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창덕궁 담장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는 창덕궁길을 걷다가 후미진 창덕궁5길까지 들어섰다. 그 막다른 골목의 끝에 창덕궁 담장과 붙어선 건물 한 채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게 했다. 커다란 한옥대문 뒤로 누각을 층층이 쌓아올린 것 같은 형태의 인상적인 한옥이었다. 떨어져서 봤을 땐 그저 창덕궁에 연한 기와집이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한옥 안쪽에 유리로 외벽을 장식한 커다란 양옥이 행여 보일 새라 숨어 있었다. 자그마한 한옥이 커다란 서양식 건물을 품고 있는 게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발길이 열린 문 안으로 저절로 움직였다. 한샘 DBEW 디자인 센터는 그렇게 다가왔다.
기업의 건물이라 마음대로 들어오면 곤란하다는 경비원의 얘기를 듣고 정식 취재신청을 했다. 며칠 뒤 날을 잡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다시 이 센터를 찾았다.
한옥에 온실을 배치한 것 같은 외양
커다란 한옥 대문에 들어서니 석굴암이라도 들어가는 듯했다. 대문부터 현관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바닥석을 가지런히 깔아놓은 데다 양 옆으로 좌우가 마주보게 쌓은 석축이 벽 같은 인상을 주었다. 통로와 석축 사이에는 잔디를 곱게 깔았다.
대문에서 볼 때 오른쪽 석축 뒤로는 창덕궁 담장이 호위하듯 서 있고 왼쪽 석축 위엔 한창 보수 중인 한옥이 들어서 있다. 한옥 지붕을 비닐로 덮어 놓았는데 기와가 보인다면 창덕궁 담장을 덮은 기와와 대칭을 이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왼쪽 잔디밭 뒤에는 유리로 외벽을 마감한 제법 높은 건물이 있는데 그 뒤로 대나무가 솟아 마치 한옥에 온실을 배치한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오른쪽 석축 뒤엔 창덕궁 담장을 따라 하늘로 이어지는 양상의 좁은 돌계단이 자리를 잡고 있다.
현관에 들어섰다. 안내를 맡은 한샘의 이지예 계장은 “현재 이 건물엔 연구소와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의 집무실이 있으며 이곳에서 수시로 신제품 품평회를 열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 1층 사무실은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처럼 구성됐다. 현관에서 돌아서 밖을 내다보면 시선은 정원과 대문을 통해 곧바로 창덕궁 후원으로 이어진다.
모든 창문으로 자연이 들어오다
창덕궁 담장을 따라 경사지에 자리를 잡은 이 건물의 한옥부에는 계단과 누각(테라스) 화장실 등이 배치됐다. 그 누각이 3층, 4층, 5층을 넘어 옥상층으로 이어진다. 밖에서 보면 경사에 맞춰 솟을대문을 층층이 쌓은 것 같다. 그러나 안에서 보면 층마다 계단실 끝에 누각을 만들어 놓았고 누각마다 간단한 탁자와 의자를 배치했다. 어느 층에서건 창덕궁 후원을 정원삼아 잠시 머리 식히기에 제격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조선시대 선비 같은 생활을 할 것 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계단실과 복도 바닥, 난간은 마호가니로 보이는 짙은 갈색 원목으로 마감해 고풍스런 분위기를 더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은 옥상층 바닥엔 송판으로 만든 전통마루를 깔았다. 거기서 옥상으로 나가니 기와를 얹은 또 다른 담장이 나타났다. 건물의 공조시스템을 모두 이 담장이 품게 해 밖에선 그저 한옥의 연장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
각 층 복도나 계단은 배병우 작가의 창덕궁 사진 등 고풍스런 느낌의 사진이나 고가구로 장식했다. 고궁 분위기를 건물 안까지 끌어들이려는 건물주의 마음이 느껴졌다.
복도와 계단실을 포함한 한옥부가 움직이는 공간이라면 글라스로 외벽을 장식한 양옥부는 머무는 사무공간이다. 장시간 앉아 일하는 공간에 최대한 햇빛을 받아들이려한 배치다.
그런데 안에서 보니 그 뿐이 아니었다. 각 방에 앉으면 정면의 큰 창이나 좌우의 쪽문 어느 쪽이든 시선의 끝에 자연이 들어온다. 동측 넓은 창엔 창덕궁 후원이 정원처럼 펼쳐져 있고 남측 작은 쪽창으론 뜰에 심은 대나무가 눈에 어린다. 복도를 통해 보이는 북쪽 창으론 창덕궁 후원과 거기에 접한 담장들이 운치 있게 자리를 잡고 있다.
밖에서 볼 땐 1층부터 5층까지 하나로 이어져 유리온실처럼 보이던 전면 유리창이 안에 들어오니 계단처럼 층을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각 층은 밖으로 펼쳐진 테라스에 잔디밭을 꾸며 모든 층의 사무실에서 시선이 잔디밭을 거쳐 그대로 고궁으로 이어지게 했다. 서울 한 복판이 아니라 시골 같다. 자연을 최대한 끌어들인 설계가 대단했다.
디자인 센터 대지엔 문화재가 한 채 자리를 잡고 있다. 원래 상궁이 살던 집터라고 하는데 문화재로 지정할 당시 소유주 이름을 따 ‘원서동 백홍범 가옥’으로 불린다. 당국에서 한창 지붕 개수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건물 안에서 좌(창덕궁 담장) 우(백홍범 가옥) 모두 기와를 얹은 한옥 뒤로 창덕궁의 후원이 펼쳐지는 그림이 그려졌다.
숱한 우여곡절 거쳐 탄생한 걸작
건물을 설계한 이가 궁금했다.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대표 김석철 교수라고 했다. 김 교수는 조창걸 명예회장과 함께 이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설계와 인허가 과정에 엄청난 공력이 들었다.
김 교수는 이 건물을 만든 계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람의 질서와 자연의 질서를 하나로 엮으려는 옛 서울의 구조개혁을 제안하면서 구체적으로 낸 다섯 개 도시 프로젝트 중 하나로 북촌지역에 세 건축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그 첫 번째가 선원전 남쪽 벽에 접한 한샘 DBEW 디자인 센터다.”
김 교수는 창덕궁 담장과 이미 현대식 한옥으로 지어진 S회장의 집 사이의 이 공간에 과거 공간 형태와 차별화된 현대적 건축공간으로서 유리 입방체 건물을 계획했다. 투명유리로 건물 자체를 드러나지 않게 한 것. 천년 고도 경주를 보호하려고 고속철도 노선까지 우회시킨 김 교수를 믿었기에 문화재 위원들도 그의 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심의가 끝난 뒤 현장이나 돌아보자며 나서는 과정에서 이의가 들어왔다. 한영수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장이 “이 안이 서면 역대 임금의 초상을 모신 창덕궁 선원전이 죽는다”며 재고를 부탁한 것. 김 교수는 한 때 창덕궁 정문 앞 공간 사옥이나 현대그룹 사옥은 통과시키고 외진 곳에 숨은 이 건물 계획에 이의를 제기한 게 탐탁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1년을 보냈다. 그러다 갑자기 설계를 바꾼 계기를 이렇게 풀어나갔다. “어느 날 창덕궁에서 그 곳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절충안이 떠올랐다. (이탈리아) 산마르코 광장 새벽미사에 참석했을 때 떠오른 단상을 발전시킨 것이다. 산마르코 바실리카와 두깔레궁은 건축가가 다르고 시대도 달랐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조화는 환상적이다. 이 사이트(원서동)의 건축물은 반드시 창덕궁과 조화를 이뤄야 했다. 창덕궁과 북촌의 보존을 주장했던 내가 오히려 헤맨 것이다.”
당초 책정된 예산은 이미 넘었고 약속 시간도 지났지만 그는 이전 설계를 집어던지고 완전히 새로운 안을 세웠다. 전통의 한옥과 현대식 글라스 하우스를 융합시킨 것이다. 문화재위원들은 새 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설계에만 4년, 건축에 2년 등 꼬박 6년이 걸려 2003년 건물이 완공됐다.
‘동서양의 디자인을 넘어서(Design Beyond East & West)’라는 슬로건을 담은 한샘 디자인 센터는 이렇게 태어났다. 돈에 매이지 않은 작가정신, 그런 작가를 무한정 기다려준 건축주의 믿음이, 궁궐처럼 층층이 올라선 한옥이 통유리의 현대적 건물을 품은 포스트모던의 걸작을 낳은 것이다.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성적 디자인으로 이름난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한샘 DBEW 디자인 센터를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현대건축”이라고 했다. 2010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의 여류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는 “이 공간의 아름다움을 담는 것은 사진으로는 불가능하고 기억으로만 가능하다”고 했다.