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는 혁신이었다. 글로벌 IT기업들은 앞다퉈 스마트폰 사업을 핵심사업으로 분류하고 연구개발 및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최첨단 기술을 탑재한 스마트폰이 연이어 출시됐고, 소비자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제품 수준에 만족해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주요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판매율이 주춤하고 있다. 저가 스마트폰 등 새로운 소비자 니즈에 대한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이는 비단 IT업계뿐만이 아니다. 건설업과 항공산업도 마찬가지로 지난 20년간 비슷한 궤적을 보였다. 대부분의 산업은 혁신에 가속도가 붙는 시기를 거쳐 둔화되는 시기를 겪는다.
몇몇 글로벌기업은 이러한 핵심 사업영역에 닥친 위기를 단순히 제품 혁신이 아닌 경쟁 기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노력을 통해 극복했다. 호주 콴타스 항공(Qantas), 세계적인 건축자재 공급회사인 독일 힐티(Hilti)같은 글로벌 기업이 그 사례다. 이들은 새로운 가격 책정 전략, 파트너십, 원가 모델 및 그 밖의 변화를 결합시켜 눈부신 성과를 이뤘다. 이들 기업은 기존 접근법이 지닌 함정은 피하면서도 비즈니스 모델의 여러 요소를 적절히 조합하는 데 성공했고,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위 사례와 같이 비즈니스모델의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고객 니즈 변화, 새로운 경쟁사 등장 등 시장환경이 변화했음에도 대부분의 기업이 전통적인 접근법만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거의 성장 궤도를 유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전통적인 접근법의 3가지 함정
기업이 핵심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제품개선, 신제품 출시, 가격 전략이다. 이 3가지 방법은 지금도 기업이 성장을 위해 도입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지만 현재 상황에 적용하기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칼날을 하나 추가한 수준의 개선이다. 오늘날 고객들은 제품의 가치를 제품과 관련된 서비스, 경험, 성과에서 찾는다. 과거처럼 단순히 면도기에 칼날을 하나 더해 제품을 개선하는 접근법으로는 고객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제품 그 이상이다. 실제로 건강과 관련한 소비자의 광범위한 니즈를 외면한 제약회사들은 더 나은 약품 개발에만 집중하다가 위기를 맞았다.
둘째, 회사 역량을 고려하지 않은 혁신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신발 브랜드 LA 기어(LA Gear)이다. LA 기어는 남성 농구화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가치 제안을 ‘패션’에서 ‘성능’으로 바꿨으나 공급사의 제조 역량이 그에 부합하지 않아 변화 초기에 실패를 맛봤다. 고객 모두가 놀랄 만한 혁신이라 할지라도 뒷받침할 수 있는 파트너십, 역량, 판매 채널 등을 포함하는 적합한 운영 모델이 없으면 그 혁신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셋째, 기업이 진행하는 할인 전략은 단순히 판매량을 늘리기 위함이다. 할인 전략은 기업이 거부할 수 없는 가장 큰 유혹이다. 그러나 비즈니스 모델의 다른 요소는 바꾸지 않고 가격만 인하한다면 초기에 매출 증가는 있을지 몰라도 마진은 점차 감소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적은 마진 탓에 제품에 대한 투자가 주춤하게 되고, 더 나은 제품을 선보이지 못해 결국 고객과의 관계도 일회성으로 끝나게 된다.
그렇다면 핵심사업의 성장을 위해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에 기업은 판매량을 늘리고자 할 땐 단순히 가격을 내렸고 시장에서도 통했다. 하지만 이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대신 기업은 제품 간소화 등 제조 방식을 새롭게 바꾸거나 자동화 및 아웃소싱 확대와 같은 원가 절감 모델 구축을 통해 자연스럽게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시스템 차원에서의 가격인하가 필요하며, 새로운 시장 상황에 맞는 변화된 접근법이 필요한 셈이다.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혁신을 더하자1. 칼날만 더하지 말고 제품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라
제품 사용 시 고객의 경험을 개선시킬 수 있는 서비스를 파악한 후 그 서비스를 제품과 직접 결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은 고객에게 식료품뿐만 아니라 특별한 쇼핑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경쟁이 치열한 식료품 유통 산업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홀푸드마켓은 고품질의 유기농 제품, 탄탄한 고객 서비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바탕으로 쇼핑 고객들에게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먼저 홀푸드마켓은 각 지역의 매장 관리자들에게 해당 지역 상품 공급원을 확보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했다. 관리자들은 각 매장이 위치한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높은 품질의 상품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됐고, 고객들은 그 지역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을 통해 특별한 쇼핑을 경험할 수 있었다. 홀푸드마켓은 기업의 공통 가치를 바탕으로 직원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 수준 높은 고객 서비스를 실현하고 있다. 각 매장 직원들은 고객이 적합한 상품을 고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상품에 대한 지식을 쌓고 친절한 응대를 위해 교육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매년 지역사회와 비영리기구에 수익의 5%를 기부하는 등 ‘녹색 이니셔티브’에도 참여하고 있다. 고객은 홀푸드마켓에서 건강한 제품을 구매하면 그 수익금이 지속가능한 사업 방식을 실행하고 있는 기업 지원으로 이어진다고 인식하게 돼 건강하고 책임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홀푸드마켓은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며 프리미엄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했다.
홀푸드마켓의 비즈니스 모델은 마진이 낮기로 유명한 유통 산업에서 눈부신 성장과 높은 마진으로 이어졌다. 2007년에서 2012년까지 홀푸드마켓의 매출 증가율은 12%를 기록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애플(Apple)도 아이튠즈(iTunes)와 아이폰(iPhone)을 이용해 자사의 혁신적인 제품을 다양한 음악, 동영상, 게임 및 그 외 애플리케이션과 결합하고 있다.
모기업인 콴타스와 철저히 분리해 성공을 거둔 제트스타
2. 새로운 운영 모델로 혁신적인 가치 제안을 하기 전에 역량을 갖췄는지 확인하자
조직이 계속해서 혁신에 실패한다면 문제는 혁신 자체가 아닐 수 있다. 진짜 문제는 기업이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운영 요소를 갖추지 않은 채 혁신을 시도했기 때문일 수 있다. 기업은 획기적인 혁신을 실행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기존의 역량, 채널, 가치 사슬 체계를 적용하려고 한다.
많은 점에서 운영 모델은 사업의 근간이기 때문에 근간이 되는 시스템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새로운 혁신은 시들어 버린다.
자라(Zara)의 경우 새롭게 갖추어야 할 운영 요소는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른 공급 사슬이었다. 자라는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가치 제안, 매년 고객의 취향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수천 가지의 디자인과 제작으로 패션 업계에 주기가 짧은 비즈니스 모델을 가장 먼저 도입한 선구자적 기업이다. 자라의 트렌디한 의류는 유럽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신흥시장에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 제안은 자라만의 독특한 공급 사슬 체계와 이에 걸맞은 역량이 구축되지 않았다면 실현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부분 의류 소매업체들이 생산과 물류를 아웃소싱하고 있지만 자라는 재단과 같이 중요하지 않은 부문도 모두 포함해 가치 사슬 대부분을 사내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물류 선진화 및 매장 직원과 디자이너 간 끈끈한 인터랙션이 요구되는 매장-생산 부서 간 신속한 피드백 체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자라는 업계 최고의 리드타임을 실현해 경쟁사의 경우 디자인에서 매장 진열까지 최대 9개월까지 걸리는 시간을 한 달 미만으로 단축시켰다. 고유한 모델을 바탕으로 자라는 지난 10년간 평균 15% 이상의 지속적인 성장을 실현하고 있다.
3. 비즈니스 모델을 재조합해 마진을 늘려라
기업 리더들이 가격 인하를 결정할 때는 일반적으로 가격 인하로 인한 마진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판매량 증대를 예상한다. 하지만 계획대로 판매량이 증가하지 않을 경우 수익성이 급감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가격을 새롭게 조정하면서도 마진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데 성공한 조직은 가격 인하가 단순히 가격만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의 여러 요소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조방식, 운영 모델, 수익 모델이 필요하거나 또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할 수 있다. 호주의 콴타스(Quantas) 항공은 저가 항공사의 출현으로 어려움에 직면하자 원가 구조의 단계적 변화만으로는 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쟁사보다 경제성이 뛰어난 자체적인 저가 항공사가 필요했다. 기존 항공사 중 많은 항공사들이 저가 항공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사실상 모두 실패해 저가 항공 시장은 미국 사우스웨스트(Southwest)와 제트블루(JetBlue) 등의 항공사가 독점하고 있었다. 기존 항공사가 설립한 저가 항공사 중 다수는 모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전통적인 원가 모델을 기반으로 좌석수를 늘리고 기내 서비스를 줄이는 등의 변화를 추구했지만 결국 원가 절감에 실패했다.
2004년 콴타스 항공은 원가 모델과 운영 모델이 완전히 새로운 저가 항공사 제트스타 항공(Jetstar Airways)을 설립했다. 별도의 단일 국내선 기종, 포인트 투 포인트(point to point) 노선, 독립적인 사업 시스템, 높은 비중의 온라인 매출 등은 제트스타 항공의 특징이다.
모기업인 콴타스 항공과는 사업적으로 철저히 분리했다. 제트스타는 큰 성공을 거둬 국내선 노선을 장거리 국제 비즈니스 노선으로 확대하고 싱가포르,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에 단거리 프랜차이즈까지 두고 있다. 현재 제트스타의 연 매출액은 30억달러(약 3조3000억원) 이상이며 프리미엄 항공사를 지향하는 모기업 콴타스 항공의 마진을 추월했다.
CEO는 기업 전체의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 사업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핵심 사업에서 급속한 성장을 기록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주주수익 프리미엄이 2배나 높다. CEO의 적극적인 주도 아래 야심찬 목표를 세운 뒤 전문가 영입으로 전문성을 더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적용하자. 그리고 이를 조직 내 흡수시키기 위해 이사회 등 임원진의 참여를 유도하자.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을 이룬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은 목표는 같지만 결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