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기비(天高企肥)’의 계절이 왔다.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이 되면서 하늘과 관련된 기업들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특히 하늘 너머 우주까지 바라보고 있는 항공우주산업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항공기 제작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대한항공(KAL)이 대표적이다. 지난 9월19일 KAI의 주가는 올해 초 대비 37.4%가 오른 3만9850원을 기록했다. 52주 신고가다. KAI의 주가상승은 외국인이 이끌었다. 외국인 보유 지분율이 지난해 말 9.21%에서 14.36%로 5.42%p 높아지며, KAI의 고공행진을 주도했다. 대한항공(KAL)도 비슷한 모양새다. 주력사업인 수송 및 여객 분야가 아닌 항공우주사업에서만 48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 항공우주사업본부의 영업이익은 96억원이었다. 이는 KAL 전체 영업이익인 14억원의 33배에 달하는 규모다. 회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7%대 남짓이지만 영업이익 기여도는 3000%가 넘는 셈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두 기업의 실적이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는 점이다.
하이투자증권은 리포트를 통해 “KAI는 현재 6년 매출액에 달하는 12조원의 수주잔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KAL 역시 글로벌 항공기 제작사로부터 제작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며 “여기에 차세대 전투기 개발사업(KF-X)과 수리온 헬기의 공급 증가 가능성과 무인항공기 수요 증가로 인해 두 기업의 매출액과 수익성은 더욱 상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뛰어난 실적 KAL·KAI 주가 급상승 중
KAI와 KAL은 그동안 서로 경쟁하며 국내 항공우주산업을 주도해 왔다. 1976년 설립된 KAL 항공우주산업본부는 초창기 500MD 헬기 생산을 시작으로 1982년 F-5 전투기(제공호)를 만들었다. 이후 1992년 무궁화 1호 위성의 본체 구조물을 제작했으며, 2002년부터 보잉사의 B777 날개 구조물 제작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보잉(Boeing)사와 에어버스(Airbus)사의 구조물 및 공동개발, 무인항공기 및 항공기 엔진 등 항공기제작업 전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9년 삼성항공(삼성그룹), 대우중공업(대우그룹), 현대우주항공(현대그룹) 등 3개사의 항공사업부문을 통합해 설립된 KAI는 국내 유일의 완제기 제조업체다. 국내 대표 방위산업체로서 방위사업청과 계약하여 항공기 및 전투기에 관련한 다양한 용역과 제작을 맡아왔다. 이후 2000년 한국형 전투기(KF-16) 생산을 시작으로 국산 기본훈련기(KT-1)와 고등훈련기 T-50을 개발에 성공했으며, 2011년에는 국산 경공격기 FA-50을 양산했다. 또한 국내 기술로 완성된 최초의 다목적 헬리콥터인 수리온의 개발업체이기도 하다.
두 기업의 특징을 살펴보면 KAL은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 항공사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항공우주사업본부 역시 민간용 항공기에서 높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와 관련 KAL 관계자는 2분기 높은 실적을 기록한 것에 대해 “보잉 차세대 항공기 787의 복합재 구조물과 에어버스 350 기종의 카고 도어, A320의 샤크렛 등 부품 수요가 늘면서 2사분기 실적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 유일의 항공기 제작업체인 KAI는 무인항공기 및 훈련기 등 방위산업 분야에 무게중심이 쏠린다. 그래서 KAI는 생산 제품 중 절반 이상이 공군에 납품되거나 해외로 수출된다. KAI는 최근 한국형 경공격기를 비롯해 고등훈련기 등 수출 계약을 통해 상반기에만 74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매출 역시 1조1017억900만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8.1% 늘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KAI는 창립 이래 최대 규모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항공우주사업의 부가가치가 엄청나게 높다는 점이다. KAI 관계자는 이와 관련 “선진국과 경쟁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한 항공우주사업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초일류 국가로 발전하는 데 반드시 같이 가야 하는 분야”라면서 “고등훈련기 T-50 1대를 수출할 경우 중형자동차 1250대를 수출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만큼 투자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KAL은 부산 제2테크센터 건립 등을 통해 지난해 7,642억원 수준인 매출을 2020년 3조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KAI 역시 최근 소형 민수헬기 개발사업 수주에 따라 약 1,000명 이상의 석·박사급 연구개발(R&D)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군수 40조원 + 민간 30조원 = 70조원 시장 열린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항공우주산업 분야는 올해 말 다시 한 번 대규모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 40조원 규모의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 사업과 함께 약 30조원 규모의 헬기 사업도 조만간 진행될 것으로 관측이 나오고 있어서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시제기 4대를 제조하는 KF-X 사업의 체계개발 업체 선정 공고가 곧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총예산 40조원이 투입되는 KF-X 사업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 마련한 계획이 보류되다가 13년 만에 마침내 첫삽을 뜨게 됐다. 군사전략의 한 전문가는 이와 관련 “KF-X 사업의 체계개발 업체 선정은 총 40조원 규모의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의 주도권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KAI와 KAL은 모두 KF-X 사업에 참여할 뜻을 비쳤다. KAL은 미 공군 정비창으로 사용할 부산의 제2테크센터를 확장해 여기에서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의 시제기를 개발할 계획이다. KAI 역시 포스코엔지니어링과 함께 사천에 대규모 차세대 전투기 개발센터를 건립 중에 있다. 이와 함께 총 30조원 규모의 민수 및 소형 무장헬기 사업도 빠른 시일 내에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은 국내 항공 군수부문을 독점하고 있는 KAI가 따낼 것으로 전망된다. KF-X와 소형 무장헬기 사업의 총 사업 규모를 모두 합하면 70조원이라는 엄청난 규모다. 이 때문에 방산업계와 금융권에서는 방위사업청과 KAI, KAL의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상황도 두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인이다.
글로벌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사가 발표한 보고서(Commercial Market Outlook)에 따르면 향후 20년간 세계 민항기 시장은 5조2000억달러(약 5200조원)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부터 2033년까지 세계 민항기 수요는 3만6770대로 추산돼 매년 260조원 규모의 시장이 새로 생긴다는 예측이다. 지난해 3만5280대(약 4조7600억달러)의 신규 항공기 수요가 있을 것으로 내다본 바 있는데, 이를 다시 상향 조정한 것이다. 순수 항공기 기체부품 시장규모도 오는 2020년 이후 해마다 130조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항공기 전체 시장규모의 50%에 해당한다. 증권가에서는 이런 점 때문에 KAI와 KAL이 높은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항공우주산업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두 기업 중 한발 앞서 나가고 있는 쪽은 KAI다. KAI는 올해 하반기부터 경상남도 사천의 ‘A350 윙립(Wing Rib) 자동화공장’과 ‘A320 WBP 전용공장’의 운영을 시작한다. 또한 지난 8월 29일에는 일본 후지중공업(FHI)과 민항기부품 수주 본계약을 체결했다. FHI와 맺은 B787 Sec.11 공급물량 본계약의 계약금액은 2943억원이다.
B787 기종은 보잉의 대형 민항기로 ‘드림라이너’라고도 하며 길이 60m, 폭 57m, 높이 17m로 290~330명이 탑승 가능하다. 이는 KAI의 기술 수준이 높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으로 최신 기종의 기체부품 공급으로 추가적인 수주도 가능한 상황이다. 김익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KAI는 7조원의 민항기 부품 수주잔고를 보유하고 있으나 보잉과 에어버스가 내년에 대규모 발주를 할 경우 양적 성장을 보여줄 것”이라며 “10% 중반대 영업이익률을 보여준 지금까지의 실적과 자동화공장 가동에 따른 수율 향상이 지난해 연말부터 주가를 끌어올린 동인이다”고 분석했다. KAL의 경쟁력 역시 만만찮다. KAL의 항공우주사업부는 부산 강서구의 테크센터에서 항공기 제작, 면허 생산, 성능 개량, 복구, 개조, 정비사업 등을 하고 있다. 민항기 국제공동개발 사업을 통해 보잉사의 B787 항공기의 일부를 생산하고 있으며, 에어버스사의 A320의 부품도 2012년부터 제작 중이다. 또 중고도 무인기, 사단급 무인기, 틸트로터(무인전투기) 등 다양한 무인 항공기를 라인업 하고 있다. 하준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KAL의 항공우주사업부의 매출액은 2009년 이후 연 평균 26.2%의 높은 성장을 이어가고 있으며, 내년에는 1조1000억원, 2020년에는 3조원이 목표”라며 “민항기 공동개발로 수익성을 개선하고, 무인항공기 사업이 미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