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가 들어오자 마을 어른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아침, 저녁으로 산에서 캐온 나물이며 집 앞 밭에서 재배한 채소들로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열차에서 내린 관광객들에게 “자연산 유기농이 싸다”며 판매에 나섰다. 처음엔 할머니 네댓 명이 모여 소일거리로 시작한 게 규모가 커졌다. 그만큼 관광객이 많아진 탓이다. 경상북도 봉화군에 자리한 영동선 양원역은 요즘 활기가 넘친다. 최근엔 가을 단풍 손님을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이곳에서 나물을 파는 한 할머니는 “다 쓰러져가던 간이역에 열차가 서면서 용돈벌이가 쏠쏠하다”며 “노인네들 돈 나올 데가 없는데, 이게 주업이 됐다”고 말했다. 사실 이곳은 철도 외에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 주민들의 요구로 역이 들어섰다. 덕분에 우리나라 민자 역사 1호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지만 이용객이 많지 않아 수차례 여객취급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코레일이 운영하는
백두대간협곡열차(V-트레인)가 정차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마을 주민들은 “역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특산품을 팔면서 새로운 수입이 생겼다”며 “돈이 돌면서 생활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O·V-Train 열기 후끈
코레일의 철도관광벨트가 지역경제를 살리는 첨병으로 떠올랐다. 세계적인 관광열차를 표방한 중부내륙 관광열차 ‘O·V-Train’의 성공이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개통한 두 열차는 올 8월 말 기준 이용객이 각각 26만명을 돌파했다. 주말엔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을 만큼 인기다.
중부내륙순환열차인 O-Train은 백두대간의 사계절을 모티브로 전망석, 커플룸, 패밀리룸, 유아 놀이공간, 카페 등 총 4량으로 구성됐다. 중앙선, 영동선, 태백선 순환구간을 하루 두 번 왕복한다.
백두대간협곡열차인 V-Train은 아기백호를 모티브로 강원도 철암역~경북 분천역 구간을 하루 3회 왕복한다. 창이 넓어 시야가 탁 트였고 지붕에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해 탄소 배출을 최소화했다. 접이식 승강문이나 목탄 난로, 선풍기 등 객실 내 소품도 복고 분위기로 꾸며졌다.
콘셉트가 확실한 두 열차가 운행을 시작하자 자동차로 찾기 힘들었던 오지 마을에 온기가 돌았다.
열차에서 사람이 내리고 타니 그들을 대상으로 장터가 열렸고 트레킹 등 각종 체험여행 프로그램이 생기며 변화가 시작됐다. 특히 V-Train 구간 중 철암역과 분천역은 개통 전 하루 이용객이 10여 명에 불과했지만 열차가 운행되자 주말에만 2000여 명의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사실상 죽어있던 두 역사가 살아난 것이다. 중부내륙관광열차 이용객이 늘면서 코레일의 수익성도 높아지고 있다.
개통 1년이 지나지 않아 총 26억원의 열차제작비를 회수했고 중앙선, 영동선, 태백선, 충북선 등 일반열차 이용객도 15.6%나 늘었다. 해당 노선의 코레일 수입도 약 50억원이나 증가했다.
(위)DMZ-Train 경의선, (아래)U-Train
애물단지에서 알짜배기 된 시골 간이역
사실 하루 100명 미만이 이용하는 시골 오지의 간이역은 그동안 코레일의 애물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코레일은 경영효율을 위해 2007년에만 59개 간이역의 문을 닫았다. 하지만 철암역과 분천역의 성공이 인식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분천역 인근에는 장터와 식당, 카 셰어링, 자전거 셰어링, 캠핑장, 민박집 등이 들어서고 있고, 농업과 산나물 채집이 생계의 전부였던 마을 주민 200여 명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철암역 부근에도 ‘철암탄광 역사촌’, 예술인을 위한 아트하우스 등이 문을 열며 관광객의 발걸음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자체의 협조도 적극적이다. 트레인 순환구간에서는 경북 봉화군이 220여 억원 규모로 증기기관차 운영을 준비하고 분천역 인근에 대규모 숙박·캠핑시설을 조성키로 했다. 강원도 정선군은 코레일과 정선선에 관광전용열차 A-Train 운행 계획을 확정했다. 태백, 제천, 단양, 영주, 영월 등 지자체도 연계 셔틀버스를 운영 중이다. 충북대 사회과학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중부내륙관광열차로 지난해 생산유발 348억원, 일자리 창출 601개의 효과가 나타났다. 10년 후 지역사회 매력도는 190%, 지역경쟁력은 27% 각각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코레일이 진행하고 있는 간이역 문화디자인 프로젝트 ‘디자인 코레일, 이야기가 있는 간이역!’이 올해 대한민국 경관대상 역사문화경관 부문에서 최우수상인 국토교통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O·V-Train을 시작으로 5대 철도관광벨트를 구축하는 등 지역특색을 고려한 관광전용열차를 운행하고 있는 코레일은 앞서 소개한 분천역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 건축 양식과 증기기관차 향수(급수탑)를 느낄 수 있는 ‘화본역’, 소백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는 ‘희방사역’, 소소한 여행의 재미를 즐길 수 있는 ‘직지사역’ 등 간이역을 되살려 냈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간이역 프로젝트는 쉼, 휴식, 힐링 등 국민행복 시대에 발맞춘 자연과 철도의 융합을 통한 창조경영의 성과”라며 “간이역이 지역경제를 살리는 관광자원이자 지역 문화와 소통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코레일이 선정한 가을 단풍 명소
열차타고 떠나는 가을 단풍놀이는 강원도 정선 ‘민둥산 억새축제’부터 시작한다. 민둥산 억새꽃축제는 10월 26일까지 펼쳐진다. 해발 1100m인 민둥산은 20만 평가량이 억새꽃으로 덮여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팔도장터관광열차-정선5일장’은 코레일과 중소기업청이 공동으로 재래시장활성화를 위해 운영하는 열차다. 재래시장 방문이 열차운행의 주목적이지만 가을 이용객들은 단풍놀이가 먼저다. 민둥산 억새꽃 축제장과 정선 5일 장터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온누리상품권 5000원권도 준다. 정선장날에 맞춰 10월 2일과 17일 단 두 번만 운행한다. 코레일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중부내륙관광열차 O-Train을 운행한다. 코레일관광개발도 10월 26일까지 민둥산 억새꽃 축제 자유여행 프로그램을 매일 운영하고 있다.
‘내장산 트레킹’도 단풍의 백미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일주문부터 내장사까지 108그루 단풍 터널은 추천 코스다. 워낙 유명하다보니 서둘러야 열차 좌석을 확보할 수 있다. 코레일관광개발은 10월 18일부터 11월 16일까지 KTX와 무궁화호를 이용한 ‘내장산 트레킹 단풍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곳도 팔도장터관광열차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나주목사고을 시장은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 종합 1위’를 차지할 만큼 볼 것, 살 것, 먹을 것이 넘쳐난다. ‘팔도장터관광열차-나주목사고을시장’은 10월 9일, 11월 4일, 11월 9일 3회 운행한다. 정읍에 ‘내장산’이 있다면, 순창에는 ‘강천산’이 있다. 아기단풍이 유명한 강천산은 매년 100만명 이상 관광객이 찾는다. 강천산 단풍여행은 KTX를 이용한 1박 2일 코스가 좋다. KTX를 이용해 정읍역에 도착해 전주한옥마을, 강천산, 순창고추장 마을을 둘러보고 이튿날에는 화엄사와 화개장터, 곡성 기차마을, 섬진강 레일바이크까지 체험하는 알뜰한 일정이다. 10월 18일부터 11월 말까지 매일 운행한다. ‘팔도장터관광열차 강천산, 남원공설시장’도 강천산의 가을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강천산 자유트레킹과 순창 고추장마을, 남원공설시장을 엮었다. 10월 29일과 11월 29일 딱 두 번만 운행한다. 지리산을 찾는 데는 남도해양열차 ‘S-Train’이 제격이다. 매일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S-Train을 타고 남원역에서 내려 유기농으로 재배한 웰빙 뷔페로 점심식사를 하고 지리산 뱀사골, 운봉 허브밸리, 광한루를 둘러보는 하루 일정 프로그램이 인기다. 하루가 아쉽다면 지리산과 하동을 묶어 1박 2일로
다녀와도 좋다. 코레일 홈페이지(www.letskorail.com), 코레일관광개발(1544-7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