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배터리 초격차로 시장 주도권” 선언, 상반기 R&D 투자 역대 최대 “LG화학 넘어선다”
노현 기자
입력 : 2020.10.30 16:07:25
삼성SDI가 ‘배터리 초격차’를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해 업계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1위 업체인 LG화학보다 많은 연구·개발(R&D) 비용을 투입, 전고체 배터리와 하이니켈 양극재, 실리콘 소재 음극재 등 다방면에 걸쳐 차별화된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차세대는 물론 차차세대 배터리까지 염두에 두고 기술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한 전영현 사장의 ‘기술경영’ 전략에 따른 행보라는 분석이다.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올 상반기 총 4092억원의 R&D 비용을 집행했다.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현재 추세라면 올해 연간 R&D 비용 집행 규모는 8000억원을 돌파, 연간 기준 최대치를 갈아치울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DI의 R&D 투자는 2018년 6040억원에서 지난해 7126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8000억원 돌파가 확실시되는 등 3년 연속 1000억원 안팎 규모로 증가하고 있다. 2018년 6.59%였던 매출액 대비 R&D 지출 비율도 올 상반기 8.26%로 급등했다.
업계에서는 올 상반기 삼성SDI가 지출한 배터리 관련 R&D 비용이 업계 1위인 LG화학보다 많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LG화학은 올 상반기 삼성SDI보다 많은 5434억원을 R&D 비용으로 집행했지만, 배터리 외에도 석유화학·첨단소재·생명과학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만큼 배터리 부문 투자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업계에 따르면 LG화학 R&D 투자에서 배터리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35~40%인 반면 삼성SDI는 8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추산에 따르면 올 상반기 양사의 배터리 부문 R&D 지출 규모는 1000억원 이상 차이가 났을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는 사업영역이 에너지솔루션(배터리)과 전자재료 둘뿐으로 사업구조가 단순한 데다, 배터리 부문이 총 매출의 75%를 책임지는 등 배터리 사업 비중도 압도적이기 때문에 R&D 투자도 배터리 부문에 집중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게임 체인저’ 될 기술에 집중 투자
삼성SDI의 R&D 투자는 차세대 배터리 소재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하이니켈 NCA 양극재와 독자 음극재 기술인 ‘실리콘 탄소 나노복합재료(SCN)’가 대표적이다. NCA 양극재는 니켈·코발트·알루미늄을 혼합해 만든다. 양극재의 니켈 비중을 높이면 배터리 용량이 늘어나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지만, 코발트 등 다른 원재료 비중이 줄어들면 안정성과 출력이 낮아지기 때문에 니켈 함량을 높이는 데는 기술적인 한계점이 있다. 때문에 현재 주로 쓰이는 NCM(니켈·코발트·망간) 양극재의 니켈 함유량은 60% 안팎이다. 삼성SDI는 이 같은 한계를 돌파하는 데 가장 앞장서 있다. 내년 출시될 ‘젠5(5세대)’ 전기차 배터리에 니켈 함량 88%의 하이니켈 NCA 양극재를 적용한다. 니켈 함량이 경쟁사들의 차세대 배터리용 양극재(80~85%)보다 높다. 삼성SDI는 향후 양극재의 니켈 함량을 90%대 중반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삼성SDI 관계자는 “원래 NCM 양극재를 사용했으나 안전성 측면에서 망간보다 알루미늄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하에 NCA 양극재를 개발해 왔다”며 “전동 공구용 배터리 개발을 통해 이미 확보한 하이니켈 NCA 양극재 양산 기술을 전기차 배터리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를 통해 한 번 충전에 600㎞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SCN은 실리콘을 활용한 음극재다. 실리콘은 기존 음극재 소재인 흑연 대비 훨씬 많은 리튬 이온을 저장할 수 있어 배터리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충전 시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성질 때문에 충·방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입자가 부서지는 등 배터리 성능이 급격히 감소되는 단점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음극재 제조 과정에서 첨가제로 소량 사용되는 등 용도가 제한적이다. 삼성SDI의 SCN은 나노화·복합화 기술을 통해 이 같은 약점을 극복했다. 실리콘을 머리카락 두께 수천 분의 1 크기로 잘게 쪼개 흑연과 혼합한 뒤 별도 소성 과정을 거쳐 실리콘과 흑연을 하나의 물질처럼 복합화함으로써 용량 확대라는 실리콘 소재의 장점은 살리면서도 부피 팽창은 억제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란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을 적용해 기존 배터리에 비해 안전성을 대폭 향상시킨 것으로, 특히 폭발·화재의 위험성이 거의 없어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삼성SDI는 섭씨 150도 고온에도 견디는 배터리 분리막 기술도 개발했다.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배터리 분리막 표면을 ‘세라믹 코팅’하는 동시에 ‘바인더 코팅’까지 해주는 ‘MCS(Multi-layer Coated Separator)’ 기술을 적용한 고내열성 접착 분리막을 개발, 내년 중 양산에 나선다. 분리막 표면을 코팅하면 화재 위험을 줄일 수 있는데, 이 코팅에 접착력을 더하면 내열 기능이 한결 좋아지는 원리를 응용했다.
기존 분리막 제품이 130도까지 열에 견디는 것에 비해 신제품은 150도까지 버틸 수 있다. 이를 통해 배터리 화재 위험을 눈에 띄게 낮출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현대차를 비롯해 GM과 포드, BMW 등 여러 글로벌 업체들의 전기차에서 원인 불명의 화재가 잇따르고 있는 만큼 신제품을 통해 글로벌 2차 전지 시장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삼성SDI의 기대다.
2차 전지 배터리 분리막은 양극, 음극, 전해질과 함께 2차 전지 배터리의 ‘4대 소재’ 중 하나다. 절연 소재의 얇은 막인 분리막은 배터리셀 내부에서 양극과 음극이 접촉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 분리막이 제대로 기능해야 화재도 나지 않는다.
삼성SDI는 이 밖에 스마트 팩토리 구축 등 설비 경쟁력 강화에도 집중하고 있다. 센서와 인공지능(AI)이 공정을 컨트롤하고, 무인운반차가 제품을 운반하는 무인화·자동화 배터리 생산 라인을 천안 사업장에 구축했으며 헝가리법인 등 해외사업장으로 확대 중이다. 삼성SDI는 스마트 팩토리를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법인에서도 표준화된 성능과 품질의 제품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R&D 투자 확대는 전영현 사장의 기술경영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전 사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고객을 리딩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며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같은 기술력 확보를 바탕으로 삼성SDI는 생산 능력 확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헝가리 괴드에 있는 배터리 공장의 생산 능력을 2배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 최근 라인 증설 작업에도 착수했다.
▶헝가리 괴드 공장 라인 증설… 배터리 유럽 생산 2배 이상으로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최근 헝가리 공장 스택 라인 증설에 착수했다. 헝가리 정부는 최근 이와 관련 공장 증설에 대한 인허가 내용을 공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현재 4개 라인이 가동 중인 헝가리 공장에 신공법을 적용, 총 4개 라인을 신규로 구축할 계획이다. 이번 증설 공사는 이 가운데 2개 라인이 대상이다. 완공 시 약 10기가와트시(GWh)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 총 생산규모(20GWh)의 절반에 해당한다. 4개 라인 증설이 완료되면 지난해 총 생산량만큼의 생산능력이 추가되는 셈이다.
스택 라인은 배터리 주요 소재인 양극재, 음극, 분리막을 층층이 쌓아 배터리 내부 공간 효율을 향상시킨 스택 공법을 적용한 라인이다. 소재를 돌돌 말아 배터리에 넣는 기존의 와인딩 공법에 비해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대폭 높일 수 있다. 1공장의 기존 4개 라인은 와인딩 공법이 적용돼 있다.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계에서 삼성SDI는 그동안 LG화학, SK이노베이션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여왔다. 2017년 5월 헝가리 공장 준공 이후 대규모 투자나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사 설립 등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공격적인 투자와 수주로 일본 파나소닉과 중국 CATL을 제치고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선 LG화학, 후발 주자이지만 미국 유럽 중국 등 전 세계에 셀 생산기지를 확보하며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는 SK이노베이션과는 다른 행보였다.
삼성SDI는 헝가리 공장 증설을 계기로 배터리 생산 능력 확대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삼성SDI는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를 20GWh 생산했고 올해 생산량은 30GWh를 예상하고 있다. 삼성SDI는 향후 5년간 4배 이상 전기차 배터리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1GWh는 1번 충전하면 380㎞를 주행하는 전기차 1만6600대를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이다.
삼성SDI의 실적 전망도 밝다. 그동안 적자였던 중대형 전지부문이 하반기에는 흑자 전환이 유력시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가 주력인 중대형 전지 부문은 2008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계속해서 적자였지만 전기차 시대의 본격적인 개화와 함께 급성장, 3분기 영업손실을 크게 줄이는 데 이어 4분기에는 흑자전환이 예상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삼성SDI의 올 3분기 실적 전망치를 매출 2조9000억원, 영업이익 2198억원으로 제시했다. 전기차 배터리를 비롯한 중대형 전지 부문 실적 개선으로 영업이익이 전 분기(1038억원) 대비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전기차 및 재생에너지 글로벌 수요 강세로 전기차 부문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부문 매출이 올해 연간 기준으로 각각 전년 대비 48%, 12%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중대형 전지 부문이 흑자 구조로 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