나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도착 지점에서 물건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뉴비 뚜껑에 있는 QR코드를 인식시켜야 한다. 도난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고, QR코드를 입력해야 로봇의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방식이다.
세븐일레븐 측은 “서울 방배동은 배달 수요가 꾸준하면서,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 도심에서의 로봇 주행 환경을 테스트할 최적의 거점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앞서 세븐일레븐은 자율주행 로봇을 활용한 도심지 편의점 로봇배달 서비스 모델 구축을 위해 뉴빌리티 측과 2021년 8월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11월 세븐일레븐 서초아이파크점에서 배달 로봇 ‘뉴비’를 활용해 1차 테스트 운영에 나섰다.
뉴빌리티는 롯데벤처스의 스타트업 투자 우수기업으로 자율주행 로봇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유망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카메라 기반 자율주행 시스템과 센서 기술들을 융합한 뉴비는 자율주행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위치 추적과 장애물 인식, 회피가 가능해 복잡한 도심 복판에서나 눈비가 내리는 기상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자율주행 배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뉴비는 연내 국내 주요 골프장에 200여 대 도입을 앞두고 있다.
GS25는 실내에서의 로봇 배달 서비스를 2020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에 위치한 GS25 LG사이언스점에서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후 GS타워에 위치한 GS25 점포로도 서비스를 확장했다. GS25 앱을 통해 편의점 상품을 주문하면 점포 근무자는 로봇에 상품을 싣고 주문자 연락처와 목적지만 입력하면 된다. 그 이후에는 로봇이 알아서 배송하는 방식이다. 배송 로봇은 1회 최대 15㎏ 중량의 상품을 세 곳까지 배달할 수 있도록 했다.
CU는 두 회사보다는 늦었지만, 오는 9월부터 편의점 로봇 배송 시범 사업에 나선다. 협력사는 현대자동차의 사내 스타트업 MOBINN, 나이스정보통신 등이다. 특히 로봇 개발사인 MOBINN은 현대자동차 그룹에서 육성하는 사내 스타트업으로, 장애물 극복 자율주행 로봇 개발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로봇 배송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인근의 임직원 아파트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배송 준비는 인접 점포인 CU남양시티점에서 맡는다. 출발지부터 도착지까지 배달 로봇의 실내외 주행 능력을 확인한 뒤 CU의 멤버십 앱 포켓CU의 배달주문과 연동한다는 계획이다.
편의점 GS25는 올해 6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미래형 편의점 ‘디엑스 랩(DX LAB)’점을 열었다. 이곳은 DX(디지털 경험)를 연구한다는 콘셉트로 안면인식 결제 솔루션부터 인공지능(AI) 점포 이상 감지 시스템, 무인 운영점 방범 솔루션, 영상 인식 디지털 사이니지, 디지털 미디어월, 주류 무인 판매기 등 19개 기술을 적용했다. 약 190㎡ 넓이의 내부에는 각종 기술과 연계된 21개 스마트카메라와 200여 개 센서가 사용됐다.
이곳은 낮에는 일반 매장처럼 직원이 상주하지만,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는 무인매장으로 운영된다. 무인매장으로 운영될 때는 방범 솔루션이 적용돼 이상 징후를 감지할 수 있다. 고객이 매장 안에서 쓰러지거나, 갑자기 진열장에 접근하는 등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포착한다.
DX 랩에는 주류 전문 자판기도 구비해, 직원이 없는 야간에도 술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주류 전문 자판기는 카카오 지갑 QR과 GS25 미니바, 모바일 신분증을 통해 성인 인증을 하면 된다. 안면인식으로 생체 인증 결제도 된다. GS리테일은 지난해 말 신한은행과 협력해 얼굴 인식으로만 결제되는 ‘신한페이스페이(Face Pay)’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체크카드나 신용카드 없이도 얼굴인식으로만 결제가 마무리된다.
문을 연 지 1년이 지난 ‘이마트24 스마트 코엑스점’은 요즘 종종 볼 수 있는 무인편의점과는 또 다르다. 이곳에서는 물건을 집어서 나가기만 하면 자동으로 결제가 된다. 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만든 무인매장 ‘아마존고’처럼 걸어서 나가기만 하면 자동으로 결제가 완료되도록 ‘저스트 픽앤고(Just Pick&Go)’ 기술을 적용했다. 매장을 이용하려는 고객들은 매장 앞에 설치된 키오스크로 미리 신용카드 등 인증을 통해 QR코드를 배부받는다. 이후 QR코드로 입장하고 매장에서 물건을 집어들고 나오면 자신이 인증한 결제 카드로 자동으로 계산된다. 이때 천장에 달린 20대가 넘는 인공지능 카메라와 무게 변화를 감지해내는 스마트 선반이 점원 역할을 한다.
카메라와 무게 변화를 통해 고객이 집어낸 물건을 분별해낸다. 고객이 갑자기 쓰러지거나 기물파손 등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매장 관리자나 관제센터에 알림을 발송하는 기능도 있다. 이마트24 관계자는 “2023년까지 시범 운영하고, 향후 한국형 ‘완전스마트매장’을 구현할 수 있도록 기술 표준화를 이룩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홍성용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