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미국의 중국 반도체 산업 때리기 영향은? 메모리 반도체 시황 악영향, 파운드리는 반사이익 기대
황순민 기자
입력 : 2020.10.30 15:38:10
미국이 중국 통신·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 화웨이에 이어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SMIC가 제재 대상에 포함되는 등 미국의 중국 ‘반도체 때리기’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매출 타격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3분기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영업이익이 12조원을 넘어서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했지만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펜트업 수요 소진 및 재확산 가능성, 미국의 중국 반도체 제재 여파와 메모리 업황 악화 등 전 사업 부문에서 불확실성이 여전해 향후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빅 바이어인 화웨이 공급이 막힌 상태에서 주 수익원이었던 서버용 D램 가격 하락까지 본격화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연말부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11월 대선 이후 미국 정부가 반도체 제재를 풀어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최소 내년 1분기까지 반도체 기업들에게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5월 국가 안보를 이유로 화웨이를 블랙리스트로 지정해 미국 기업들이 수출 등 거래를 하려면 사전 승인을 얻도록 했다.
화웨이 장비가 중국 당국에 의한 스파이 행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따라 미 상무부는 지난 9월 15일부터 미국 소프트웨어나 장비·기술을 활용한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할 경우 미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미국 기업뿐 아니라 한국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반도체 업체 TSMC와 매크로닉스 등도 미 정부에 화웨이에 제품 판매 허가를 위한 자격을 요청한 상태다. 사실상 미국 기술이 들어가지 않는 반도체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차단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가 반도체가 생산되는 클린룸에서 모니터를 보며 생산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미국의 中 반도체 때리기 장기화 조짐… 삼성전자·SK하이닉스 악영향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현재까지 미국 정부로부터 화웨이에 납품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받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15일 발효된 새로운 제재로 기존의 라이선스가 무효화된 사실을 공개하면서 “정부에 새로운(new) 라이선스를 신청했지만 언제 실현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이 자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의 라이선스를 불허한 만큼 경쟁업체인 한국 기업들에게 라이선스를 내줄 리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과 중국 매체 등에 따르면 미국 종합 반도체 업체 인텔과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업체 AMD는 중국 화웨이에 일부 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권한을 취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중국의 ‘강대강’ 대치에 따라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에 어려움을 겪던 한국 기업들의 판로도 트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였다. 다만 이는 마이크론이나 국내 기업이 하지 않는 서버와 PC용 중앙처리장치(CPU)로 제한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인텔 대변인은 지난 9월 22일 수출 승인 사실을 공개했는데, 미 정부가 화웨이의 반도체 공급망 제재를 시작한 이후 수출 허가 라이선스를 취득한 첫 사례였다. 중국 중앙(CC)TV 영어 채널인 CGTN은 중국 현지 매체를 인용해 이번 허가에 따라 인텔은 화웨이의 노트북 컴퓨터 제조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AMD도 스마트폰이 아닌 노트북용 프로세서 공급 수출이 허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화웨이 거래 제재를 받고 있었는데, 보안 이슈와 관계없는 노트북 제조용 부품에 대한 수출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업체들이 신청한 스마트폰용 반도체와 관련한 움직임은 없었고, 미국 측에서 이를 심사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 등에 따르면 세계 3위 D램 생산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지난 9월 30일 실적발표에서 화웨이 제재로 인해 다음 분기(9~11월)에 실적이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또 마이크론은 화웨이를 대체할 다른 스마트폰 판매업체를 찾는 데 내년 2월까지 약 6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업계 일각에서는 메모리 반도체가 주력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최소 올해 4분기에서 내년 1분기까지는 화웨이 제재로 인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화웨이가 미리 사들인 반도체 재고 물량도 이미 최소 6개월 치에 달하는 데다 오포, 비보, 샤오미 등 중국의 대체 매출처로 공급이 전환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삼성전자 3분기 어닝 서프라이즈에도 불확실성은 여전
서버용 D램 수요 감소로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점도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소다. 삼성전자 실적을 이끄는 반도체 사업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비대면) 수요로 PC 수요가 견조한 호조를 보이면서 3분기 예상보다 좋은 실적을 거뒀지만 4분기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4분기에는 반도체 기업들의 주요 수익원인 서버용 D램을 비롯해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 통신·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반도체 시장 전반에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9월 PC D램(DDR4 8Gb) 고정 거래 가격은 평균 3.13달러로 전월과 동일한 수준을 유지했다. 지난 7월 5.44% 하락한 이후 두 달 연속 보합세다. D램익스체인지는 “D램 시장 전체가 공급과잉 상태에 있어 가격이 상승할 여력이 없다”며 “오는 4분기에 PC D램 가격이 3분기보다 10% 이상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라 상반기 급증했던 수요가 둔화세를 보이면서 ‘공급과잉’ 상태에 접어들었고, 미국 제재 발효 전에 D램 재고를 쌓아두려는 화웨이의 ‘입도선매’가 9월 중순으로 끝남에 따라 4분기 D램 가격이 추가 하락할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디램익스체인지는 지난달 D램 현물거래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한 것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 공급제한 제재를 받은 중국 화웨이가 일시적으로 재고 확보를 위해 구입을 늘린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올 4분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바닥을 찍고 내년 초가 되어야 글로벌 서버 업체들의 수요가 서서히 회복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반도체 기업들의 주요 수익원인 서버용 D램 가격이 4분기 대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4분기 서버 D램 하락 폭을 기존 10~15%에서 13~18%로 추가 조정했다.
서버용 D램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북미 데이터센터 고객사의 수요 증가로 상승세를 지속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을 주도한 품목이다. 삼성전자의 주요 수익원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서버 D램 고객사들의 재고 소진이 이뤄지는 4분기 이후부터 서버 D램의 신규 주문이 증가세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내년 1분기 보합을 거쳐 상반기나 돼야 가격 반등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키움증권은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은 9조1000억원 정도로 예상한다”며 “반도체는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하락으로, 모바일은 애플 등 경쟁사 신제품 출시에 따른 마케팅 비용 증가로 수익이 다소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1라인 모습.
▶中 SMIC 제재받을지 관심집중
미국은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를 블랙리스트 대상에 추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리스트에 추가되면 SMIC에 반도체 기술과 장비를 수출하기 위해선 미국 행정부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제재가 현실화할 경우 파운드리 등 일부 부문에서는 국내 업체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미국이 화웨이에 이어 글로벌 5위의 파운드리 업체인 SMIC를 제재 대상에 포함하면서 이 물량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SMIC는 화웨이(매출비중 18.7%) 비중이 높고 퀄컴(8.6%), 브로드컴(7.5%), ON세미(3.5%), 코보(2%), 사이프러스(1.2%) 등도 주요 고객이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가격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4분기 삼성전자의 실적 방어를 위해서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스템LSI 등 비메모리 반도체에서의 실적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의 굵직한 신규 수주가 늘어나는 점은 고무적이다. 국내 파운드리 전문 업체인 DB하이텍의 경우 주력인 8인치 파운드리 수요 증가로 호황을 맞았는데 여기에 미국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중국 파운드리 1위 업체 SMIC에 대한 제재가 현실화 할 경우 반사이익이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SMIC 제재가 현실화할 경우 중국 내수 생산이 어려워지는 이미지센서, 지문인식 센서 등의 품목들이 DB하이텍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SMIC는 현재 3개 팹을 보유하고 있는데 DB하이텍과 제품 포트폴리오가 유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재 조치가 현실화되면 DB하이텍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반도체 굴기 동력 상실하나
중장기적으로는 이번 제재로 인해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동력을 상실하면서 한국과의 반도체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4나노 공정을 주력으로 하는 SMIC는 14나노 이하 제품을 양산할 수 있는 중국 내 유일한 기업이다.
그동안 SMIC는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으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나 대만 TSMC와의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미세공정 기술 확보에 힘써왔다. 그러나 향후 미세공정 기술 확보가 어려워지면 이들과의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SMIC는 삼성전자, TSMC 등 파운드리 시장 선두 기업들과의 점유율 격차가 크지만 ‘반도체 자립’을 목표로 하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상징성이 큰 대표 반도체 기업이다. 지난 7월에는 ‘중국의 나스닥’으로 불리는 상하이증권거래소 과학혁신판(커촹반) 2차 상장을 통해 9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수혈하기도 했다. 중국은 초미세 공정 기술 확보에 속도를 올려 첨단 반도체의 설계부터 생산까지 독립을 꾀했지만 미국 제재로 이 같은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