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가요계는 ‘마케팅의 승리’라고 할 만한 사례가 나왔다. 바로 가수 지코가 시작한 ‘아무노래 챌린지’ 얘기다. 지코는 지난달 13일부터 무려 한 달 넘게 멜론·벅스·플로 등 주요 음원차트의 1위를 지켜냈다. 특히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에서 일간차트 연속 33일째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해외에서는 ‘아무노래’의 인기가 더 뜨겁다. ‘아무노래’는 2월 15일자 최신 미국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 9위에 이름을 올리며 4주 연속 차트 진입에 성공했다. 가수 청하, 화사를 시작으로 송민호·이효리·크러쉬 등 인기 스타들까지 ‘챌린지’에 참여하며 말 그대로 ‘아무노래’ 열풍은 현재진행형이다.
대체 지코의 ‘아무노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을 활용한 챌린지 마케팅의 승리다. 지코는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춤을 ‘아무노래’에 붙인 뒤 ‘아무노래 챌린지’로 이름 붙여 틱톡을 통해 마케팅했다. 현재 ‘아무노래 챌린지’는 틱톡 조회 수가 무려 8억 뷰(해시태그(#) ‘anysongchallenge’)에 육박하고 있다. 시대적 관심사가 높은 플랫폼에 적절한 콘텐츠로 진정한 ‘바이럴 마케팅’을 성공시킨 셈이다.
틱톡은 중국 바이트댄스(Bytedance)가 만든 모바일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다. 현재 전 세계 150개국에서 75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고, 10억 명이 앱을 사용한다. 미국 내 사용자는 2400만 명에 이르는 등 미국에서 가장 핫한 앱 중 하나다. 기업가치는 작년 말 기준 750억 달러(약 87조원)에 달한다. 미국 소재 시장조사 기업 센서타워(SensorTower)에 따르면 틱톡은 작년에 2억4760만달러(약 2929억원)의 매출을 냈다.
이 가운데 71%인 1억7690만달러는 핵심인 쇼트 영상 비즈니스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됐다. 틱톡의 작년 4분기 매출은 8850만달러로, 전 분기 대비 2배, 전년 같은 기간보다는 6배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 6월 등장한 틱톡은 일명 ‘15초 동영상’인 짧은 형태의 동영상 플랫폼을 지향한다. 틱톡을 개발한 바이트댄스의 창업자는 장이밍(張一鳴)이다. 2009년 장이밍은 부동산 거래 플랫폼 서비스인 ‘99팡스닷컴’을 공동창업했다가 3년 만에 물러났고, 이후 인공지능으로 뉴스를 편집·배열하는 뉴스 사이트 ‘진르터우탸오(今日頭條)’를 만들어 중국 콘텐츠 사업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후 바이트댄스는 200일의 개발기간을 거쳐 중국에서 ‘도우인’이라는 서비스로 2016년 6월 첫 개시했다.
틱톡의 핵심 서비스는 ‘쇼트폼(short-form)’ 영상 편집이다. 유튜브 등 여타 플랫폼이 약간의 편집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과 달리 틱톡은 모바일로 누구나 쉽게 영상을 편집할 수 있다. 스티커 효과, 이펙트 보정, 음악 삽입 등 추가 기능을 통해 15초~1분 분량의 짧은 영상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배경음악을 삽입할 수 있다는 것은 별도로 노래를 틀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편의성이 높아진다. 특히 틱톡은 다른 유저가 만든 영상도 마음대로 편집하고 이어 붙여 또 다른 영상을 만드는 것도 허용한다.
이 같은 짧은 동영상 플랫폼은 특히 Z세대(1995~2000년대 출생)로 분류되는 전 세계 10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특히 사용자 중 16~24세 비중이 41%에 이를 만큼 젊은 층에서 인기가 높다. 2016년 틱톡은 라이벌 앱이라 불리는 ‘뮤지컬리(Musical.ly)’를 8억달러에 인수했고, 2018년 말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제치고 월말 다운로드 기준 세계 최고 앱으로 등극했다. 다음해인 2019년 한 해 동안 7억 건 이상 다운되며 가치를 더욱 높였다. 데이터 통계 회사 센서타워가 밝힌 2019년 앱 다운로드 차트에 따르면 틱톡은 왓츠앱(8억5000만 건 다운)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3위 페이스북 메신저와 4위 페이스북을 모두 제치며 ‘틱톡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한국에서도 ‘틱톡’의 사용자가 부쩍 늘었다. 와이즈앱/와이즈리테일이 작년 12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동영상 앱을 조사한 결과 1위는 3368만 명을 기록한 유튜브, 2위는 340만 명을 기록한 틱톡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서 세계적인 ‘올드 기업’들이 틱톡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올해 환갑이 다 된 ‘월마트’다. 월마트는 작년 9월 틱톡에 계정을 낸 지 불과 5개월 만에 팔로워가 13만 명이 넘었다. 월마트는 딜드롭댄스(DealDropDance)를 만들어 유저들과 소통했다. 하늘에서 마구마구 떨어지는 특가상품을 주워 담는다는 뜻으로, 파격할인의 기쁨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춤이 인기를 끌자 월마트는 딜드롭댄스 춤을 가르쳐주는 영상도 만들어 업로드했다. 2019년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 최고의 딜드롭댄스를 추는 사람을 뽑는 행사를 열었고, 사람들은 월마트 할인제품을 들고 춤 영상을 올렸다. 틱톡에서 #딜드롭댄스 해시태그를 달고 올라온 게시물 조회 수는 38억 회를 넘었다.
▶틱톡 ‘쇼트폼 시장’ 석권
틱톡을 둘러싸고 기업들까지 모여들며 ‘쇼트폼 영상’ 시장을 장악해가자 제일 먼저 대항마로 나선 것이 ‘인스타그램’이었다. 인스타그램은 2018년, 틱톡을 겨냥해 최소 15초~최대 10분짜리 세로 영상을 올릴 수 있도록 한 IGTV 앱을 내놨다.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 수 4~5위를 기록하는 인스타그램 앱을 바탕으로 쇼트폼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포부였다. 하지만 틱톡과 대항한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2020년 1월 동영상 전용 플랫폼 IGTV 버튼을 인스타그램 메인 앱에서 빼는 개편을 단행했다.
메인 화면 상단 다이렉트메시지(DM) 버튼 옆을 차지하던 IGTV 버튼을 없앤 것이다. 그 대신 인스타그램은 전체 이용자 중 약 1% 앱에는 IGTV 버튼을 남겨뒀다. IGTV 버튼이 빠지는 대신 IGTV 영상은 메인 앱 피드 탭과 탐색 탭에서 계속해서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 측 관계자는 “인스타그램 앱 홈 화면 오른쪽 상단에 있는 IGTV 아이콘을 클릭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항상 인스타그램을 최대한 간단하게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 “이 같은 학습과 유저 피드백을 바탕으로 아이콘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IGTV 앱의 맹점은 별도 앱에서 구동된다는 불편함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사용자들은 앱 전환을 선호하지 않는 대신 앱 하나로 모든 서비스를 누리길 원한다. 더욱이 인스타그램은 앱 내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를 영상까지 만드는 크리에이터로 만들고자 했으나, 적절한 수익화 모델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선택을 받지 못했다. 가로 영상을 제공하지 않고 세로를 고집한 것도 유튜브 등 다른 플랫폼의 영상을 다시 업로드하려는 인플루언서들의 사용에 제약이 있었다.
무엇보다 인스타그램은 틱톡이 가장 ‘승승장구’하던 시점에 경쟁하면서 틱톡에게 완벽히 밀린 것으로 분석된다. 2018년 6월 이후 IGTV는 누적 다운로드 700만 건을 기록한 반면 틱톡은 15억5000만 건에 달했다. 틱톡의 천문학적인 광고비 집행이 이유라고 보더라도 무려 200배 넘는 차이를 보인다. 스냅챗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에번 스피걸도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틱톡을 두고 “인스타그램보다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피걸 CEO는 지난 19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연례 디지털 라이프 디자인 콘퍼런스에서 “틱톡을 사랑하며 열혈 팬”이라면서 “틱톡이 인스타그램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쇼트폼’ 시장이 Z세대를 중심으로 꾸준하게 성장하자, 최근에는 구글과 트위터도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구글은 자사 공식 블로그에 ‘에이리어120의 최근 실험’이라며 1분 동영상 플랫폼 ‘탠지(tangi)’를 소개했다. 에이리어120은 구글의 사내 벤처 프로그램이다.
구글이 내놓은 짧은 동영상 공유 서비스 ‘탠지’
탠지가 다루는 주제는 ‘하우투(how-to)’다. 아트·쿠킹·DIY(Do It Yourself)·패션뷰티·라이프스타일 등 분야에서 자신만의 비법을 짧은 동영상으로 만들어 공유하는 형태다. 춤과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동영상 위주의 틱톡과는 차이를 보인다. 탠지의 이름은 ‘TeAch aNd GIve and tangible’에서 땄다. 개인이 가진 기술을 손에 잡히도록 제공한다는 뜻으로, 아직은 베타서비스 단계다. 탠지에 영상을 올리고 싶은 제작자는 구글에 인터넷 문서(구글독스)로 신청서를 보내야 한다. 자신의 기존 유튜브·틱톡 등 계정 정보와 함께 신청서를 제출하면 구글이 검증 후 승인한다.
미국의 동영상 앱 ‘바이트(byte)’도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출시 이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바이트는 틱톡의 15초 분량 영상보다 더 짧은 6초 분량의 짧은 영상을 올려 공유하도록 했다. 바이트의 전신은 2012년 등장한 동영상 서비스 ‘바인(vine)’이다. 트위터가 2016년 3000만달러에 바인을 인수했지만, 인스타그램 동영상 등 여타 플랫폼에 밀려 같은 해 서비스를 접었다. 그런데 최근 틱톡의 인기가 높아지자, 트위터가 서비스 이름을 바이트로 바꾸고 재출시한 것이다.
바이트는 출시 직후 미국·캐나다 애플 앱스토어 다운로드 1위에 올랐다. 출시 후 3일간의 앱 다운로드 78만 회 중 75%가 미국에서 이뤄졌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틱톡의 라이벌이 등장했다. 공교롭게도 틱톡과 모기업 바이트댄스가 맞이한 중요한 시점과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틱톡 지코 계정 캡처
▶틱톡 ‘개인정보 유출’ 우려 문제도
블룸버그가 지적한 ‘틱톡과 바이트댄스가 맞이한 중요한 시점’은 무엇일까? 틱톡은 사용자의 각종 정보를 중국으로 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와 의회에서는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작년 하반기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미국 상원은 작년 10월 국가정보국장(DNI) 측에 보낸 서한에서 “중국엔 독립적인 사법부가 없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개인 정보를 요청할 경우 그것이 정당한지 검토할 수 없다. 특정 콘텐츠에 대해 (중국 정부가) 검열 또는 조작을 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들 의원들은 “틱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바이트댄스의 본사가 중국에 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이 정보를 통제하는 것을 지원하고 협력할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이 요구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항소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작년에 불거진 홍콩 시위 관련 영상은 틱톡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과 관련해 중국 정부의 ‘검열’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작년 10월 틱톡의 내부 가이드라인 문건을 입수해 틱톡 측이 톈안먼 시위 사태 및 티베트 독립 등,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상을 검열해왔다고 보도했다. 이에 바이트댄스는 개인정보 유출 의혹에 대해 “모든 미국 사용자 데이터를 미국에 저장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에서 백업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국 등 미국 외 지역 사용자의 개인정보에 대해선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현재 미 국방부와 육군, 해군, 해병대, 공군, 해안경비대 등 모든 미군은 안보위협을 이유로 정부에서 지급한 어떤 기기에서도 틱톡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미 육군 대변인 로빈 오코아 중령은 CNN에 “(작년) 12월 16일 (전군에게) 발송된 ‘사이버의식 메시지’에는 틱톡을 사용할 경우 잠재적 안보 위험이 있다고 보고 즉각 삭제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 메시지는 병사들이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취해야 할 적절한 행동지침을 제공한 것”이라며 “다운로드하는 앱을 주의하고 비정상적이고 불필요한 문자메시지 등으로부터 휴대전화를 감시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앞서 작년 2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부모의 동의를 받지 않고 아동의 정보를 수집했다는 이유로 틱톡에 벌금 570만달러를 부과했다. 국내에서도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틱톡이 법적 대리인의 동의 없이 14세 미만 아동 청소년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송 의원의 요청에 따라 틱톡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돌입했다.
틱톡
블룸버그에 따르면 바이트댄스는 틱톡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를 미국 출신 중에서 찾고 있다. ‘중국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다. 보도에 따르면 바이트댄스는 최근 몇 달 동안 미국에 기반을 둔 CEO 후보들을 인터뷰했다. 바이트댄스 관계자는 블룸버그를 통해 “알렉스 주 틱톡 CEO는 중국에서 계속해서 서비스와 엔지니어링을 관리할 것이다. 채용 과정은 진행 중이며 누가 선발되느냐에 따라 역할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출신 CEO 후보자 물색에 대해 틱톡을 독립 법인으로 만들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전망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