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독신주의자에게는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만 남보다 행복하다는 것은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일찍이 싱글세를 주장했다. 이유는 결혼·출산 장려나 세수 확보를 위해서가 아닌 ‘행복의 편향성’이었다. 낭만보다 현실에 가까워진 한국사회의 결혼문화에 있어서도 오스카 와일드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은수저 한 벌과 단칸방이면 가능했다던 드라마틱한 결혼은 영화에서도 보기 힘들어졌다. 우스갯소리로 결혼은 ‘두 집안의 계약’이라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을 보면 배우자의 조건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결코 쉽지 않은 결혼에 이상적인 배우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성격 맞는 남-175~180cm 여-160~165cm 찾아요
결혼정보회사 듀오와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 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에서는 매년 결혼에 대한 미혼남녀의 인식을 조사·발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5~39세 미혼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배우자 선택 시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요소로 ‘성격’, ‘외모’, ‘경제력’, ‘가치관’, ‘가정환경’ 순으로 꼽았다.
남녀 공히 배우자 선택 시 고려 사항으로 ‘성격(남 35.5%, 여 37.3%)’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2순위는 남녀가 조금 달랐다. 남성은 ‘외모(17.2%)’, 여성은 ‘경제력(14.0%)’을 성격 다음으로 중요한 배우자의 조건으로 꼽았다.
서로의 ‘케미’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성격을 제외하고 2순위로 꼽힌 외모는 다분히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다만 외모에 있어서 이상적인 배우자의 ‘키’를 조사한 항목이 눈에 띈다. 남성은 배우자의 이상적인 키로 ‘160~165cm(33.1%)’를 가장 많이 꼽았고, 여성은 ‘175~180cm(32.3%)’의 남성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자의 직업? 안정성 우선
공무원·공사, 전문직·금융인 밀어내고 독보적
배우자 선택에 우선순위로 꼽힌 성격이나 외모가 비교적 정서적인 측면이 반영된 요소라면 경제력은 이성적인 필수요소라고 볼 수 있다. 경제력의 바탕이 되는 배우자의 선호 직업은 무엇일까? 배우자 선호 직업의 변화를 살펴보면 당시의 경제상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지난해 1위는 남녀 공통 ‘공무원·공사(12.2%)’ 직원을 꼽았다. 취업문이 좁아지고 조기퇴직에 대한 공포심이 사회 전반에 깊어지며 안정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성별을 나누어 먼저 여성들이 선호하는 남성의 직업을 살펴보면 여성은 ‘공무원, 공사(11.3%)’, ‘일반사무직(10.3%)’, ‘금융직(7.9%)’, ‘교사(6.5%)’, ‘연구원(6.3%)’을 이상적 남편의 직업으로 꼽았다. 사실 새삼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10여 년간 공무원·공사는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하지만 2003년 이전까지는 양상이 달랐다. ‘IMF세대’인 1970년대생 여성이 결혼을 고민하던 1996년에는 가장 인기 있는 신랑감은 ‘대기업 사원’이었다. 1000명 중 무려 653명이 대기업 사원에 표를 던졌다. 하지만 IMF사태가 터진 이듬해 이후로 대기업 사원의 인기는 급락했고 안정적인 고수익이 보장되는 전문 직종인 의사, 회계사 등이 대세로 떠올랐다. 벤처 붐이 일었던 2000년에는 잠시 정보통신 관련 직종이 전문직 남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경제환경의 굴곡이 깊어지며 ‘불안의 시대’가 도래하자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선호가 확연해지기 시작했다. 1996년 미혼여성 1000명 중 고작 23명의 지지를 받았던 공무원은 2004년 이후로 10년 동안 1위 자리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
반대로 지난해 남성들은 이상적인 배우자의 직업으로 ‘공무원, 공사(13.3%)’, ‘일반사무직(12.3%)’, ‘교사(11.9%)’, ‘금융직(7.0%)’, ‘약사(6.4%)’등을 꼽았다. 지난 20년간 줄곧 1~2위권을 다투던 교사의 인기는 조금 시들해졌다.
특히 전문직 여성이나 일반사무직 여성의 선호 경향이 여성들보다 낮은 편이다. 남성은 결혼 상대를 고려할 때 직업보다는 외모와 자신의 직업과 경제수준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배우자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봉 남성 4927만원 여성 3843만원 정도는 받아야
이상적인 배우자의 연소득으로 여성이 바라는 남성의 평균 연소득은 4927만원이었으며, 남성이 바라는 여성의 평균 연소득은 3843만원으로 집계됐다. 배우자의 연소득에 대해서 남성은 상대방의 연소득이 ‘중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44%로 가장 높게 나타난 반면 여성은 연소득 4000만~5000만원(22.5%)인 배우자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안정적인 경제력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것이다. 남녀 모두 가장 많은 나이인 ‘35~39세’층에서 각각 3961.5만원, 5318.6만원으로 배우자에게 원하는 연봉수준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밖에 남녀 모두 본인의 연소득 ‘5000만원 이상’일 경우 배우자의 희망 연소득 평균이 각각 4293.1만원, 5761.9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특히 여성 응답자의 경우 자신의 연소득에 따라 배우자의 희망 연소득이 비례하는 경향이 컸다.
선호하는 배우자의 자산규모에 대한 결과도 연소득과 유사하게 나타났다. 여성이 바라는 남성의 평균 자산규모는 2억6588만원이고, 남성이 바라는 여성의 평균 자산규모는 1억7192만원으로 조사되었다.
자산규모는 ‘중요치 않다’라는 답변은 남성 53.3%, 여성 36.3%가 답했다. 자산규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남녀의 비율 차가 17.0%p로 여성보다 남성이 높게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