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지분 떼고 붙이고 SDS 기업 공개… 빨라진 삼성 경영 | 경쟁력강화·지분단순화·경영권승계 포석
입력 : 2014.06.09 16:33:16
삼성의 변화가 무쌍하다. 변화속도 역시 전광석화 같다.
이건희 회장이 올해 화두로 던진 ‘마하경영’이 이런 것이었나 싶을 정도다. ‘마하’는 음속 제트기의 속도를 측정하는 단위다.
지난해 말부터 진행된 일부 계열사의 사업부문 정리와 지분거래가 이 회장이 위기론과 마하경영을 주창하던 시기와 맞아떨어지면서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스마트폰에 과도하게 수익을 의존하는 삼성그룹 전반의 병폐를 치유하고 고른 경쟁력 제고를 위한 작업으로 해석됐다.
이건희 회장의 건강에 이상신호등이 켜지면서 최근 사업재편과 지분정리 작업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아졌다. 경영권 승계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의 변화를 상황논리에 따라 해석할 것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빠른 속도로 단행되고 있는 삼성의 변화는 크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 구조조정, 금산분리에 대비한 금융 계열사 지분 단순화, 그리고 경영권 승계에 대비한 포석 등 구분할 수 있다.
사업경쟁력 강화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계열사 간의 사업구도 재편과 지분거래에 대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다.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하다”고 일관되게 설명하고 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의 삼성전자 의존도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점을 지적하며 ‘위기’라고 일축했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데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처음으로 주춤하기 시작했고 미래 신성장동력 사업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계열사 간 사업구도 재편의 중심에는 제일모직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을 떼어내 삼성에버랜드로 넘길 때만 하더라도 패션사업에 관심이 많은 이건희 회장의 차녀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에게 패션사업을 넘겨주기 위한 수순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지난 3월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합병할 계획이라는 사실이 발표되면서 의문이 풀렸다. 제일모직의 패션사업부문을 분리하고 화학과 전자소재 사업만을 남긴 다음 삼성SDI와 합병해 2차 전지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 삼성SDI는 세계 1위 배터리 업체로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 확대에 피치를 올리고 있다. 보다 가볍고 오래가는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자소재 분야 경쟁력이 필수적이고 그 역량은 제일모직이 갖고 있다. 이로써 패션과 전자소재라는 제일모직의 어설픈 동거도 종지부를 찍었다.
6월 예고된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유사한 업종을 통폐합해 규모를 키워서 보다 큰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분야에서는 삼성생명이 삼성자산운용 지분 100%를 3951억원에 인수하고 삼성증권이 삼성선물을 100% 소유하게 된 것도 시너지 제고를 통한 사업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자산운용에 위탁한 운용자산이 상당 규모에 달했으며 글로벌 10대 보험사 중 자산운용회사를 갖고 있지 않은 회사는 메트라이프 하나뿐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삼성증권 역시 삼성선물과의 거래가 많고 유사한 사업이어서 직접 소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4월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의 조직 통폐합과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 방안이 발표된 직후에 단행된 일이어서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장선상에서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에버랜드, 삼성중공업 등에 흩어져 있는 건설사업을 통폐합해 경쟁력 제고를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해 12월 삼성물산이 삼성SDI로부터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204만주를 1131억원에 매입한 것은 그 첫 번째 단초로 해석된다.
금융계열사 지분 단순화
삼성그룹이 진행하고 있는 일련의 조치들은 사업경쟁력 강화 의도와 함께 금융계열사 지분 단순화가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12월 삼성생명이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이 갖고 있던 삼성카드 지분을 2641억원에 모두 사들였다. 이로써 삼성물산, 삼성중공업이 갖고 있던 삼성카드에 대한 지분은 모두 털어냈다. 지난 4월에는 삼성전기와 삼성정밀화학, 제일기획, 삼성SDS가 갖고 있던 삼성생명 지분을 3249억원을 받고 제3자에 매각했다. 이들 비금융 계열사가 갖고 있던 삼성생명 지분을 모두 처분한 것이다.
이 같은 조치들은 제조업 계열사와 금융 계열사들이 서로 상대 기업의 지분을 가짐으로써 얽히고설킨 지분구조를 단순화하는 과정이다. 궁극적으로는 제조업 계열사와 금융 계열사 간의 연결 고리를 끊어 금산분리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금산분리는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 간의 상호 지분고리를 없애는 것이 목적이다.
남은 것은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21%를 해결하는 것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갖고 있는 것이 금산분리의 가장 큰 숙제이며 정치권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다만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삼성그룹에 대한 경영권을 약화시키지 않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처분하려면 12조~14조원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이른바 ‘잔가지’들을 모두 정리한 후 중장기적으로 삼성전자 지분 처분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것이 증권가의 추측이다. 이는 삼성에버랜드,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SDI, 다시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 해소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또 한 가지 삼성생명의 중간금융지주회사 전환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현재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권은 삼성에버랜드가 갖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를 금융지주회사로 할 경우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를 동시에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회사로 두는 형태가 유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생명이 생명보험사를 겸업하는 금융지주회사가 되고 그 아래에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을 두는 형태다. 지난 4월 삼성카드가 갖고 있는 삼성화재 지분 30만주를 삼성생명이 712억원을 들여 사들인 것이 이 같은 구조를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다만 대통령 공약인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위한 입법 논의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3세 승계 위한 실탄 마련
삼성그룹은 일련의 움직임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라고 강력히 주장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삼성그룹에 대한 경영권을 3세인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차녀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에게 온전하게 물려주기 위한 포석이라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전자·금융·화학 계열사 간의 지분구조 단순화는 유사업종 통폐합을 통한 시너지와 수직 계열화를 통한 비용절감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삼성SDS 연내 상장계획을 발표한 것은 다분히 경영권 승계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삼성SDS 상장 가능성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본격화된 것은 지난해 12월 삼성SDS가 삼성SNS를 합병하면서부터다. 삼성 측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추후에 이뤄질 삼성SDS 상장을 놓고 본다면 삼성SDS의 기업가치 제고,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 확대 그리고 이를 근거로 한 더 많은 시세차익 획득이 목표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삼성SDS가 상장을 통해 신규자금을 손쉽게 마련해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보안, 사물인터넷 등 앞으로 열릴 어마어마한 시장에 대응하려 했을 것이다. 미국의 페이스북과 트위터, 중국의 웨이보 등 여타 글로벌 IT기업들도 기술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상장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 자녀 삼남매가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됐다. 삼성SDS 지분은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1.25%, 그리고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차녀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이 각각 3.9%씩 보유하고 있다.
삼성 측은 당장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향후 언제든 상황에 따라 주식시장에서 지분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 수단이 만들어진 셈이다.
올해 초 장외시장에서 10만원 안팎에서 거래되던 삼성SDS 주가는 최근 15만원에 육박했다. 4개월여 만에 50% 가까이 급등한 것이다. 현재 시가로만 계산하더라도 이재용 부회장 삼남매는 당장 주식을 매각해도 2조2000억원의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 향후 주가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주식 상장에 따른 프리미엄까지 감안하면 더 많은 액수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등이 갖고 있는 삼성SDS 지분은 지난 1999년 발행된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주당 7150원에 매입했다가 교부받은 주식이다. 지난해 삼성SDS의 삼성SNS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은 8.81%에서 11.25%로 늘어났다.
시장에서는 이건희 회장 일가와 각 계열사들이 삼성SDS 상장으로 얻게 된 시세차익을 경영권 승계에 사용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이 대부분인 이 회장의 재산을, 경영권을 약화시키지 않고 자녀에게 물려줄 경우 상속·증여세 부담이 만만찮다. 지난해 말 현재 이 회장의 재산은 12조8300억원으로 추산된 바 있다. 상속세를 단순 계산하더라도 5조~6조원이 필요하다. 이 회장 삼남매는 이를 삼성SDS 지분 매각을 통해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삼남매가 공동으로 지분을 갖고 있고 비상장기업이라는 점에서 삼성SDS와 유사한 삼성에버랜드 상장 가능성이 불거지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