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다시 고개 드는 PC·콘솔 게임 인기… 마우스, 키보드, 패드로 조작 커다란 화면 ‘모바일’과는 다른 맛
이용익 기자
입력 : 2020.08.28 15:19:50
수정 : 2020.08.28 15:20:24
지난 수년 동안 한국 게임업계의 화두는 단연코 ‘모바일’이었다. 최근까지도 이러한 흐름은 마찬가지다. 과거의 인기 게임 IP(지식 재산권)를 소환한 뒤 모바일 버전으로 재탄생시키는 트렌드는 여전히 유효하다.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짬을 내서 게임을 즐기려는 유저 입장에서는 스마트폰 이상으로 접근성이 좋은 플랫폼이 없고, 게임사 입장에서도 다른 플랫폼에 비해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 제작에 이미 대다수의 개발자들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정작 접근성이라는 커다란 장점을 제외하고 나면 모바일 게임을 가장 우선적으로 즐기고 싶어 하는 유저가 많을지는 의문이다. 일단 모바일 환경에서는 게임을 표출하는 화면이 작고,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방식으로는 정교한 조작에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유저의 조작을 줄이고 아예 알아서 진행되는 ‘자동 모드’를 택한 게임들까지 등장한 판국이다. 결국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주어진다면 유저들 대다수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이용해 조작하는 PC 게임과 커다란 TV 화면을 보면서 패드를 들고 ‘손맛’을 느끼는 콘솔 게임에도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리고 올해 들어 한국 게임업계는 코로나19라는 이름의 새로운 상황을 맞이했다. 과연 그동안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게임 유저들에게 다시 PC와 콘솔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을까. 게임을 개발하는 입장에 있는 게임사들은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PC 게임 강국의 자존심 보여줘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7일 발간한 ‘2020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게임이용률은 2017년 70.3%에서 2018년 67.2%로 60%대로 떨어졌고, 2019년에는 65.7%로 지난 2년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이 수치는 다시 70%대로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직접 게임장을 방문해야 하는 아케이드 게임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바일과 PC, 콘솔을 가리지 않고 이용 시간과 사용 금액도 늘어났다.
이와 함께 2분기 국내 PC 시장도 50% 가까이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IDC에 따르면 2분기 국내 PC 출하량은 145만 대로 전년 대비 46.3% 성장했다. 노트북 79만 대, 데스크톱 66만 대에 달한다. 물론 이를 다 게임 수요라고만 볼 수는 없다. 재택근무와 4월부터 시작된 초·중·고 온라인 수업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동영상으로 수업을 듣거나 간단한 업무를 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정말 게임을 위해 만드는 게이밍 조립 PC 매출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그만큼 PC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실제로 인터파크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5월 10일~8월 9일) 게이밍 조립 PC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80%나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PC방에 가지 않고, 야외 활동도 줄어든 만큼 아낀 용돈으로 PC를 직접 맞춰서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글로벌 3D 게임 개발 플랫폼 제작 기업인 유니티도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PC·콘솔 게임은 46%, 모바일 게임은 17% 일간 이용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애초에 한국은 PC방 문화의 영향으로 글로벌 PC 게임 시장에서 13.9% 점유율을 차지하며 중국에 이은 2위 국가인 만큼 기회만 주어지면 PC 게임을 열정적으로 즐기는 셈이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라면 이들이 즐기는 게임 자체는 외산이 많다는 점이다. PC방 양대 관리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피카·게토 계열 집계에 따르면 지난 7월 국내 PC방 점유율 상위 10개 게임 중 중국 텐센트가 가지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와 미국 게임사인 블리자드의 점유율은 58%로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전반적으로 게이머 수준이 높고 피드백이 활발해 해외 게임사 입장에서도 한국은 최적의 테스트베드로도 꼽히곤 한다. 국내 게임사 중에서는 넥슨과 크래프톤 자회사인 펍지, 엔씨소프트 정도가 27%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니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물론 PC 기반의 게임을 만드는 작업은 모바일 게임에 비해 개발비가 훨씬 많이 들고, 투입해야 하는 인력도 많아서 게임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잘 만든 PC 게임 하나는 열 모바일 게임 부럽지 않은 수익을 보장해줄 수도 있다. 모바일 게임은 구글과 애플 등 유저들이 모바일 게임을 다운로드 받고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애플리케이션 마켓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가 매출의 30%에 달한다는 커다란 걸림돌이 존재하는 데다가 일반적으로 게임 자체가 인기를 끌면서 유지할 수 있는 수명도 짧다. 또한 국내에서 PC 온라인 게임의 결제한도 규제도 완화된 상황이고, 세계적으로도 PC 온라인 게임은 굳건히 일정 수준의 유저와 매출을 유지하고 있기에 안정적인 시장이기도 하다.
그동안 스마일게이트가 ‘로스트아크’를 내놓는 등 몇 년에 한 번씩 간간이 PC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던 국내 게임사들도 최근에는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PC 게임 신작을 시장에 대거 내놓을 계획이다. ‘리니지2M’을 PC에서도 모바일과 동시에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이밍 플랫폼 ‘퍼플’을 도입하기도 했던 엔씨소프트는 PC와 콘솔을 아우르는 음악 게임 ‘퓨저’를 하반기 북미, 유럽 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넥슨은 코그가 만든 듀얼 액션 온라인 게임 ‘커츠펠’을 한국 시장에 선보이고, 서든어택 개발사로 유명한 넥슨 자회사 넥슨지티 또한 PC 온라인 FPS 게임을 준비 중이다.
비단 3N 외에도 신작들은 더 나올 예정이다. PC 온라인 게임 ‘검은사막’을 현재 전 세계 150개국에서 2000만 명이 즐기는 글로벌 게임으로 성공시키며 이름을 알린 펄어비스는 지난해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2019’에서 ‘섀도우 아레나’ ‘플랜8’ ‘도깨비’ ‘붉은사막’ 등 신작 4종을 모두 PC·콘솔용으로 만들어 선보이며 기대감을 높였다. 또 올해 하반기 상장을 앞둬 ‘IPO 최대어’로 불리고 있는 카카오게임즈와 크래프톤 역시 빠질 수 없다. 크래프톤에서 개발한 PC 온라인 게임 ‘엘리온’을 카카오게임즈가 퍼블리싱할 예정이다. 퍼블리싱에 일가견이 있지만 자체 IP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았던 카카오게임즈는 최근 인수한 엑스엘게임즈를 통해 또 다른 MMORPG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에 어떤 게임사가 유저들의 선택을 받는 PC 게임을 만들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도전이 있어야 성공도 나오는 법이다. 한 국내 게임사 관계자는 “모바일 시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 인기 IP를 바탕으로 한 게임들이 꽉 잡고 있는 상황인 데다가 수수료 부담도 있으니 PC에서도 도전은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카카오게임즈는 9월 기업공개(IPO)를 위해 해외 투자설명회를 실시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콘솔 불모지’ 이제는 벗어날까
물론 각 유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PC가 한국 게임 유저들의 고향 같은, 동네 친구 같은 플랫폼이라면 콘솔은 아직은 서먹함이 남아있는 친구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PC방 문화와 스마트폰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하다보니 애초에 게임 유저들이 굳이 콘솔까지 진출할 여지가 적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 인구 대부분이 몰려 사는 구조이다보니 마음 편히 콘솔 게임을 즐길 만한 환경도 아니고, 또한 콘솔 게임기 가격대가 그리 저렴하지 않은데 게임 타이틀을 살 때마다 추가 지출까지 해야 하니 가족들의 눈치마저 보인다.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도 그렇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행한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한국 게임 시장에서 콘솔은 지난 2018년 기준 5285억원으로 전체 게임 시장의 3.7%에 그친다. 같은 해 글로벌 콘솔 시장 규모는 489억6800만달러(약 58조2000억원)에 달해 모바일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플랫폼이지만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남의 이야기다. 오죽하면 소니인터렉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SIEK)는 플레이스테이션4 광고를 만들면서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문구로 콘솔을 사고 싶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게임 유저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 안을 살펴보면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도 일어나는 모양새다. 2018년 한국 콘솔 시장 5285억원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어보이지만 불과 한 해 전인 2017년에는 3734억원이었다. 무려 41.5%나 성장한 것이다. 2017년 12월에 발매된 신형 콘솔 ‘닌텐도 스위치’가 인기를 끌었고, ‘배틀그라운드’ 등 인기 게임이 콘솔 타이틀로도 출시되며 성장세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모든 사람들이 집에 틀어박힌 올해에 이르러 분명한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바로 ‘동물의 숲’ 열풍이다. 올해 3월 20일 첫 출시한 ‘동물의 숲’ 타이틀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품절 사태를 일으키며 가격이 뛰어오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마트가 코로나19 공포가 극에 달했던 3월에서 4월에 걸쳐 조사한 결과 닌텐도 스위치 본체, 타이틀 매출이 각각 226.7%, 222.8% 급증했고 조이콘 등 스위치 보조 기기도 178%나 늘었을 정도다.
새로운 버전의 콘솔 게임기들이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호재로 꼽힌다. 닌텐도 스위치와 함께 3대 콘솔 게임기로 꼽히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과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원이 모두 올해 말 후속 기종 출시를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콘솔 게임 시장은 콘솔 게임기 시장과 함께 움직이는 양상을 보여 왔다. 새로운 게임기가 등장해 인기를 끌면 콘솔 게임 매출액이 그와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게임기 판매가 시들해지면 게임도 안 팔리는 식이다. 올해 말 관련기기들의 출시가 예정됐다는 사실은 콘솔 게임 전반의 매출을 책임지는 보증 수표다. 여기에 더해 게임 산업 전반에서 콘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기술적 여건이 계속해서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유니티와 에픽게임즈 등 게임 엔진을 만드는 회사들은 콘솔 게임 개발의 시간을 단축시켜줄 수 있는 신형 엔진을 속속 출시하고 있고, 지난해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5G(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역시 든든한 지원군이다. 빠른 통신망을 기반으로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이용한 스트리밍 서비스도 콘솔 게임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콘솔 게임은 주로 해외 게임사들의 전유물에 가까웠고 펍지의 ‘배틀그라운드’,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등 소수의 게임만 성공을 거뒀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국내 게임사들이 슬슬 콘솔에 관심을 두는 분위기다. 국내 시장이 커져가는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 진출을 하기 위해서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는 판단이다.
최근 라인게임즈가 만든 ‘베리드 스타즈’는 국내 콘솔 시장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킨 게임으로 꼽힌다. 지난 7월 30일 출시한 뒤 한정판과 일반판 초도물량이 모두 매진되며 이례적인 국내 게임 인기라는 평을 받았다. 이에 힘을 얻은 라인게임즈는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개발 중인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도 2022년 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3월 ‘블레스’ IP를 활용한 네오위즈의 ‘블레스 언리쉬드’도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보다 덩치가 큰 회사들도 콘솔에 진입 시도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과거 PC에서 모바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할 때와 마찬가지로 기존 인기 IP를 우선 사용하는 전략이 보인다. 넥슨이 만드는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는 ‘카트라이더’를 기반으로 했고, 엔씨소프트가 개발 중인 ‘프로젝트TL’은 ‘리니지’를 이용했다. 이밖에도 넷마블 역시 자사 IP ‘세븐나이츠’를 활용한 게임 ‘세븐나이츠-타임 원더러’를 준비 중이고, 스마일게이트는 자사를 대표하는 ‘크로스파이어’를 활용한 첫 콘솔 게임 ‘크로스파이어X’를 올 하반기 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콘솔 게임 개발 경험이 많지 않은 국내 게임사들이 고사양, 방대한 스토리를 자랑하는 대작 콘솔 게임에 익숙한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콘솔 게임 개발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성장 동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라면서도 “개발 인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 쉽지 않고, 그동안의 과금 구조와 다른 방식으로 매출을 올리는 경험이 적은 것도 아직은 허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