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스페이스 시대… 우주항공 스타트업이 뜬다 시장규모 500조원, 민간주도 우주 산업 본격화
이상덕 기자
입력 : 2020.03.03 16:08:31
수정 : 2020.03.08 20:35:05
‘올드 스페이스(Old Space)’ 시대가 저물어 가고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R-7 로켓에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실어 쏘아올린 것을 계기로 우주 시대를 연 이래 각국 정부는 정부 주도로 치열한 우주 경쟁을 벌여왔다. 1969년 7월 미국이 달 착륙 유인 우주선인 아폴로 11호를 발사해 인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1988년에는 유럽 우주국(ESA)이 아리안4를 우주로 쏘아 올리면서 미·소 양국 간 우주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인 2007년에는 중국 정부가 인공위성 파괴 실험을 실시할 정도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들 프로젝트는 모두 군사 목적이 강한 정부 주도 프로젝트들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혁신 정신과 IT 기술력으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우주 산업에 뛰어들면서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태동한 우주 산업은 비효율적인 정부 주도 우주 프로젝트 시대인 ‘올드 스페이스(Old Space)’와는 다르다는 뜻에서, 이른바 ‘뉴 스페이스(New Space)’로 부른다. 극초음속 우주비행기(XS-1), 유인우주선 스타호퍼(Starhopper), 재활용 로켓 개발 프로젝트 뉴 글렌(New Glenn), 새로운 추진체 실험인 스핀런치(SpinLaunch) 등은 모두 민간이 주축이 돼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바야흐로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찾아 온 것이다.
유인 우주선 크루드래곤 상상도 (사진=스페이스엑스)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
이처럼 뉴 스페이스 시대가 성큼 찾아온 까닭은 미국 정부가 NASA(미국 항공우주국)에 대한 예산 투입을 줄이고, 민간으로 그 권한을 대폭 이전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오늘날 우주 산업은 신기술과 혁신정신으로 무장한 신흥 스타트업이 전통 군수 우주항공 기업들을 밀어내고 있다.
우선 미국 연방정부 예산 가운데 NASA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5년 4.31%를 정점으로 지속 하락세다. 1993년까지는 1%를 웃돌다가, 이후에 1% 이하로 떨어졌다. 2012년 0.5%를 찍었고 2020년에는 0.48%로 그 비중이 축소됐다. 물론 NASA의 예산은 여전히 막대하다. 올해 예산 규모만 226억달러(약 26조7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전체 미국 연방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성기 때보다 9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미국 정부는 NASA의 비효율을 덜어내고자 프로젝트를 외주로 돌리고 있다. 당초 민간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전통적인 군수 항공 업체였다. 록히드마틴과 보잉이 설립한 조인트 벤처인 유나이티드 론치 얼라이언스(United Launch Alliance)가 그 대표적 사례다. 1986년 미국의 챌린저 우주왕복선이 폭발사고를 겪자, NASA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군사 위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미국공군우주사령부는 ‘발전형 소모성 우주 발사체(Evolved Expendable Launch Vehicle·EELV)’ 프로젝트를 자체 추진하기에 이른다. 반복 사용이 가능한 우주왕복선 대신 일회용 발사체를 민간 주도로 개발해 빠른 시일 내에 군사위성을 궤도에 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미군은 델타, 타이탄, 아틀라스 등 민간 업체와 협력한 발사체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곧 독점 현상이 나타났다. 2005년 록히드마틴과 보잉은 록히드마틴의 마이클 개스를 대표로 임명하고 유나이티드 론치 얼라이언스를 설립했다. 후발주자 진입을 막고 더 큰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블루오리진의 달탐사선 블루문
이들 전통 군수 항공사들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우주 산업과 전혀 상관없는 스타트업이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SpaceX)나 제프 베조스의 블루오리진(Blue Origin)이 대표적이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2002년 국제우주정거장 보급과 상업용 인공위성 발사를 목적으로 하는 스페이스엑스(SpaceX)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로켓을 회수해 다시 사용하면 전통 우주 항공 기업들보다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발판으로 빠른 속도로 우주 시장에 침투했다. 2006년 NASA와 국제우주정거장의 화물 운송계약을 맺어 28억달러(약 3조3100억원) 지원금을 받아내 개발을 이어갔다. 2012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업용 우주선을 발사해 국제우주정거장에 도킹시키는 기염을 토했고, 2015년에는 위성 네트워크망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우주 산업이 종전 통신 산업을 위협할 수 있는 대목으로 해석됐다. 또 2015년에는 팰컨 9(Falcon 9)이라는 로켓을 발사하고 그 로켓을 회수해 재활용하는 데 성공해 전 세계 주목을 받았다. 작년 11월에는 팰컨 9을 통해 스타링크 위성 60대를 발사하는 데도 성공했다. 통신 업계가 긴장한 것은 물론이다.
블루오리진은 스페이스엑스와 궤를 같이해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가 2000년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2015년 뉴 셰퍼드(New Shepard)를 개발했다. 궤도에 진입하지 않은 채 관광 목적으로 우주를 탐험할 수 있는 발사체다. 2017년에는 시험 비행에도 성공한다. 현재 블루오리진은 스페이스엑스처럼 1단 로켓을 재사용할 수 있는 뉴 글렌(New Glenn)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블루오리진의 뉴 글렌, 블루오리진의 뉴 셰퍼드
▶IT 기술력과 창조적 아이디어가 바꾼다
스페이스엑스나 블루오리진 같은 스타트업의 장점은 IT 기술력과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해 색다른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데 있다. 대표적으로 스타호퍼(Starhopper)는 달과 화성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스페이스엑스의 역발상 산물이다. 일반적으로 무거운 발사체는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스페이스엑스는 발사체가 무거울수록 더 많은 무게를 실어 나를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스타호퍼는 로켓 안에 실리는 물건의 하중을 뜻하는 페이로드(Payload) 용량이 1420t으로 팰컨 헤비(Falcon Heavy)보다 3배 이상 크다. 길이 118m에 폭 9m인 ‘빅 팰컨 헤비 로켓(BFR)’을 제작해 그 위에 우주 왕복선을 부착한다는 구상이다. 5400t급 추진력으로 쏘아 올린 발사체는 지구저궤도(LEO)에서 분리돼 회수된다. 이후 100명이 탑승한 우주왕복선은 목적 행성까지 태양 에너지를 활용해 이동하고 지구로 돌아올 때는 랩터 엔진 7개를 묶은 추진체를 활용한다. 스페이스엑스는 로켓과 우주왕복선을 재활용되는 만큼 회당 발사비용이 700만달러(82억원) 이하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스타호퍼는 작년 텍사스 남부 보카치카 조립공장에서 실험 비행을 마친 바 있다.
블루오리진의 뉴 글렌(New Glenn)도 재활용 로켓 프로젝트다. 스페이스엑스의 팰컨헤비와 비슷한 무게의 로켓인 뉴 글렌은 연료를 모두 소진한 뒤 자동으로 회수돼 선박으로 운반해 재활용된다. 또 조너선 야니(Jonathan Yaney)가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설립한 스핀런치(SpinLaunch)는 종전의 틀을 깨는 방식으로 우주로 발사체를 쏘아 올릴 아이디어를 냈다. 거대한 원심분리기로 로켓을 발사하겠다는 이른바 스핀런치 프로젝트다. 로켓을 축구장 넓이의 원심분리기 안에 넣은 뒤 진공상태에서 공기 저항 없이 1시간 동안 회전 운전을 하면 로켓 속도는 시속 8000㎞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구상이다. 이후 약 100㎏ 무게의 물건을 실은 로켓이 1시간 만에 원심분리기에서 발사돼 성층권까지 도달한 뒤 성층권에서 엔진을 가동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현재는 아이디어 단계로, 2건의 기술 특허를 낸 상태다.
스페이스엑스의 화성 탐사 상상도
발사체뿐 아니라 인공위성도 IT 발전과 맞물려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큐브위성이다.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California Polytechnic State University)과 스탠포드 대학(Stanford University)이 1999년 교육 목적으로 개발한 큐브위성은 오늘날 그 용도가 상업용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가로·세로·높이 10㎝라는 작은 크기에 오픈소스(Open Source) 방식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탑재할 수 있다. 특히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활용하는 스타트업들은 점차 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플래닛랩스(Planet Labs)다. 플래닛랩스는 수백 개의 큐브위성을 500~630㎞ 지구 저궤도에 올려놓고 지상 3m에서 근접 촬영이 가능한 해상도로 지구 표면을 촬영한다. 촬영된 사진은 머신러닝을 통해 맞춤형 정보로 가공되고 도시 계획, 농업, 재난, 벌목 감시 등에 쓰인다. 지구 전체를 스캔하겠다는 프로젝트다.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인 킥스타터에는 현재 16개에 달하는 큐브위성 프로젝트가 자금을 모집 중인데, 그만큼 큐브샛을 이용한 아이디어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새로운 위성 기술이 잇따르면서 제작비용 또한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위성 네트워크 스타트업인 스카이로는 지난달 1억300만달러(약 1203억원)에 달하는 시리즈B 투자유치를 성사시켰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리드 투자사를 맡고, 에릭 슈미트 전 알파벳 회장이 이끄는 VC인 이노베이션 엔데버까지 참여해 투자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스카이로는 검침 센서, 스마트 조명, 위치 추적기기 등 통신 장비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데이터나 전력 사용이 적은 IoT(사물인터넷) 장비에 적합한 광역 통신 표준 기술, 즉 협대역 사물인터넷(NarrowBand-IoT)에 위성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스타트업이다. 8인치 수신기는 100달러, 월 사용료는 1달러에 관련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현재 위성 송수신기 솔루션보다 요금이 무려 95%나 저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00조원 육박하는 우주 산업 태동
주도권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이양된 것은 이처럼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지게 하는 원인이었다. 또 일부는 결실을 맺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우주 산업 전체가 팽창하고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스페이스 파운데이션’에 따르면, 2018년 우주 산업 규모는 4147억달러(약 490조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8.1% 커진 규모다. 전 세계 정부의 우주 산업 예산이 858억달러(약 101조원)에 그쳤는데, 나머지 3289억달러(약 389조원)는 민간에서 창출했다. 위성통신, 위성TV, 위성라디오 등 우주 상업·제품 및 서비스 산업이 약 2300억달러(약 272조원)에 달했으며 위성 제작·발사체 제작 등 상업 인프라와 지원 산업이 약 1000억달러(약 118조원)로 평가를 받았다.
우주 산업이 향후 더 크게 발전할 것으로 전망되는 까닭은 발사 비용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는 데 있다. 2015년 유나이티드 론치 얼라이언스(United Launch Alliance)의 우주 로켓인 아틀라스Ⅴ는 1㎏ 화물을 우주로 보내는 데 약 2만200달러(약 2390만원)라는 비용을 내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오늘날 스페이스엑스가 제작한 팰컨헤비는 화물 1㎏당 수송비를 2200달러(약 260만원)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다. 또 재활용 로켓을 활용할 경우 이보다 30% 낮은 금액을 제시하고 있다. 가격이 10분의 1 이하인 셈이다. 향후 우주화물 1㎏당 수송비가 600달러(약 71만원)까지 낮아질 경우, 우주에서 태양광으로 에너지를 축적한 후 그 전력을 지상에 보내는 ‘마이크로파 발전’ 아이디어가 본격적으로 상업성을 갖출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도전하는 한국의 우주항공 스타트업
이 같은 우주항공 스타트업 붐은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는 부산형 초소형위성인 ‘부산샛’ 구축을 추진 중인 스타트업이다. 부산시,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함께 초소형 위성 제작을 통해 해양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부산샛은 2022년께 420㎞ 고도에 위성 12개를 쏘아 올려 부산항 등 해당 지역을 상시 관측하는 프로젝트다.
2018년 2월 시험 발사된 스페이스엑스의 팰컨 헤비
또 다른 스타트업인 페리지항공우주로켓은 2020년 7월 발사를 목표로 소형 발사체를 제작 중에 있다. 50㎏ 위성을 500㎞ 궤도에 올리는 것이 1차 목표다. 대형발사체는 비용이 상당해 다양한 궤도를 목표로 발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초소형 인공위성이 부상하면서 보다 저렴한 가격에 저궤도에 인공위성을 올리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페리지항공우주로켓은 이러한 수요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또 위성통신 시스템 기업인 인텔리안테크놀로지는 정지·중궤도 등 다양한 궤도에 올라간 인공위성을 자동 추적하는 안테나를 개발해 ‘새틀라이트 2019’에서 올해의 위성기술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국내 상업용 우주산업 시장은 걸음마 단계다. KDB산업은행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은 글로벌 경제 규모 10위권에 독자적으로 발사체와 인공위성을 제작·발사할 수 있는 우주클럽(Space Faring Nations) 국가지만 우주 시장 점유율은 0.4%에 그친다. KDB산업은행은 “한국만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며 “우주 시장 점유율을 5%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목표로 삼는다면 총 1조원 규모 펀드를 조성해 매년 1000억원 규모 지원사업을 지속해야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